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향지 Aug 18. 2022

첫째보다 잘 먹는 둘째

딸 둘 엄마의 요리 콤플렉스_제2장 자기 위안적 선택

첫째가 27개월이 되던 달, 둘째가 태어났다. 정확하게 따지면 예정일보다 10일 먼저, 정확히 38주 5일 되던 날이다. 그것도 여자 아이치고는 3.78kg라는 적지 않은 몸무게로. 예정일에 나왔으면 제왕절개를 할 크기였을 수 있었기에 난 일찍 만난 아이를 다행스러워할 정도였다.


둘째는 첫째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잘 먹었다. 분유량은 3개월도 되지 않아 200ml를 훨씬 초과했기에 나는 300ml의 분유병으로 바꿨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아이는 3시간도 되지 않아 먹을 것을 요구했다. 어떤 날은 280ml을 먹여도 계속 울어서 350ml까지 한번에 먹인 적이 있다.



내가 어머님께 "아기가 분유를 한 번에 350ml나 먹어요!" 하면 "우리 집안에 그렇게 잘 먹는 애가 있다니 신기하구나!"하셨고, 아버님은 "주하는 엄마닮아 쑥쑥 크려나보다!"하시며 좋아하셨다. 그런데 이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5개월부터 아이의 키와 몸무게는 돌이 되도록 거의 늘지 않았다. 아이는 분명 잘 먹고, 잘 싸고, 아프지도 않았다. 먹고 난 걸 잘 게워내긴 했지만, 배고플 때면 늘 먹였기 때문에 에너지 공급엔 별 문제가 없었다. 심지어 이유식도 잘 먹었다. 만든 것이든 산 것이든 잘 먹었고, 간식도 크게 가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왜 성장이 정체상태인지...


그래도 나는 걱정되지 않았다. 아이는 잘 놀고, 잘 쌌다. 먹는 것은 취미이자 특기인 것 같았다. 첫째만큼 새로운 것에 낯설어하지 않았다. 음식이 손에 묻었을 때는 울지 않고, 알아서 핥아먹었고, 어른들이 식탁 위에서 음식을 먹고 있으면 흥분하면서 '나만 빼놓고 먹어?'라는 표정으로 음식 위로 돌격하는 경우가 잦았다. 먹다가 졸 때 입에 문 것을 뺐을라치면 다시 깨서 정신을 차리고 먹을 것을 먹는 모습을 보며 우리 부부는 즐거워했다. 심지어 우리 첫째뿐만 아니라 보통 아이들이 "맛 없을 것 같아!"하며 입을 안 벌리는 우엉조림을 둘째는 스스로 세 개나 집어먹었다. 식욕부진인 첫째와 식욕과다인 둘째를 보며 나는 '왜 신은 내게 극단적 경험을 하게 하시나'라며 행복한 비을 내질렀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둘째는 첫째보다 가리는 것도 적고, 먹는 양도 그 나이 때의 첫째보다는 많다.


첫째와 둘째의 식욕차이는 태어날때부터 있긴 했지만, 환경적 요인도 무시할 수가 없는 것 같다. 난 둘에게 분명 다른 환경을 제공했다. 의도한 것이라기보단 상황에 따른 불가피한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첫째 때는 유난이었다. 아토피가 있다는 이유로 유기농 과자조차 잘 안먹였었다. 첫째 입에 들어가는 이유식이며 유아식의 99.9퍼센트가 From 유기농 재료였다. 돌 전인데 13개월이 지나 먹을 수 있는 요플레나 치즈를 먹이면 기겁을 했다. 단맛 나는 요구르트나 우유는 큰 맘 먹고 가끔 먹이는 특식이었다. 매끼 다른 메뉴로 식판을 골고루 채워주고 나서야 '이게 엄마지'라며 뿌듯해했었던 것 같다.


근데 둘째에게는 그저 불쌍함뿐이다. 아침에 서둘러 첫째가 잘 먹는 메뉴를 만들어 먹이는데 자기도 달라고 하면 그제서야 분유 먹인다. 어린이집에 첫째 데려다주고 와서 배고파서 허겁지겁 내 입으로 밥 넣을 때, 둘째가 안아달라고 징징대면 내 입으로 한 숟갈, 둘째 입으로 한 숟갈 하면서 먹인다. 둘째 반찬은 첫째가 먹다 남은 것일 때가 많다. 각종 수제 간식을 해먹이던 첫째와 달리 둘째 때는 징징대면 그제서야 시중에서 산 간식을 쥐어준다. 그러다가 둘째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귀찮은 듯이 밥 한 공기 위에 반찬 듬성듬성 올려서 적당히 비벼 먹인다. 그러다보니 둘째는 식판에다 안 차려줄 때가 많다. 둘째는 15개월만에 사탕, 초콜릿, 피자, 햄, 웨하스, 빼빼로 등 온갖 불량 군것질과 가공식품을 정복했다.  


정성들여먹인 첫째는 성장보다 '까탈스러움'이 남았고, 막 먹인 둘째는 '까탈스러움'보다는 '호기심'이 남았다. 가끔 생각한다. 어쩌면 결핍을 주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내 과도하게 적극적이고 열심인 성격이 아이들에게 결핍이 아닌 과잉을 선사했고, 그것이 음식에 대한 호기심을 줄이는 결과를 낳지 않았을까하는...


잘 먹던 둘째는 커가면서 음식에 대한 기호가 생기기 시작했다. 5살 정도가 되자 좋아하는 음식은 빨리 많이 먹어치우는 반면, 싫어하거나 관심없는 건 식판에 올려두지도 못하게 했다. 두루두루 잘 먹으면 좋으련만 둘째 역시 낯선 것을 어려워하고 주관이 강하고 섬세한 여자이였다.









작가의 이전글 잘 먹는 아이 vs 안 먹는 아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