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잘 먹이기 위해 그간 적지 않은 책을 본 것 같다. 유아식 조리법부터 밥상머리 교육법과 관련한... 책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고 하더라도 육아전문가들이 입모아 말하는 룰이 있는데, 내게는 한결같이 거슬리는 것들이다. 대표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매운 김치 대신 조미료 없는 백김치. 몇년이 지난 지금도 잘 안먹고 있다.
아이에게 먹을 것을 강요하지 말라.
아이에게 밥을 강요하고 싶은 엄마는 없을 것이다. 어떤 것에 심하게 강요 당하면 그것에 심한 거부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은 경험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세숟갈만 먹고 그만 먹겠다는 아이에게, 날이 갈수록 삐쩍 말라가는 아이에게 쿨하게 "그만 먹어도 돼!"라고 말할 수 있는 엄마가 어디 있을까? 나는 아이가 "그만 먹고 싶다"는 선언을 한 그 순간, 소아과 선생님의 권위를 빌려 이렇게 말한다. "그만 먹고 싶을 때 의사 선생님이 세 숟갈만 꾹 참고 먹으랬지?" 이것조차 안 통하면 나는 거의 아이에게 매달리는 최악의 엄마가 된다. "이거 한 숟갈만 먹으면 안될까? 이거 먹으면 엄마가 사탕 줄게"
자리에 앉아서 스스로 먹게 하라.
때가 되면 아이가 식탁에 앉아서 스스로 먹을 것을 입에 넣는 것은 장면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우리집 식탁에선 적어도 쉽게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일단 배고픔을 모르는 아이는 식탁에 자발적으로 앉지 않는다. 먹는 중에도 아이의 관심은 엄마의 시선을 피해 식탁밖 세상에 머물러있다. 게다가 쉴새 없이 일어서서 돌아다니기 일쑤다. 앉혀서 먹이고, 또 다시 앉혀서 먹이는 이 행위가 열 번 정도 반복되면 엄마는 결국에는 동영상을 켜게 된다. 스스로 먹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어찌됐든 입에 음식이라도 넣게 하자. 일단, 먹여야하지 않겠는가?
아이가 밥을 안 먹으면 군것질을 주지 말라.
밥 안먹는 아이와는 기싸움이 일상이다. 아침도 부족하게 먹었는데, 점심도 잘 안먹고, 배고픈지 군것질을 달라고 조른다면 기필코 이 싸움에서 지면 안된다. 근데 아이가 무슨 고집인지 저녁때까지 끼니를 제대로 안 먹는 사태가 벌어지면 어떤 부모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가 하루종일 제대로 먹은 게 없는 저녁쯤 되면 아이가 먹겠다는 군것질을 마구 주며 항복한다. '그래, 아이스크림엔 유지방, 마카롱엔 탄수화물이 있지' 하면서.
조미료 없는 건강한 음식을 먹여라.
이유식을 처음 시작했을 무렵엔 좀처럼 먹지 않자, 시어머니가 간장이나 소금을 좀 넣어보는 것이 어떠나고 하셨다. 나는 돌도 안 된 아이에게 양념을 줄 순 없어 아이들용으로 나온 조미료를 시중에서 구입했다. 맛을 내는 각종 야채들을 갈아서 만든 것이었는데, 그걸 넣으니 처음엔 양이 30퍼센트 정도나 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맛도 질렸는지 잘 먹질 않아 난 구기자로 낸 육수 혹은 바나나를 섞어서 이유식을 만들었다. 아이는 시도한 처음엔 잘 먹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가 일반 반찬을 먹을 정도로 성장했을 때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시중의 비비고 미역국을 사먹였는데, 조미료 맛인지 놀랄 정도로 잘 먹었다. 안그래도 좋아하는 메뉴인 미역국에 조미료까지 넣었으니 얼마나 맛있으랴? 그 이후에 식욕부진으로 약을 처방받기 위해 간 한의원에서 의사는 내게 대뜸 그랬다. "음식에 조미료도 좀 넣고 그러세요!" 난 이후에 조미료에 대한 거부감이 좀 약해졌다. 건강한 재료는 아니지만, 양이 늘고 음식에 대한 관심도가 약간이라도 증가하니 실보다 득이 많다고 여겼던 것이다.
먹기 싫은 음식도 한 번은 먹게 한다.
첫 아이가 5살이 되어 이사를 가고, 들어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가 음식을 혼자 못먹나요?" 아이는 익숙하진 않았지만 스스로 숟가락과 포크질을 못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면 환경이 익숙하지 않아서 일 것이다. 선생님은 가만히 앉아있는 아이에게 이것저것 시도했지만 아이는 시종일관 거부했다는 것. 선생님은 먹기 싫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조그맣게 잘라서 맛만 보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내게 그 작업이 꼭 필요하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나는 아이와 선생님과의 관계가 안 좋아질 것이 두려워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된다"고 했지만 선생님은 고집을 꺽지 않으셨다. 그 무렵 어린이집에서는 한참 김치 먹이기 도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이들 사이에선 김치를 잘 먹는 아이를 선망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반면 내 아이는 그 즈음 어린이집을 가기 싫다고 고집을 피우기 일쑤였다. 물어보면 "김치 먹기 싫어서"였다. 한 친구 엄마의 아이는 밤에 김치를 먹는 악몽까지 꾸며 운다고 했다. 이쯤되면 극도로 먹기 싫어하는 것을 한 번이라도 먹이는 것이 원칙인지에 대해선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