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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년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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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향지 Jan 06. 2023

최초의 기억들

응답하라 1980년대... 어떤 40대의 그때 그 시절

 그러니까 나의 최초의 기억은 아마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던 살 즈음이었던 것 같다. 자다가 깼는데, 뒤집기도 못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울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때. 아마 그때의 나는 '할머니는 시장에 무언가를 사러 가셨지만 곧 돌아오시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안심했던 것 같은데, 1살 즈음의 아이가 그런 생각을 하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기억이다. 또 자꾸만 부딪히고 넘어져서 하루도 편하게 지나치지 못한 시기가 지나 제법 중심을 잡고 잘 걸었던 시기엔 '이제 안 다쳐서 좋다'는 안도감 같은 것들이 기억난다.

그외에도 엄마로부터 전해 들은 그즈음에 관한 얘기로는 갓난아이가 엄마 젖을 먹다가 젖꼭지를 꽉 물고는 엄마가 찡그리는 표정을 살피더니 '씩' 웃더라는  것. 그러더니 엄마 표정을 몇 번 더 재미있는 듯 살피며 그 행위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말도 제대로 하기 이전의 기억은 그렇게 꿈인 듯 생시인 듯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누군가로부터 전해 듣거나 꿈을 꾸거나 해서 조합된 기억들의 조합의 비중이 가장 높은 시기인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진짜의 에피소드가 가짜의 에피소드보다 더 가짜 같고, 가짜의 에피소드가 진짜 같기도 한 시기.

  그다음 기억은 대여섯 살 무렵에 살던 동네에 관한 것이다. 우리 집은 좁은 골목 아래 잔디와 큰 개가 있는 저택(명패에는 한자로 김일중이라고 쓰여있었다. 내가 그 한자를 보고 나서 읽기까지는 몇 년이 걸렸고, 그 김일중 씨는 바쁜 분이라 얼굴을 잘 볼 수 없었다)의 지하있었다. 김일중 씨네 저택 뒤를 돌아가면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면 우측에는 아무런 타일도 붙여있지 않은 단층의 콘크리트 건물이, 좌측에는 수세식 화장실 두세 칸 정도가 있었다. 지하방을 들어가는 문을 열면 부엌과 단칸방 한 두 개가 붙어 있는 집들이 군도를 이루듯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일중씨네는 집세를 더 받기 위해 지하방 속에 작은 방들을 더 짓거나 콘크리트 건물을 확장하곤 했다. 나와 동생과 친구들은 채 마르지도 않은 콘크리트에 발자국을 남기거나, 건축자재들을 갖고 놀거나, 그 작은방의 창문을 들여다보다가 어른들에게 들켜 혼이나 곤 했다.


 부모가 일을 하느라 바빠서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혼자 노는 시간이 많은 동네의 아이들은 김일중 씨 대문 밖에 연결된 공터에 자주 모였다. 이름도 모르는 아이들은 모이면 이내 술래잡기를 하거나 숨바꼭질, 얼음땡 등의 놀이를 하면서 잘도 놀았다.(말뚝박기는 내 취향이 아니었는데, 시간이 지나 그 놀이가 동네에서 유행하면서부터 나는 그 공터에서 멀어졌던 것 같다.)  


 놀이를 끝내고 집으로 들어올 때 나는 반드시 김일중 씨네가  대문 앞에 감시견으로 둔 진돗개 두세 마리와 마주해야 했다. 그 개들은 사람의 키만큼(우리 지하방의 3분의 1 정도 크기) 되는 철창 속에 갇혀있었다.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었던 시절, 나는 대문 앞에서 주인이 개들에게 먹이를 주는 장면들을 구경하곤 했다. 주인이 남긴 다량의 음식들을 큰 개들은 게걸스럽게 잘도 먹었다. 난 개들이 식사를 끝낼 때까지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들이 내게 재미와 공포 중 어떤 것을 더 주었을지는 모르겠다. 덩치 큰 그것들이 짖는 소리는 얼마나 우렁차고 사나운지 고작 1미터가 조금 넘는 나는 대문 앞을 혼자 힘으로 지나갈 수 없었다. 누구라도 나보다 큰 어른들이 지나갈  그 옆에 붙어 재빨리 따라가곤 했는데, 어른들이 오가지 않는 한적한 낮 무렵이 제일 골치였다. 나는 한두 시간을 대문 앞에서 누군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릴 때도 있었다. 간혹 꿈에서도 나타났으려나? 상처라기보단 불편함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기억이 마냥 싫지는 않았다. 불편한 서사에서도 야릇한 즐거움은 있기 마련이다. 그 개들은 어느 날 내가 알 수 없는 이유들로 사라졌는데, 나는 편하게 대문을 드나들면서도 계속되는 궁금증에 시달렸다. 개의 행방에 관한 것.  개들의 행방에 대한 나의 궁금증의 근원은 아마도 아쉬움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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