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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나봄 Mar 16. 2020

국내 여행에 눈을 뜨다.

<당신에게, 여행>

 여행…. 내게 있어 여행은, 범주가 좁았다. 당연히 해외였기 때문. 누군가 여행 다녀왔다 하면, 어느 나라를 다녀왔는지 물었다. 난 20살이 되기 전, 이미 해외여행으로 9개국을 다녀왔기에 여행이란 당연히 국외라 생각했던 거다. 국내를 거의 다 돌아봤다는 착각도 이유 중 하나였지만. 


 친오빠가 나보다 열 살이 더 많다. 오빠는 대학생 때까지 배구선수였다. 내가 영유아일 적, 오빠가 배구 시합이 있을 때마다 부모님과 함께 응원하러 갔었다. 덕분에 국내에 배구부가 있는 지역이라면 다 다녀왔다. 제주도만 열 번 넘게 갔었으니까.  어릴 때지만 기억이 난다. 아니, 오히려 최근 일보다 어릴 때가 더 기억이 잘 난다. 그래서 국내는 지루하다고 생각해서 여행지가 없다 느꼈었다. 


 내게 있어 여행은,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상태’를 만들어 주는 곳이라서 기본적으로 주변에 한국어가 안 들리는 곳이어야 했다. 혼자이고 싶은데 막상 완전한 혼자는 싫으니, 한국어가 들리지 않는 외국이 좋았던 거다. 도피성 여행을 즐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집트나 스리랑카 같은 곳을 주로 다녔던 것 같다. 


 이런 내가 국내 여행을 꿈꾸게 한 책이 있다. 여행 에세이인데, <당신에게, 여행>이란 책이다.

최갑수 <당신에게, 여행>


 사진과 함께 있어서 더 와닿았다. 사진이 없었다면 별로 가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근데 글을 읽고 사진을 보니 너무 아름다워서 책을 읽으며, 꼭 출사 가고 싶은 곳을 따로 적어 놨다. 

 그리고 7~8년이 지났다. 이미 의도치 않게 다녀온 곳도 있고, 준비됐는데도 다녀오지 못한 곳도 있다. 어릴 땐, 차가 없어서 출사를 가지 못했다. 이곳들은 대부분 차가 필요한 곳이어서 면허를 따고 렌터카를 빌려 여행 겸 출사를 가려고 했었다. 지금은 면허가 있고, 차가 있지만, DSLR이 없다. 작은 카메라도 없다. 기존의 카메라들을 팔아버려서 가진 거라곤 휴대폰뿐. 그래도 요즘 휴대폰은 나름대로 괜찮다. 그래서 2월에 처음으로 여행 겸 출사를 다녀왔다. 코로나 19가 많이 심각하기 전이라 가능했던 여행이었다.





#.영덕 풍력발전단지



 2월 초. 이곳들 중 18번인, ‘영덕 풍력발전단지’에 다녀왔다. 메모엔 겨울 일출로 여행가라고 적혀있었지만, 일몰을 보게 됐다. 너무 멋졌다. 그리고 사람이 나와 친구뿐이어서 한적하면서도 하늘을 보면 이국적이었다. 이날 사진을 찍으면서 내가 계속했던 말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하늘을 볼 수 있구나!” 이었다. 그동안 내가 오빠를 따라다니며 갔던 국내는 여행이 아니었다. 그건 그냥 '방문'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내 첫 국내 여행의 첫걸음이 시작됐다. 조만간 최대한 사람이 없으면서도 제일 사람이 안 다닐 요일과 시간에 맞춰 다른 곳에 다녀올 예정이다. 



#.강릉 보헤미안 카페



 출사는 아니고 올 1월 1일, 정동진으로 일출을 보고 오는 길에 강릉에 있는 ‘보헤미안 카페’에 들렸다. 보헤미안 카페는 리스트 5번에 있었는데 이 책의 저자인 ‘최갑수’ 작가가 커피를 좋아해서 소개한 카페이다. 이 책은 보헤미안 카페가 유명해지기 훨씬 전에 책에 이곳을 담았다. 안타깝게도 내가 책을 읽을 당시엔 이미 많이 유명해진 상태였지만. 


 평소 커피를 좋아하는 내게 흥미를 준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을 읽고 이곳 커피를 꼭 마셔보고 싶었다. 이왕이면 박이추 선생님께서 내려주시는 커피로. 아쉽지만 박이추 선생님 표 드립 커피는 맛보지 못하고 사진만 같이 찍었다. 같이 사진 찍는 것도 흔치 않은 기회라 운이 좋았다. 해당 구절은 커피에 대해 지금만큼 한국에서 붐이 일지 않았을 때 읽은 거라 마치 명언처럼 느껴졌다. 앞부분은 알고 있었던 커피에 대한 지식이라면, 마지막 부분은 커피에 대한 감상적인 내용이다. 그래서 이 저자가 말하는 이 카페가 많이 궁금했다. 커피는 상당히 주관적이기에 맛이 어땠다는 평은 남기지 않겠다. 하지만, 이 구절 마지막 문장에 심히 공감하는 바다. 우리는 절대 죽는 날까지 같은 맛의 커피를 맛보지 못할 것이다.


커피는 복잡하다. 콩의 종류에 따라, 볶는 시간에 따라, 볶는 방법에 따라, 콩을 분쇄하는 방법에 따라, 물의 종류에 따라, 물의 온도에 따라, 불의 세기에 따라, 날씨에 따라, 장소에 따라, 커피를 내리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그의 마음에 따라, 함께 마시는 사람에 따라, 함께 마시는 사람이 누군인지에 따라, 그의 기분에 따라, 커피 맛은 달라진다.
그러니까, 커피 맛은 수만가지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죽는 날까지 같은 맛의 커피는 결코 맛보지 못할 수도 있다.


P.S. 

리스트에 있는 소매물도는 통영까지 갔으나, 배가 뜨지 않아서 실패.

별 다섯 개를 한 춘천 소양호는 개인적으로 물안개 사진이 너무 예뻐서 꼭 직접 보고 싶었다. 

이 책을 읽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때, 눈길이 멈춘 사진으로 가보길 추천한다.

물론 코로나 19를 조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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