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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 Aug 30. 2023

26. 우리 옛것과의 만남

                국립국악박물관에서

                                            슬기로운 국악생활     


범 내려온다범이 내려온다...

몸은 얼숭덜숭꼬리는 잔뜩 한 발이 넘고,

누에머리 흔들며전동 같은 앞다리동아 같은 뒷발로 양 귀 찌어지고,

쇠 낫 같은 발톱으로 잔디뿌리 왕모래를 촤르르르르 흩치며 

주홍 입 쩍 벌리고 워리렁 허는 소리... 

    

리듬 타는 소리꾼들과 낯선 춤사위로 신명 난 요상한 차림새의 춤꾼들, 그룹 이날치와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협연을 보셨습니까?  

의성어, 의태어가 듬뿍인 노랫말은 우리말인데 장구나 북소리가 아닌 밴드 음악, 거기다 갓이나 저고리에 선글라스 끼고 운동복 입고... ‘이것도 우리 것인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국악의 변신 인가 봐!’ 새로워서 반가웠습니다.

조선 후기의 판소리계 소설 별주부전에서 호랑이가 나오는 대목을 재해석한 노래 ‘범 내려온다’에서는 ‘랩과 타령의 경계가 무너지며, 전통과 현대의 구분이 사라진다.’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더 가까운 음악더 깊은 이해더 즐거운 놀이’ 

오랜 옛날에는 범의 놀이터였을 우면산 자락에 자리한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 국악의 기원과 역사는 어떠할까?, K-music에서 국악의 자리는 어디일까?... 답을 기대하며 찾아갑니다. 

1995년 문을 연 국내 유일의 국악 전문 박물관은 2019년 듣는 전시로서의 기능을 강화하며 상설전을 개편하였습니다. 전시 브로슈어의 안내대로 국악세계를 알아보려 합니다.

     

제1전시실 <국악뜰>에서는 궁중잔치가 고품질 음향과 영상으로 펼쳐집니다. '진연, 120년의 시간을 잇다'는 고종 즉위 40년인 1902년 덕수궁에서 열린 마지막 잔치의 부분 재연 영상입니다. ‘예禮로 절도 있게, 악樂으로 조화롭게’, 조선의 시대정신이 가시화된 현장으로 시간여행을 갑니다. 삼면에서 들리는 연주 소리와 화려하고 장중한 군무는 아담한 전시실이 궁궐의 뜰처럼 깊고 너른 곳으로 느껴지게 했습니다.  

    

제2전시실은 <소리품>입니다. 비, 바람, 파도, 매미 같은 자연과 생명의 소리와 다듬이질 소리, 장작 타는 소리 같은 삶의 소리들을 영상 없이 오로지 귀로만 듣도록 꾸며진 곳입니다. ‘의미 있는 떨림과 움직임(波動)’이 음악이라면 <소리품>에는 음악 이전의 소리들이 가득합니다. 

소리가 소환하는 풍경들이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이어집니다. 상상력은 이 땅 이곳저곳에 깃들인 어제와 오늘을 톺아보게 했습니다. 우리네 감성을 조율하는 우리 음악의 토대가 한반도의 소리임을 자연스레 깨닫게 됩니다.     

제3전시실은 <악기실>입니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풍요를 기원하며 농사를 관장하는 자연신에게 제를 지낼 때 소리를 담는 그릇, 악기는 필수였습니다. 고구려 고분벽화나 신라 토기를 장식한 토우에는 모양새와 쓰임새를 짐작케 하는 다수의 악기가 있습니다. 나무, 돌, 뿔 같은 자연의 재료들을 다듬어 두들기고, 불고, 줄을 튕겨서, 이 땅의 소리들이 악기로 발현되었습니다. 입술 사이에 물거나, 원통형으로 말아 불어 연주하는 풀피리(草笛)나 소라에 취구를 만들고 입김을 넣으며 입술의 진동으로 연주하는 나각, 엎드린 호랑이 모양인데 등줄기에 새겨 박은 톱날을 채로 긁어서 드르르 소리를 내는 어. 재료, 모양, 연주법 등이 제각각인 악기들이 내는 소리는 안내 큐알코드로 접속하면 들을 수 있습니다.

음악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일상의 행위와 소리를 생각하다, 자동차의 경적이나 공사현장의 발파 같은 소음도 ‘도시의 교향악’으로 풀어낸 영화들을 떠올렸습니다. 복원된 옛 악기를 따라 시간적으로는 고대까지, 두들겨 소리 내는 해녀들의 물장구를 따라 공간적으로는 제주도에 다다르는 여정이 흥미롭습니다.  

   

제4전시실은 <문헌실>입니다. 악보, 무보, 악서, 의궤, 도병 등의 궁중기록과 가객들이 남긴 노래책인 『청구영언』, 『가곡원류』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음의 고저, 장단을 표시하는 여러 기보법 중 하나가 우물 정자 모양으로 칸을 질러 그 개수로 음의 길이를 나타내는, 세종대왕이 창안한 정간보입니다. 오선지와 음표가 익숙한 눈에, 옛 악보의 첫인상은 그저 가로세로 낱말퍼즐입니다. 악기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인 구음口音으로 음높이와 연주법을 나타낸 육보에 손장단을 쳤던 학창 시절이 기억납니다. ‘덩·덕·쿵·기덕·더러러’, ‘슬기둥·덩·둥·당·동·딩’, ‘청·흥·둥·당·동·징·땅·지·찡·칭·쫑·챙’. 입소리를 반복하니 우리의 잰말놀이(tongue twister) 같아집니다. 어느 악기 소리일지 맞춰보는 재미도 있습니다(장구, 거문고, 가야금).   

   

제5전시실은 <아카이브실>입니다. 1877년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와 함께 만들어진 원통형 실린더와 릴테이프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제 음원音源이란 디지털 신호를 통해 재생되는 소리로 정의됩니다. 어느새 무형으로 존재하는 음원에 친숙해져서, 손으로 만져지고 눈에 보이는 아날로그 타입 ‘소리의 집’이 되레 신기하게 느껴지니 기술의 변화에 새삼 놀라게 됩니다. 

한민족 최초의 음원인 미국 인류학자가 녹음한 한국인 유학생이 부른 노래,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포로가 된 러시아 이주 한인의 노래... 소리매체의 변천을 보여주는 전시품은 지난 시절 삶의 애환까지 전합니다.

1968년 녹음된 제주민요나 서양인 국악학자인 해의만의 슬라이드 필름에 담긴 굿, 대취타, 정재 공연을 듣고 볼 수 있습니다. 국악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국악 관련 자료도 수집하고, 평생을 한국 전통음악과 무용을 알리는 데 앞장섰던 해의만(Alan C. Heyman(1931~2014)). 한국전 참전 시 들었던 태평소 소리가 그와 국악과의 인연을 시작케 했답니다. 근래 궁궐 앞에서는 조선시대 왕의 행차나 군대의 행진에서 쓰였던 대취타가 시연됩니다. 대취타의 선율을 홀로 맡은 태평소는 강인하면서도 애절한 소리를 냅니다. 그 매력이 이방인의 ‘심금을 울린’ 것인가 생각해 봅니다.  

    

제6전시실은 <명인실>입니다. 국가음악기관인 장악원과 지방관아 소속 음악인부터 민간에서 탈놀이나 판소리를 연행한 광대나 소리꾼에게 이르기까지, 20세기는 굴곡의 시기였습니다. 전통예술의 명맥을 지켜낸 예인들의 후손과 제자들이 기증·기탁한 유품들이 지난 시기 예인들의 땀과 눈물을 증언합니다.      

2022년 전통예술의 경계를 확장시킨 젊은 예인들의 활약상을 찾아봅니다. 외국 극작가의 작품을 번안, 각색하여 우리화한 창작 판소리나 재즈를 접목한 경기 민요 같은 실험적인 복합장르가 국제적인 인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전통예술의 원형을 보존하려는 노력과 발맞추어 나아간다 싶습니다. 


<명인실>을 나서면 ‘소리로 꾸며진’ 국악 놀이터입니다. 물체의 두께·길이·장력에 따라 달라지는 음높이, 재료에 따라 달라지는 음색 등을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가야금 줄을 타고, 북채로 북을 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느라 기분 좋게 시끌벅적합니다.

“얼씨구”, “좋다” 마음속 추임새를 삼키며 박물관에서의 ‘국악수업’을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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