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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향지 May 09. 2023

다시, 혼자

교실에 들어서니 아이들 몇몇이 모여서 수근대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나 때문은 아니겠지.'

나는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려 주변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전원이 켜지지도 않은 핸드폰에 이어폰을 꼽고 귀를 막았다.


그 때 옆 자리에서 웅성거리던 일행 중 한 명이 다가와서 물었다.

"나 어제 너네 아빠 때문에 학원 한 시간이나 늦었잖아. 야, 금같은 내 시간 어쩔거야?고등학생에게 1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지는 알아?"

나는 고개를 떨궜다.

"허, 너 내 말 무시하냐?"

나는 반응 없이 교실 뒤 사물함에서 1교시 수업 시간에 필요한 책을 꺼내러 갔다. 그러자 그 무리에서 또 다른 한 명이 다가와 말했다.

"야... 나 어제 깜짝 놀랐잖아. 이 동네에 그렇게 무식하신 분이 사신다니. 여기가 그래도 서울에서 제일 교양있는 동네인데... 어제 나 너무 창피하더라. 미꾸라지 한 마리가 동네 물을 흐린다니..."

나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교과서를 책상에 던지듯 내려치고 나서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쉬며 노려봤다.

하지만 별다른 소리를 내지르지는 못하고, 책상에 엎드려 소리없이 울기 시작했다. 상황은 1교시 수업을 하기 위해 선생님이 들어오자 종료되었고, 나는 차고 넘치는 울음을 억누르며 긴 수업시간을 보냈다.  


점심시간이 되자 선예가 침울해 있는  손을 잡아 끌고 교실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우리 오늘 급식실 가지 말자!"

"그럼 어디 있을까?"

"글쎄..."


나는 선예가 이제까지 이토록 친근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오전 수업시간 내내 점심시간이 시작되면 어디선가 지뢰가 터질 것 같다는 예감에 불안했는데, 선예가 그걸 막아준 것이다. 이토록 다정하게. 매번 선예에게 수동적이기만 하던 나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적극성을 내보였다.


"매점에서 먹을 것 좀 사갖고 동아리방 가는 건 어때?"

"거긴 좀 그래."

"왜? 오빠 때문이야?

"어. 불편해."

"나 너랑 이재 오빠의 관계를 모르겠어. 너 랑 사귀긴 한거야?"

"그럼, 내가 거짓말을 했겠어?

"근데 오빠는 그게 아니라는 것 같던데..."

"너 지금 날 의심해? 내 말을 못 믿는 거야?"

"의심하는 게 아니라..."

"하아... 난 네가 종종 친구인지 뭔지 모르겠어. 평소엔 나에게 관심도 없다가... 고작 나한테 관심있어서 한다는 질문이...날 평소에 대체 어떻게 생각해왔던 거야?"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관심이 있었다고? 넌 궁금해하지 않았어. 내가 늘 널 궁금해했지. 그래도 신뢰를 주는 친구라고, 날 믿어주는 친구라고 여겼는데... 내가 잘못 생각한 거 같다."

"알잖아. 나 원래 말 수 적은 거.."

"말수가 적어도 큰 일은 공유해야 하는 거 아니야?친구라면? 어제도 너에게 발생한 일을 난 전혀 몰랐어. 그래, 물론 네가 말할 의무는 없지."

나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난 이제 너도 이재 오빠도... 이런 일방적인 관계는 이젠 싫다. 나 갈게."


나는 선예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침을 먹지 않았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다.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하다가  나는 마치 오래된 본능처럼 동아리방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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