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이 꼭 힘들지 않은 건 아니다.
딸이 새 생명을 낳는 순간을 지켜보고 몸조리를 해 줄 수 있는 친정엄마는 분명 행복한 엄마일 것이다.
나의 딸이 아이를 낳을 때 충분히 돌봐 주고 도움을 주는 일은, 내 인생에서 내가 하고 가야 할 일 중 하나이다. 내가 두 아이를 낳을 때 친정 엄마는 몸이 안 좋으셔서 산후조리를 해 주실 수 없었다. 홀시어머님과 함께 사는 상황이라 잠시 돌보미 아주머니가 오시고 시어머님의 도움을 받으며 두 아이를 씩씩하게 키웠다. 그 때 난 다짐했다. 나의 딸의 산후조리는 내가 꼭 해 줄 수 있게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겠다고.
내 나이 60이 넘으니 손주가 있는 친구들이 하나둘 씩 늘어난다. 이들의 손주보는 일은, 결혼을 안 한 자식을 둔 이들이나 결혼했어도 아기가 없는 이들이게는 새로운 스토리라 귀를 쫑긋하며 집중해서 듣는다. 나 역시도 친구들이 겪는 생생한 이야기에서 지혜를 얻어 보려고 귀를 기울인다. 특히 친구들 중에는 나처럼 딸이 미국에서 살고 있어서 손주가 태어나면 산후조리를 해 주고 와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한 친구는 3주동안 뉴욕 근교에 있는 딸의 집에서 첫 손주를 봐주었다. 산후조리는 아기 보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 매 끼니를 챙기고 집 안 일도 해내야 한다. 몸조리가 필요한 딸이 할 수 있는 일은 수유정도이고 그 어느 때보다 쉬어야 하니 육아, 요리, 청소가 고스란히 친정엄마의 몫이 된다. 사위도 도움을 주겠지만, 여전히 손님 같은 편한 존재는 아니다. 이 친구의 사위는 백인인데 아기를 참 잘 돌봐 주어 다행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뒷 방에서 혼자 우는 일이 꽤 여러 번 있었다고 했다. 무슨 일이 있어서 혼자 울기까지 할까? 운동으로 다진 몸에 늘 유쾌하고 맘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바로 말해 버리는 아주 당찬, 어떤 면으로는 매우 성격이 강한 이 친구가 뒷방에서 혼자 울었다니? 어떤 일이면 그 멀리 날아가서 혼자 우는 일이 생길까?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라는 친구들의 반응에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별거 아닌 일로 눈물 날 일이 많더라. 예를 들면 내가 미역국에 갈비찜에 한국 요리로 딸 잘 먹여 주려고 했거든. 하루는 파스타를 만들었는데, 사위가 하는 말이 이제야 제대로 된 끼니를 먹는다고 말을 하는 거야. 미국인이니 그럴 만한데 이 말에 얼마나 속상한지 뒷방에 가서 눈물을 흘렸다는 거 아니니. 이게 3주이니 망정이고 한국가면 남편에 내 집이 있으니 이 정도지, 남편도 없고, 계속 이런 상황이라면 얼마나 슬펐을까 싶더라. 이것뿐이 아니야. 내가 아기를 데리고 잤는데, 둘이 자기들 방에 들어가 자는 뒷모습을 보는데도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하는 느낌이 들더라. 묘한 느낌이야. 이건 해 봐야 알아..... 아이는 무조건 엄마가 키워야 해."
"그래도 딸인데 좀 섭섭한 마음을 나누지 그랬어. 그 때 섭섭했다고"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 딸도 너무 힘들어 보여서 내가 섭한 거 말 안 하게 돼. 그래서 참고 눈물흘리는 거지..."
친구가 손주보러 가서 눈물 흘렸다는 말에도, 딸이 마음 아플까봐 아무 말 못한다는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바로 엄마라는 존재가 이렇다는 걸 딸은 아마 먼 후일 알게 되겠지.
그랬더니 다른 친구가 말을 이은다.
"난 반대 경험이 있어. 30여년 전이겠네. 남편이 미국 유학 중에 내가 첫 애를 낳았잖아. 그 때 우리 친정 엄마가 오셔서 1달동안 몸조리해 주셨거든. 난 그때 몰랐어. 엄마가 뒷 방에서 여러번 눈물 흘리셨다는 것을. 아주 한 참이 지나서 엄마가 말씀하시더라고. 그때 엄마도 남편이 한국에 있는데도 이리 섭한데 남편이 없는 사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셨대. 뭐가 그리 서운했냐고 물었더니 엄마도 별 일 아닌 것에 섭했다고 하시는 거야. 예를 들면 남편이 콜라 캔 6개 한 꾸러미를 사다 냉장고에 넣어 두었는데, 장모님 드시라는 말을 안 하더래. 그래서 콜라를 못 마셨다는 거야. 물론 콜라를 좋아하는 건 아니신데, 장모님 드시라는 말을 안 한 것이 섭하셨다는 거지. 냉장고에 있는 것도 내게 아닌 것 같아 마음대로 먹게 되지 않은데 그런 저런 일들이 섭하셨다고 하더라고."
손주가 생기면 우리는 축하해 준다. 손주를 봐 주러 미국이라도 가면 좋은 일로만 가득 찰 것 같은 상상을 한다. 막 태어난 생명을 돌보고, 아기가 세상에 적응하는 그 귀한 시간을 함께 하고, 딸에게 도움을 주는 이 아름다운 일이 막상 현실이 되면 그리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다. 손주 사진을 보여 주며 사랑에 빠진 얼굴의 행복한 초보 할머니들. 그 얼굴 뒤에는 엄마가 된 딸을 돌봐 주느라 참아야 했던 시간이 있음을 이제 알 것 같다. 누구는 예쁜 손주를 일주일에 한 두 번 봐 주면서도 힘들다고 하고, 그 누구는 아직도 손주를 매일 돌보며 마음의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하며 살고 있고, 그 누구는 가장 비싼 아이 돌보는 분을 고용해 주고 손주 이쁜 것만 즐기면서도 잠시 돌보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모두 자기 상황에 맞게 할머니 역할을 하고 있지만, 모두 같은 말을 한다. '손주 보는 일은 힘들지만 손주는 이쁘다!' 손주가 생기는 일은 축하 받을 일이지만, 그렇다고 힘든 일이 없다는 것과는 다르다.
나 딸 민에게 이런 저런 스토리를 다 이야기해 주었다.
"민아. 내 친구들 이야기 들어 보니까 손주 돌보면서 뒷방가서 우는 일이 한 두번이 아니래. 엄마는 이런 거 생각도 못했거든. 내가 뒷방가서 운다는 게 말이 되니? 엄마는 이런 저런 사례를 다 듣고 이런 것을 방지할 대책을 세울 거야. 어디에서 서운한 일이 생기는지 알아내고 미연에 방지할 대책을 세워서 우린 극복을 해 보자."
딸 민은 천연덕스러운 것인지 순진한 것인지 한 마디 한다.
"엄마, 저의 집은 너무 작아서 뒷방이 없어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혼자 우실 뒷방 같은 거 없으니...."
의미심장한 말이다. 이 말을 듣고 피식 웃음이 나면서 두 개의 그림이 떠오른다. 웃고 있는 나와 울고 있는 나. 그리고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내려 오듯 내 마음을 진정시킬 생각이 스쳐지나 간다.
뒷 방 가서 울릴이 있으면 좀 어떤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것이지.......
지금 안 겪어서 하는 말이겠지만, 울 일도 많다는 걸 알고 시작하니 조금 위안이 된다. 크리스마스 캐롤 "울면 안 돼~" 가 아니라 " 울면 어때?"를 생각하는 할머니의 자세다. 지금은 이렇게 말하지만 난 후에 어떤 말을 더 많이 하게 될까? 나도 궁금하다. 인생은 살맛은 바로 이 알 수 없음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