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 서평
먼 과거 우리의 조상은 사냥을 하고 과일을 따먹던 수렵 채집인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조상들은 농경을 시작했고 수렵 채집 시절과 다르게 많은 식량을 생산하고 저장할 수 있게 되자 인구가 증가하고 식량을 구하기 위한 노동에서 벗어난 왕, 추장, 관료 등의 지배자 계층이 생겨났다.
농업혁명이 일어나기 전 수렵 채집 시절에는 인구가 빠르게 증가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먹을 것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엄마들은 걷지도 못하는 아기를 2명 이상 낳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첫째가 혼자 무리를 따라올 수 있을 정도인 4~5년 후에 둘째를 가져야 했다.
그러나 정착하여 사는 농부들은 집과 식량이 있기 때문에 굳이 4~5년의 터울을 두고 아이를 낳을 필요가 없었고 때문에 농업혁명 이후 폭발적인 인구 증가가 가능했다.
왜 우리의 조상들은 수렵 채집인을 그만두고 농부가 되려 한 걸까? 그들이 오직 더 많은 식량 생산이라는 기대 만으로 농사를 시작한 걸까?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 박사는 수렵 채집보다 식량 생산의 경쟁력이 더 커지게 만든 4가지 요인을 책을 통해 말해준다.
첫 번째, 야생 먹거리 감소
농업을 시작하기 전 수렵 채집인들은 아프리카를 시작으로 유럽 아시아 남북 아메리카로 퍼져나가며 그들이 생계를 의존하던 동물들, 특히 대형 포유류들의 씨를 말려버렸다. 최초의 폴리네시아 정착민들은 뉴질랜드에서 모아새를 멸종시키고 바다표범의 수를 격감시켰으며 호주 정착민들은 디프로토돈 같은 대형동물을 멸종시켜버렸다.
두 번째, 작물화할 수 있는 야생 식물 증가
기후 변화로 인해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야생 곡류의 생식지가 크게 확대되어 짧은 시간 동안 막대한 양의 수확을 거둘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야생 곡류를 수확한 일은 곧 비옥한 초승달 지대 최초의 농작물인 밀, 보리 등 곡류를 작물화하는 일의 전 단계에 해당한다.
세 번째, 야생 먹거리를 채집, 가공, 저장하는 기술 발전
밀 줄기에 밀알이 주렁주렁 달려 있어도 그것을 베고 껍질을 벗기고 저장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기원전 11000년 이후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풍부해진 야생 곡류를 다루게 되면서 식량 생산에 필수적인 방법, 도구, 시설 등이 발명되었다. 이러한 기술들은 농작물로써 곡류를 재배하는 일에 꼭 필요한 선행 조건이었다.
네 번째, 인구 밀도 증가와 식량 생산의 상호적인 관계
인구 밀도 상승과 식량 생산은 깊은 상호관계가 있다. 식량 생산은 수렵 채집에 비해 단위 면적당 식량 생산량이 많기 때문에 결국 인구 밀도를 상승시키는 경향이 있다. 식량 생산은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식량 생산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 4가지 요인을 보며 식량 생산의 시작은 환경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농업의 시작은 사람들에게 모든 점에서 이득은 아니었다. 농부들은 수렵 채집 시절보다 많은 식량을 생산했지만 사냥과 채집보다는 농사에 집중했기 때문에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의 종류는 오히려 줄어들어 영양상태가 나빠졌다. 또한 노동의 시간도 수렵 채집 시절보다 더 늘어났다.
식량 생산이 늘어나 인구가 많아지고 더 많은 입을 먹여 살리기 위해 더 많은 식량을 생산했지만 인구증가의 속도는 식량 생산량보다 더욱 빨랐고 농부들은 더 열심히 농사를 짓는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인구 밀도가 높아지자 질병도 창궐했다.
그렇다면 인류는 왜 다시 수렵 채집의 시절로 돌아가지 못했을까?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의 주장을 들어보자.
"작은 변화가 축적되어 사회를 바꾸는 데는 여러 세대가 걸리고 그때쯤이면 자신들이 과거에 다른 방식으로 살았다는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구 증가 때문에 돌아갈 다리가 불타버렸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쟁기질을 도입함으로써 마을의 인구가 100명에서 110명으로 늘었다고 가정해보자. 이중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굶어 죽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나머지 사람들이 과거의 좋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할 열 명이 있었겠는가? 돌아갈 길은 없었다. 덫에 딱 걸리고 말았다." - <사피엔스> 134p
환경적인 요인이 컸지만 인류는 더 안정적인, 더 편한 삶을 추구한 결과 아이러니하게도 더 골치 아픈 문제들을 떠안게 됐다. 물론 농업의 시작으로 인해 문명이 시작될 수 있었고, 인류 발전의 디딤돌이 되었지만 그 발전과 혁신의 달콤한 과실은 그 당시의 농부들이 아닌 소수의 지배자들이나 수백수천 년 후의 후손들이 맛보게 되었다.
그리고 농업을 시작할 조건이 되지 않아 근현대에 이르러서 까지 수렵 채집이나 유목민으로 살아온 부족의 후손들에게는 더욱 끔찍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식량을 축적하고 문명을 건설하고 수 없는 갈등과 전쟁 속에서 발전을 거듭한 농부의 후손들이 총(무기), 균(질병), 쇠(금속)로 중무장하고 그들의 영토를 빼앗으로 온 것이다.
그렇다면 같이 농업을 시작했지만 왜 서양이 가장 먼저 앞서 가게 된 것일까? 왜 스페인에서 온 겨우 170명의 사람들이 수만 명의 대군을 거느린 잉카제국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일까?
궁금하다면 이 책 <총, 균, 쇠>를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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