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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향지 Aug 17. 2022

잘 먹는 아이 vs 안 먹는 아이

딸 둘 엄마의 요리 콤플렉스_제2장 자기 위안적 선택

아이가 그리 뚱뚱하지도 않는데, "너무 잘 먹어서 걱정"이라는 엄마들의 말을 들으면, 나는 속으로 '내(안 먹는 아이 엄마) 앞에서 뭔 자랑이래?'하고 코웃음치기 일쑤였다. 그 코웃음이 동조의 한숨으로 바뀐 건 얼마 전 한 저녁시간을 통해서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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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교회에서 행사단체 연습이 있어 일행들과 식사를 함께하기로 한 저녁. 일행 중 한명이 대표해서 김밥을 사온댔는데,  분명 아이는 잘 안먹을 것 같아 (입이 작아 먹이기도 번거로움) 난 마치 선심쓰듯 안 사가도 되는 피자 한 판을 자청해서 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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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저녁시간. 나는 식탁 위에 아이가 그나마 잘 먹을 법한 포테이토 피자 한 판을 올려놓았다. 그런데 뚜껑을 열자마자 아이들이 달려들었고, 피자는 순식간에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딸 아이 것이라도 사수하기 위해 재빨리 피자 한 조각을 가져와서 다른 아이들이 먹지 못하도록 손으로 찢어서 딸 아이 앞에 놓았다. 그리고 포테이토 한 조각을 그녀의 작은 입에 밀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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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아이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나는 멈춰있었던 반면, 우리 옆에 앉은 통통 남아D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는 피자 한 조각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론 다른 피자 한 조각을 재빨리 먹어 삼킨 후 금세 다른 피자를 움켜쥐었다. 그러면서 피자 사수를 위해 다른 아이의 동태를 살피느라 눈을 마구 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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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 D를 포함한 아이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양을 다 먹었고, 식사는 거의 끝나는 분위기였다. 딸 아이가 두 입 분량을 아직 다 먹기도 전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마음이 급해 딸 아이한테 "다 먹었어?"라고 연신 물었지만, 딸 아이는 속 터지게 고개만 내저었다. D의 시선은 이내 딸 아이 앞에 남아 있는 피자 조각에 머물렀다. 난 모른척 남아있는 두 개의 작은 피자 조각 중 '치즈가 듬뿍 있는 조각'을 쥐어서 딸 아이의 입에 넣으려다가 딸 아이가 밀어내는 바람에 주춤했다. 그조차 먹겠다는 눈빛의 D를 느꼈을 때의 아찔함이란. 나는 친절한 척 딸 아이 앞에 유일하게 남은 '피자 가장자리 부분'을 D에게 내밀었다. 그때 나는 우리 앞에 피자의 가장자리 부분과 중앙 부위의 차이를 아는 어른이 그 현장을 오래 주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곤 좀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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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려는데, 피자를 한 조각도 먹지 않은 D의 엄마가 내게 와서 "피자 너무 잘 먹었다"며 몇번이나 인사했다. 나는 그제서야 평소 주변사람들이 그 엄마 주변을 지나치며 "D는 정말 밥을 잘 먹더라!" 할 때 그 엄마가 고개를 숙인채 "아~쪽팔려"하며 중얼대는 이유를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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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는 자식을 둔 엄마의 쪽팔림이나 안 먹는 자식 둔 엄마의 번거로움이나 적당함을 지나친 것들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한 저녁. 나는 잠자기 직전까지 '어떤 불편함이 더 불편할 수 있을 것인가?'를 따져보며 잠이 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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