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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Aug 13. 2024

9 병렬독서 중입니다

어제 배낭 두 개와 숄더백 하나를 둘러메고 일주일 예정으로 집을 나간 딸의 방을 둘러보았습니다. 스무 살 넘은 그의 방은 이십 년 동안 엄마 눈에 한 번도 만족스럽게 정리되어 있던 적이 없네요.(^^) 먼지 쌓인 기타는 닦아서 케이스에 넣어주고 지난 가족 여행 때 쓰고 널브러져 있던 프로젝터와 블루투스 스피커, 각종 케이블을 분류해서 지퍼백에 넣었습니다. 이불과 침대 시트는 빨아서 다시 깔아주렵니다. 청소기로 바닥까지 말끔하게 밀고 나니 아침부터 땀으로 범벅입니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책상에 앉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책들을 나열해 보겠습니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1, 2>, <돈의 심리학>, <벨칸토>, <언어의 무게>.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은 '중독'이라는 주제로 한 달간 하는 독서토론 수업의 두 번째 책입니다. 한 달간 네 개의 작품을 읽는데 그중 두 번째 책입니다. 첫 시간에는 민음사에서 1년에 3회 발행하는 '한편'이라는 인문잡지 [중독] 편을 읽었습니다. 중독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부터 중독을 둘러싸고 사회적으로 어떤 담론들이 형성되어 있는지 다양한 직업군에 있는 10명의 필진들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이 책모임을 기획할 때 저의 질문은 부정적인 중독의 이미지와 긍정적인 루틴의 이미지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였습니다. 애착하는 대상이 다를 뿐 가령 행위에 주목한다면 중독과 루틴은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는 나쁜 것으로 다른 하나는 좋은 것으로 치부됩니다. [중독]에서 가장 인상 깊게 동의되는 단락을 만났습니다. 


"중독 없는 세계가 있을까? 나를 유지하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 우리는 종종 반복의 안락함에 기댄다. (중략)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유지하는 한 삶은 하나의 중독에서 다른 중독으로 계속 이행해 가는 과정이고, 중독이란 그저 삶의 또 다른 양상을 나타내는 이름일 뿐이다. 중독의 이러한 개념적 확장이 중독과 일상을 무분별하게 뒤섞어 버린다고 우려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중독자의 우화를 일상의 서사로 취급하면 중독의 바깥에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중독의 우화와 일상을 유지하는 서사 사이의 공통점을 강조하는 것은 삶을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볼 만한 기회를 제공한다. (중략) 중독이 없는 세계를 그릴 수 없을지라도, 지금 여기의 중독 너머를 상상할 수는 있다."(허성원. 섹스 중계자들의 우화, <중독>)


한 동료가 본인은 커피와 알코올 중독자라했습니다. 나는 금융업 쪽의 과장님(혹은 부장님)인 그가 책과 독서모임의 중독자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누구보다 오래 정기적으로 독서모임을 이끌어 왔으며, 각종 독서모임의 참가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중독자일까요, 자기 루틴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일 까요?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은 이번 주에 토론할 책입니다. 그래픽노블이에요. 한참 전에 북튜버 김겨울 님이 소개로 알게 되었습니다. 책 속의 독서 중독자들이 갖고 있는 괴상한 편집증들을 보면서 뭔지 알 것 같고 웃음이 난다면 여러분도 분명 독서 중독자입니다.

     

      

<돈의 심리학>은 최근 출간된 <불변의 법칙>과 함께 모건 하우절의 베스트셀러 저서입니다. 이 독서모임의 참가자들은 서울 강남의 자영업자들입니다. 그들은 절대적 시간과 온 몸을 소진시켜 가며 일하지만 가끔 이 끝없는 전력질주에 고민하고 회의합니다. 그들의 관심사와 동떨어지지 않으면서도 그들에게 잠깐의 포즈 타임을 줄 수 있는 책으로 모임을 리드하고 있습니다. 


서울 혜화동에 [소원책담]이라는 작은 서점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주최하는 온라인 '달팽이 독서회'에 참여하고 있어요. 파스칼 메르시어의 <언어의 무게>를 읽는 중입니다. 영화화되기도 했던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작가 그분입니다. 저자가 철학과 교수였을 때는 본명인 '피터 비에리'로 책을 냈었습니다. 교수직을 그만두고는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을 사용하지요. 두 배로 이름값을 하는 작가입니다. <언어의 무게>는 역시 꽤 오래 소장만(^^)하고 있었습니다. '언어'는 항상 나의 이유 모를 관심사라 출간되고 얼마 안 되어 사서 쟁여두었습니다. 그러고는 육백 쪽이 넘는 책이라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요. 어디선가 같이 읽을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다(ㅎ). 이렇게 두꺼운 책은 함께 읽을 동료가 있을 때 시도와 완독 가능성이 높아지니까요. 


오랜만에 문학을 읽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질 만큼 마음을 뒤집는 글이 아니라서 더 좋습니다. 하나도 버릴 게 없이 문장들이 좋아서, 읽기 시작하면 쑤~욱 빨려 들어갔다가 오늘은 여기까지~, 하면 금방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책 속 인물들의 언어유희를 즐겁게 음미하고 있습니다. 하루 두세 챕터씩 읽는 계획을 따라가기에 적합한 책입니다. 그리고... 달팽이 독서회 리더는 현재 두바이에 살고 있습니다. 지난주엔 스리랑카로 여름휴가를 갔다고 하시더군요. 진짜 이 시대에 독서모임은 장소가 걸림돌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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