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시대 동안 효과적인 항말라리아 합성약품과 화학 살충제 DDT가 등장했다. DDT는 과학자 파울 헤르만 뮐러가 발견했는데 그는 DDT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게 됐다.
DDT의 등장으로 전 세계에 걸쳐 모기의 위세는 추락했고 사상 처음으로 인류는 모기와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되었다. DDT는 생명을 살리는 화학물질이라 칭송받았고 수많은 지역에 대량 살포된 결과 말라리아 발생률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탈리아의 경우 1948년 말라리아 관련 사망 사례가 단 한 건도 보고되지 않았다.
1930년부터 1970년까지 전 세계 인구수가 두 배 증가한 가운데, 모기 매개 질병은 놀랍게도 90%가량 감소하였다. - <모기> 中
인류는 DDT를 앞세워 모든 전선에서 모기를 압도했고 조만간 말라리아를 근절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나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시절부터 살아남은 모기들은 이대로 물러나지 않았다. DDT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모기들은 자신들의 유전자를 계속해서 이어 나갔고 면역력을 가지게 된 슈퍼 모기들이 역습을 준비하고 있었다.
모기제국의 역습
농부들이 DDT를 필요한 곳에 한정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넓은 땅에 살포하면서 환경이 나빠지고 내성이 생기는 모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모기의 진화론적 생존 본능은 우리의 예상보다 더 뛰어났다. DDT 내성 모기는 1956년 실제로 확인된 뒤 1960년대에 이르자 내성을 가진 슈퍼 모기들이 전 지구에 들끓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에 대한 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DDT가 워낙 효과가 좋아서 다른 살충제나 항말라리아 약물에 대한 연구가 부실했던 것이었다. 또한 항말라리아제를 살 여유가 없는 아프리카에 말라리아 감염 사례의 90%가 몰려 있었고, 때문에 돈이 되지 않는 항말라리아 개발 사업에 뛰어드는 기업들도 없었다.
내성을 가진 슈퍼 모기들은 다시 인간을 사냥하기 시작했고 지카 바이러스와 웨스트나일 바이러스 등이 말라리아와 함께 전 지구를 휩쓸었다.
새로운 희망
국제회의가 이어진 끝에, 1998년 말라리아 퇴치 파트너십이 창설되었고 2000년에는 게이츠 부부가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하고 말라리아 퇴치에 앞장서기 시작했다.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워런 버핏의 헤지펀드사 버크셔 해서웨이와 손을 잡았고 게이츠 부부와 버핏의 설득으로 세계 대부호 40명이 전 재산의 절반 이상을 증여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재단은 오늘날 게이츠 본인의 돈 310억 달러와 (...) 버크셔 해서웨이(워런 버핏이 운영하는 헤지펀드)의 주식 370억 달러를 운용한다. (...) 게이츠 재단은 세계 보건 연구에 미국 정부와 영국 정부에 뒤이어 세 번째로 많은 공여를 한다. (...) 게이츠 재단은 그 무엇과도 유착되지 않은 채 자선 사업을 투명하게 집행하고 처리한다. - <모기> 中
압도적인 자본력을 가진 게이츠 재단은 지금까지 말라리아 퇴치 사업에만 20억 달러를 지원했고, 에이즈, 결핵 등에도 총 20억 달러를 증여했다. 이들의 노력은 거대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백신 개발 성공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백신의 단점은 그 효과가 단기간으로 끝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허점을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이 바로 유전자 가위 기술이다.
빌 게이츠와 멜린다 게이츠
모기는 사라져야 할까?
DNA 서열의 일부를 잘라내고 원하는 다른 일부로 대체하여 유전자를 마음대로 잘라 붙이는 기술인 유전자 가위 기술은 빠르고 저렴하고 간편한 기술이지만 악용된다면 그만큼 치명적인 기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유전자 가위 기술에 7,500만 달러를 기부한 게이츠 재단의 빌 게이츠는 이렇게 말했다.
"신기술은 대개 회의론에 부딪힌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의 놀라운 발전을 계속하고자 한다면 과학자들이 안전수칙과 윤리강령을 따르는 한에서 유전자가위 기술과 같은 유망한 도구를 활용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우리는 유전자 가위 기술로 모기를 유전적 불임화하여 지구에서 멸종시킬 수도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그렇다면 "와! 드디어 인간이 승리했다!" 하며 모기를 멸종으로 몰아넣어도 되는 걸까?
게이츠 재단이 원하는 건 모기의 멸종이 아니다. 말라리아와 모기 매개 질병의 근절이 진짜 목표다. 유전자 가위라는 강력한 기술을 함부로 사용해 모기를 멸종시켰다가는 인간이 전부 이해할 수 없는 복잡계인 생태계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마구 사용하게 된다면 인류는 스스로 디스토피아를 탄생시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모기 매개 질병을 근절에 성공하면 모든 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걸까? 이 책의 저자 티모시 와인가드는 "질병 매개 모기를 멸절해도 다른 종의 모기나 곤충이 생태계의 빈틈을 채우고 또 다른 질병을 계속 전파하지는 않을까?"라고 얘기하며 우리가 이 기술을 사용할 때 극히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예를 들어 인류는 천연두 근절에 성공했지만 비슷한 시기 에이즈가 아프리카로부터 서서히 창궐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치명적인 질병이 천연두의 공석을 차지한 것이다.
이 기술을 사용했을 때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빌 게이츠를 비롯한 소수의 리더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개개인이 스스로 알아보고 관심을 가지고 함께 참여해야 더 빠르고 안전하게 유익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