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져라, 제발 좀 커져줄래?
나를 너무나도 괴롭혔던 지옥의 로렐린 주사도 끝나갔다. 배 주사와 달리 팔뚝 주사의 불편함은 남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바늘이 한 번에 들어가야 하는데 남편도 처음 주사를 놓다보니 꽤나 무서웠나보다. 몇 번의 실패로 남편은 쌍욕을 듣고 나는 피멍을 얻었다. 여름이 아니여서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누가 보면 괜한 오해 사기 딱이었다.
로렐린 주사가 끝나감과 동시에 배 주사는 시작되었다. 고나도핀과 IVFM-HP, 일명 난포 키우는 주사 두 대를 매일 같은 시간에 배 양쪽에 한 번 씩 맞으면 된다. 1차에 한 번 해봤다고 고통 없이 능숙하게 자가 주사를 잘 놓았다. 그리 힘들지 않게 배 주사를 맞았고 중간 중간 난포가 얼마나 컸는지 초음파로 확인했다.
너희들 제발! 이러면 안된다
난포가 제 속도로 자라지 않고 있었다. 이건 주사약이 늘어나고 주사 맞을 기간도 늘어난다는 징조다. 단기 1차 때는 8일간 주사를 맞고 난자를 채취했는데 이번엔 글렀다. 선생님께서는 고나도핀을 300까지 올리자고 하셨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난포가 잘 자라고 있는지 보자고 하셨다. 주사약 용량이 느니 맞고 나서 속이 울렁거리는 증상도 심해졌다. 매일 밤 주사를 놓으며 난포에게 외쳤다. 제발 쑥쑥 커달라고.
많이 걸으면 난포도 잘 자란다는 소리를 듣고 매일 저녁 집 뒷 산책로를 열심히 걸었다.
배 주사를 맞은지 10일째 마지막으로 초음파로 난포를 보러 갔다. 아마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거라 하셨다. 드디어 끝이라는 후련함으로 초음파를 보는데 이 놈의 난포들 며칠 사이 별로 크지도 않았다. 의사 선생님께서도 왜이렇게 더디게 크는지 모르겠다며 며칠 더 주사를 맞아야겠다고 하셨다. 반납하려고 했던 보냉백에 빈 주사기와 주사약들을 더 받아왔다. 그리고 그 뒤로 3일이나 더 배 주사를 맞았다. 팔뚝 주사 로렐린을 시작으로 고나도핀, IVFM-HP 주사 까지 장장 20일 간의 자가 주사가 끝이 났다.
제 시기에 딱딱 맞게 크지 않았던 난포들이 신경 쓰였지만 장기 시험관 요법을 한 만큼 난자 수도 훨씬 많이 채취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괜찮았다.
드디어 그 날이 되었다. 우리의 난자와 정자를 채취하는 날. 이 날을 위해 얼마나 수 없이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했던가! 그 놈의 지중해식은 또 얼마나 지겹도록 먹었던가! 제발 난자들아 모두 총 출동하여 그간의 고생을 싹 잊게 해다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채취가 끝난 상태였다. 간호사 언니가 슬쩍 다가와 수첩에 적힌 결과를 보여줬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단기 때와 별 다를게 없는 결과에, 아니 내가 이러려고 이 개고생을 했단 말인가란 소리가 절로 나왔다. 2배는 더 채취 될 줄 알았는데 꼴랑 2개 더 채취가 되었다.
진짜 난포 너 끝까지 마음에 안든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