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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인혁 Oct 30. 2022

이태원 압사 참사, 한국의 과밀 문화


하룻밤 사이에 수많은 이름이 사라졌다


 큰 사건과 사고들은 주기적으로 일어난다. 이번에는 핼러윈을 맞은 이태원이었다. 어젯밤과 새벽 사이, 100m 남짓한 골목에서 149명이 목숨을 잃었다. 10월 29일 22시 22분 첫 신고를 시작으로 소방대응 3단계가 발령된 23시 50분까지, 1시간 28분 남짓한 시간이었다. 그만큼 심각했다.

 10월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핼러윈 압사 참사로 현재(30일 10시)까지 151명의 사망자가 집계되었다. 30일 2시, 소방당국의 첫 1차 브리핑(59명 사망, 150명 부상)에서 4차 브리핑(149명 사망, 76명 부상)까지 이어졌다. 계속해서 피해는 늘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기괴함과 불편함, 비현실적인 그림


 무서웠고, 기괴했고, 불편했고, 믿기지 않았다. 돌아다니는 영상과 뉴스 속의 영상 속 사람들은 마네킹처럼 보였다. 힘이 없이 축 처진 체로 아스팔트 위에 누워있는 코스튬을 입은 사람들, 온 힘을 다해 심폐소생술을 하는 사람들.

 무엇보다도 '압사'라는 사인이 뇌리에 박혔다. 외신 기사에서만 보던 그 압사를 오늘 뉴스에서 마주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나 '대구 지하철 참사',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등, 한국의 큰 참사들과는 결이 달랐다. 과거의 참사들은 독립적인 공간과 주로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일어났다. 사고 장소와 사고 장소가 아닌 장소의 구분이 명확했었다.

 하지만 이번 '이태원 압사 참사'는 너무도 우리 일상에 가까운 열린 길거리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더는 나와 먼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고, 자체만으로도 내게 위협이 되었다. 일상의 공간에서, 일상에서 마주하기 어려운 사인. 그 이상한 조합은 더욱 이 참사를 더욱 무섭게 만들었다.



화살표는 누구에게 향할 것인가


 벌써부터 이태원 압사 참사의 책임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 많은 사람이 모인 원인을 제공한 '유명인'일지, 모든 것을 책임지는 사람인 대통령이 될지, 직접적인 안전을 담당하는 용산 경찰이 될지.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게 하고, 심판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더욱 기괴해서 머리에 남는 그림으로 다가왔기에, 사람들은 더욱 두려워하고 충격을 받았다. 그 두려움과 충격은 분노로 바뀌기 쉽다. 과연 이 화살표는 누구에게 향할 것인가. 분노만 하면 끝인가?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항상 99°C였다


 100°C가 되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는 항상 99°C로 살고 있었다. 과연 압사가 먼 일이었는가? 대학 축제에서도 마주하는, 매일 출근길의 지옥철에서 마주하는 일이 아니었나? 이번 이태원 참사는 99°C에서 단 1°C만 올랐을 뿐이다. 관련된 위험은 언제든 주위에 산재한다.

 한국 특유의 과밀문화. 바뀔 것인가?바꾸어야만 한다. 새로운 형태의 참사는 막을 수 없어도, 적어도 같은 참사는 막아내야만 한다. 이것이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다.  

과밓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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