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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ena Jul 05. 2019

8. 남겨두는 것과 남겨지는 것

파리에 눈이 왔다. 마들렌 성당 앞에서 고스란히 그 눈을 맞았다. 성당 안에서 열리는 클래식 공연의 입장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이 공연을 예매한 건 순전히 마들렌 성당 앞에 붙어있던 노란색 포스터가 나를 불렀기 때문이다. 노란색의 그 포스터는 길을 걷던 나를 그 앞에 멈춰 세웠다. 가만히 서서 내가 아는 글자들을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Mozart, Requiem. 장송곡이네. 집에 가자마자 바로 공연을 예매했다.

머리와 어깨 위에 쌓인 눈을 폴폴 털어낸 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묘한 감정을 느꼈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성화와 성상들, 그리고 서늘하고 무거운 공기가 이 장소가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줬기 때문이다. 이 곳은 성당이었다. 엄숙한 의무와 간절한 소원이 한데 가득 모여있는 장소. 나름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지만 우울증 진단을 받은 이후에는 한 번도 성당에 간 적이 없었다. 분명 기도하고 싶은 것들은 가득 있었다. 하지만 그 소원들은 모두 마음속 무거운 우울에 눌린 채였다. 애써 꺼내서 그것들에 공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서였다. 매일 구체적으로 상상하던 죽고 싶다는 생각들 또한 죄책감이 되었다. 그건 나의 종교에서 제일 금기하는 것 중 하나였다.


자리에 앉았을 때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내가 성당에 왔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 나게 했다. 갑자기 숙제를 안 한 채로 교실에 앉아있는 기분이 들어서 안절부절 견딜 수가 없었다. 마침 그때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 웅장하고 묵직한 합창 소리는 금세 내 귀에 꽂혀 들어와서는 머리부터 천천히 아래로 흘러 내려갔다. 무언가도 함께 흘러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속에 눌러둔 채 잊고 있던 소원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에 뭉텅이로 입구를 향해 걸어 나가는 사람들 가운데 몇몇 사람들이 빠져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성당 뒤편에 으레 놓여 있는 초 더미로 향해서 하나를 집어 불을 붙이고는 가만히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소원을 궁금해하는 편이었다. 그 모습에서 문득 파리에 도착한 첫날이 생각났다. 아파서 화장실 바닥에서 뒹굴 때, 만약에 안 아프게 해 주시면 성당에 나갈게요 라고 얘기했던 순간을. 공들인 소원은 아니었으나 그때 제일 필요한 소원이었고 어쨌든 나는 나았다. 이제 약속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에 다시 다니기로 결심한 천주교 신자가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은 고해성사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신부님과 칸막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죄를 고백하는 바로 그 장면에서 나오는 것이다. 내 죄를 상세하게 영어나 불어로 설명하고 표현할 자신은 없었으므로 한국인 신부님이 계신 곳을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사람 없는 평일 미사에 가서 고해성사만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른 평일의 어느 요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지하철 역에 내려서는 방향을 잘못 들어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약간 늦게 눈치챘다. 미사 시간까지는 10분밖에 남아 있지 않아서 순간적으로 화가 나던 차에 귀여운 눈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병맥주 뚜껑을 입고 있는 귀여운 눈사람이라니. 게다가 손가락이 달려있는 나뭇가지가 내가 원래 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덕에 금세 사그라든 화를 뒤로하고 뛰기 시작했다.


성당에 도착하니 5분 전, 시간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 숨이 찬 채로 빠르게 훑어본 성당 내부는 작고 소박했다. 수려한 것들로 가득 찬 마들렌 성당이 뿜어내던 웅장함은 없었다. 하지만 이 작은 공간 안에 지금 드문드문 모여 앉아 있는 사람들이 전부 한국 사람일 거란 사실은 다른 의미로 웅장했다. 지나치게 눈에 띌 거라는 생각에 괜스레 눈치를 보면서 고해실로 쭈뼛대며 들어갔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음... 고해성사 본 지 반년이 넘은 것 같습니다. 어... 사실 성당 안 나간 지 오래됐습니다. 그리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지나치게 많이 해서 죄책감이 들어요. 신자로서 그러면 안되는데... 음... 항상 무서웠어요. 죽고 싶은데 자살은 죄라고 하니까... 그리고... 네... 그런 것 같아요. 누가 하지 말라고 하는 건 원래 잘 못하겠더라고요... 네.. 이상입니다. 그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용서하여 주십시오.


고해성사를 볼 때의 내가 항상 그러하듯이 횡설수설하며 말했다. 여태까지 많은 고해성사를 봤지만 죽고 싶어서 고해성사를 본 적은 처음이어서 더욱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지 어려웠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에 신부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사실 뭐라고 말하셨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 울었던 기억이 있는 걸 보면 아마 다정한 말이었을 것이다.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하는데도 항상 다정한 대꾸가 돌아오는 고해성사 시간을 나는 사실 조금 좋아했다. 가끔은 그런 내가 교활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번 고해성사도 다른 모든 고해성사와 같이 나는 이 교우의 죄를 용서합니다, 하는 말을 듣는 걸로 끝났다.   

분명 프랑스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어로 진행되는 미사와 다 같이 한국어로 합창하는 성가 시간이 신기했다.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 마주치는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 조금 설레었다. 미사가 끝난 뒤, 나는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맨 뒤에서 조금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사실 누군가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일 이른 시간에 젊은 사람이 성당에 오는 일은 한국이든 여기든 흔하지 않은 일인 건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아주머니들이 와서 한 마디씩 인사를 건네주셨다. 처음 보는 분이네, 안녕하세요, 젊은 사람이 평일 미사를 다 오고 대단하네. 하나의 인사말에 한 번씩 생긋생긋 웃으면서 꾸벅거렸다. 갑자기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하나도 프랑스 같지 않아서. 그때 마지막으로 나가시던 분이 괜찮으시면 기도 같이 하고 가실래요?라고 물어보셨다. 틀어 올린 머리와 테가 또렷한 안경, 약간 날카로운 눈초리. 사감 선생님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망설임 없이 네 하고 대답한 뒤 그 뒤를 졸졸 따라갔다.


타지에서 한국 사람을 만난다는 게 이렇게나 반가운 일인 줄 하나도 몰랐다. 타지에 있어본 적도, 주변에 한국 사람이 없었던 적도 없어서. 게다가 그냥 한국 사람도 아닌 아주머니들이라는 점이 사람의 마음을 몽글거리게 만들었다. 엄마가 생각났다. 한국은 지금 쯤 새벽인데 자고 있을까? 우리 엄마도 평일에 성당 나가서 이렇게 기도 열심히 하는데. 잔뜩인 엄마의 걱정과 기도 안에 파리에서의 내가 더해졌을 생각을 하니 괜스레 미안해졌다. 그리고 엄마 같은 사람들로 가득한 이 곳에서는 파리에 와서야 마음속에서 겨우 고개를 내민 소원들을 쉽게 꺼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도를 마치고 난 뒤에는 예상했던 대로 여러 가지 질문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학생이에요? 여기 산 지 얼마나 됐어요? 뭐? 이제 1주일? 아니 1년 산 사람 같은데? 느낌이 그래! 나이는? 뭐 하다 왔어요?


잘 보이고 싶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한 번에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을 사용했다. 저는 성당 청년회에서 회장을 했었고 교리교사도 3년 정도 했었어요. 그 문장은 확연한 효과를 불러왔다. 어쩐지, 역시나 로 시작하는 칭찬들을 몰고 온 것이다. 어쩐지 낯설지가 않더라, 역시 심상치 않더라니.


아까 내가 사감님 같다고 생각했던 분은 기도 모임의 단장님이었다. 단장님은 불어로 나에게 말을 건네셨는데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표정을 짓자, 깔깔 웃으시더니 아 맞다, 어쩐지 여기 계속 살았던 사람 같아서 나도 모르게 불어로 말했네. 하며 내 어깨를 통통 두드렸다. 그래서, 파리에는 언제까지 머무른다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분명 귀국하는 날짜는 3주 뒤의 월요일로 정해져 있었다. 저번에 그 남자가 나에게 물어봤을 때와 정확히 똑같은 기분이 들었다. 갑작스레 내 마음에 들어온 것을 남겨두고 떠나는 것이 조만간은 아니고 싶었다. 할 수 있는 한 오래 있고 싶었다.


대답을 얼버무린 뒤에 잠시 생각한 것은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홀가분하게 지내보고 싶어서 온 파리인데, 이대로라면 한국이랑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었다. 따뜻하게 반겨주는 장소, 설레는 사람, 연락하면 만날 수 있는 친구. 하지만 이런 다를 바 없는 것들이 분명한 안도감을 가져다주었다. 의도하지도,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것들이었다.


그리고 다 같이 카페에 갔다. 앉자마자 다들 능숙하게 불어로 주문을 하는 모습에서 각자 파리에서 살아왔을 오래됨 삶을 잠시 상상했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이 있었을까? 이렇게 잠깐 왔다가 가는 사람들. 인연의 결말을 남겨두고 떠나는 사람과 남겨지는 사람으로 설명하자면 이번의 나는 명백하게 남겨두고 떠나는 사람이었다.


한국에 간 지 너무 오래됐어. 한국 가면 거기 있는 여자애들은 다 세레나처럼 예쁜가? 맞아, 다 예쁠걸. 아니 근데 아까부터 카페 사장이 자꾸 이 쪽 힐끔거리는데? 분명 세레나 쳐다보는 거야. 프랑스 남자들이 얼마나 예쁜 여자 차별하는 줄 알아? 어휴. 이것 봐. 지금 굳이 또 와서 물 따라주는 거.


나름의 애정 섞인 농담에 같이 킬킬대는데 무언가 계속 쿵,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카페를 나섰을 때 옆구리를 찔려 뒤를 돌아보니 카페 주인이 유리창 안에서 손키스를 날리고 있었다. 똑같이 손키스로 답례하자 거리는 웃음소리로 가득해졌다. 쿵 하는 소리가 또 들리고 나는 눈치챘다. 여기에 내 마음이 남겨지는 소리였다.


원래 내가 거쳐왔던 대부분의 여러 인연의 끝에서 나는 남겨두고 떠날 수 있는 쪽이었고, 그건 별로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완전히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나 여기에 내 마음이 너무 많이 남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이번에는 오히려 남겨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들이지 못했던 소원들이 아까의 기도와 함께 밖으로 나오게 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슬픔에 대해 구원은 없어도 어떤 방식으로든 위안은 항상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집으로 돌아가서 항공사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OO항공이죠? 왕복으로 끊었는데요, 돌아가는 편도 항공권 취소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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