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명 중에 1명? 3번 중에 1번?
난임 병원 첫 방문 때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예비 산모들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두 들고 있던 보라색 가방이 참 신기했다. 그리고 얼마되지 않아 곧 그 가방은 갖가지 주사약이 담긴 무시무시한 보냉 가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임 병원을 처음 가게 된 모든 사람들이 나와 똑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 가방만은 들지 않겠다고.
나 역시 그랬다. 한 두번의 방문으로 임밍 아웃을 하게 될 줄 알았다. 왠지 보라색 가방 대열에 나는 끼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인공 수정의 첫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당연하게 될 줄 알았는데 당연한 건 없었다. 병원에서는 몇번 인공수정을 더 해봐도 되고 시험관을 시작해도 된다고 했다. 착찹한 마음을 달래주었던 한 줄기의 빛, 그건 시험관의 성공률이었다. 담당의는 평균적으로 시험관의 성공률은 30%정도로 매우 높고 나의 검사 결과로 보면 성공률이 50%로 굉장히 희망적이라고 했다.
'50%면 너무 해볼만 하잖아! 아니 이건 해봐야 하는 거잖아!'
시험관은 마치 만능키 같았다. 그래서 인공 수정 후 쉬지 않고 바로 시험관에 돌입했다. 매일 밤 마다 과배란 주사들을 맞았고 때때로 난포들이 잘 크는지 확인했다.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인위적으로 투입되는 호르몬으로 인해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땅 끝이 어디인지 모를만큼 축축 처졌고, 뾰족한 선인장이 되어 작은 한 마디에도 상대방을 찔렀다. 몇 번 해보면 주사 맞는 것도 약 먹는 것도 괜찮다라는 주변 시험관 고차수들의 조언에도 처음 만나는 시험관의 세계는 낯설고 어려웠다.
힘들었던 몸과 마음과는 다르게 난포는 잘 자랐다. 그리고 30대 후반에 만나보기 힘들다던 5일 배양 상급 배아도 여럿 나왔다. 이식 전 모니터로 만난 배아를 보는 순간 이미 난 산모였다. 동그랗게 두꺼운 막을 형성한 5일 배양의 배아들은 내가 본 세상의 그 어떤 것 보다 신비롭고 귀했다. 밤 하늘에 빛나는 별 처럼 자궁에 안착한 배아는 반짝반짝 빛을 내며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태명은 쌍배였다. 남편은 이름이 쌍자가 들어가는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지만 초음파로 반짝이들을 보는 순간 쌍배 보다 어울리는 태명은 없었다. 배아 이식을 한 그날 부터 눕눕이의 생활이 시작됐다. 등이 닳아 없어져도 괜찮다는 일념으로 침대와 한몸으로 지냈다. 땅 바닥에 발을 내딛을 때는 한 걸음 한 걸음 최선을 다해 조심했다. 5일 배양의 배아는 뒷날 부터 착상이 시작된다고 했기 때문에 더욱 조심할 수 밖에 없었다. 하루의 대부분을 누워있다보니 소화도 잘 되지 않고, 다리도 저렸지만 우리 쌍배들만 착 달라 붙는다면 그것쯤이야 괜찮았다.
이식 후 3-4일이 된 어느날 저녁 임테기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손을 댔다. 의사 선생님이 얘기했던 50%의 확률이 곧 나에게 두 줄을 보여줄 것 같았다. 맘마미아 세상에, 빨간 선 옆에 또 하나 더 있는 빨간 선. 태어나서 처음 본 두 줄. 혹여나 매직아이로 나만 알아 본 건 아닐까 싶어 남편을 불러 한번 보라고 했더니 이건 틀림 없는 두 줄 이란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긴 터널의 끝을 본 순간,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함을 표하고 싶었다.
우린 그렇게 엄마, 아빠가 되는 줄 알았고 그날 밤 설렘과 기쁨을 넘칠만큼 만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