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ietto Nov 02. 2021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

알고 있지만 단 1% 가능성을 위해

선생님께서 물으셨다.


"3일 배양으로 하나는 중급, 또 하나는 중상급인데 하나만 이식할까요? 둘 다 이식할까요? 나이가 있어서 둘 다 이식할 수 있어요"


'맞다, 내 나이 곧 마흔이지. 

할 수만 있다면야 쌍둥이로 한 방에 키우고 싶은데 원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고민할 거리가 아니였다. 가능성을 높이려면 무조건 이식은 2개였다. 안타깝지만 시험관 1차 때보다 배아들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게다가 5일 까지 배양하지 못하고 모두 3일 배양이었다. 그토록 바랬던 냉동 배아도 단 하나도 없었다. 장기 시험관을 진행하면서 몸과 마음이 축났던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일이었다. 인공 수정과 시험관을 하면서 묘한 감정 변화를 느꼈는데 두려움-> 자만 -> 기대 -> 충격 -> 슬픔 -> 무력감 이었다. 처음 난임병원을 가기 전 엄청난 두려움에 선뜻 병원을 찾지 못했었는데 의외로 좋은 결과에 '나'는 시험관의 대열에 끼지 않을 거라는 자만심이 있었고 곧 아기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사로 잡혀 있었다. 하지만 좋았던 결과와는 달리 인공수정에도 실패하고 5일 배양 상급이라는 놀라운 결과에도 시험관을 실패하자 그 충격에서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말도 안되지만 마치 며칠 아기를 품은 듯한 착각에 빠져 실패했다는 사실 보다 이식 할 때 잠시 만났던 배아들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슬픔에 더욱 힘들어 했다. 그리고 뒤이어 이어진 장기 시험관을 하면서 나의 피나는 노력과는 무관하게 결정되는 결과에 깊은 무력감에 빠졌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포기했다고 생각할 때 성공을 했다는 공통된 공식이 있다. 그런데 언제쯤 얼마나 더 하면 되도 그만, 안되도 그만이라는 포기가 생길까. 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힘든 마음가짐이었다. 이번 장기 시험관에서도 이식 후 쭈욱 이어진 우울감을 베이스로 단 하루도 아니 단 한 시간도 배아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단기 시험관 때 한 방 얻어 맞은 임테기의 충격으로 이번에는 절대로 임테기에 손을 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임테기의 유혹은 너무나도 강했지만 잘 참아냈다. 이식 후 일주일 쯤 지났었나? 어김 없이 혈이 비췄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 법. 1차 시험관 때도 똑같은 현상으로 좋은 징조라며 은근 설레발을 쳤었는데 아니었던 걸 보면 이번에도 무언가 잘못되고 있는게 틀림 없었다. 아닌 줄 알면서 단 1%의 가능성으로 희망에 기대어보는 일이 얼마나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조기 이상 증상으로 예정된 검사일 보다 일찍 내원한 병원에서 혈액 검사, 소변 검사를 며칠 앞 당겨 해보자고 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10분 동안 혹여나 하는 기대감으로 온 몸 짜릿한 긴장감을 느꼈다. 저멀리 다가오는 간호사 선생님이 활짝 웃으며 와줬으면 하는 헛된 상상도 해봤다. 하지만 발갛게 상기된 나에게 다가온 선생님은 아쉽지만 음성이라는 결과가 나왔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그래도 아직 혈액 검사가 있으니 너무 상심치는 말란다. 


알고 있다. 이번에도 실패했다는 걸. 어릴 적 심심풀이로 다닌 점 집에서는 나에게 삼신 할매의 기운이 강하다며 남자 친구와의 관계를 조심하라고 그렇게들 충고했었다. 기다리다 지친 삼신 할매가 이제 딴 곳으로 가버린 건지 당연히 결혼을 하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생길 줄 알았던 우리 아이가 이토록 힘들게 들어서지 않는다는 사실이 참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어릴 적 내 작은 세상에서는 노력이라는 단어로 되지 않는 일 들은 없었다. 노력해서 공부하면 시험 결과가 좋았고 노력해서 한 번에 국가 고시도 당당하게 합격했다. 나에게 노력이라는 단어는 그 어떤 결과도 가져다 줄 수 있는 만능 키였다. 하지만 아기를 갖는 일은 노력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나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이 또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세상 모든 일이 바람대로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수 많은 애를 써도 결국 될 일은 되고 되지 않는 일은 되지 않는 다는 것을. 그러니 너무 나를 탓하지 말고 조금 더 여유를 갖고 힘을 빼고 살아 보라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




매거진의 이전글 똑똑! 난포 너 거기 있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