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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서 May 11. 2023

[외면일기] 2023. 05. 11



'위로'라는 단어가 너무 흔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되려 그 진정한 의미를 알기 어려워진 요즘이다. 따뜻한 말 한 마디? 함께 글썽이는 눈빛? 꾹꾹 눌러쓴 편지? 우리 모두의 인생을 대변해주는 듯한 드라마? 슬픔을 어루만지는 가사? 무엇이 위로일까.


위에 적은 모든 것들은 '위로'로 향하는 발신인들의 산물이다. 그러나 위로는, 받는 상대가 있어야 성립되는 무언가다. 편지와 비슷하다. 상대가 위안으로 받아들여야 내가 보낸 마음이 '위로'로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나의 진심이 어느 정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배려해야겠다는 생각 없이 건넨 츄잉검 하나로도 상대는 울컥 눈물을 터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위로'를 가장 잘 설명한 자료는, 사전도 아니고 문학책의 한 구절도 아니다. 아이슬란드 뮤지션 Sigur Rós의 Varúð다. 정확히 말하면, 그 곡의 뮤직비디오가 내겐 '위로'의 바이블이다.


영상은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눈보라가 치는 협곡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까마득하다. 그때 어두운 협곡 사이에서 한 사람의 실루엣이 보인다. 그의 존재와 함께 '빛'이 깜빡인다. 가슴 부근에서 피어오른 빛이다. 램프인가? 손전등인가? 알 수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의 맞은편에도 다른 한 사람이 나타났고, 그도 빛을 들어 보인다. 두 사람은 등대와 배처럼 빛으로 응답한다. 조심스러우면서도, 반가워하는 듯 보이면서도, 절실해 보인다. 점점 빛이 동시에 반짝이기 시작한다. 같이 뛰는 심장 같다.


머지 않아, 사람의 실루엣들이 늘어난다. 어둠 속에 숨어있던 사람들이 두 사람의 빛을 보고 하나 같이 일어서기 시작한다. 두 개의 빛에서 세 개, 다섯 개, 일곱 개, 열 개로 넘어간다. 협곡은 오징어잡이 배의 빛처럼 일렁이더니 거기서 끝을 내지 않는다. 빛이 번지듯 커다래지고 사람들 가슴팍을 벗어나 하늘을 향해 치솟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치 하늘로 쏘아올린 화살 같다. 허공 어딘가로 빛이 사라지자 어둠이 폭포처럼 들이치고, 우리는 비로소 눈보라가 여전히 심하게 인다는 것을 깨다든다. 한 명 한 명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협곡은 다시 고요한 그림자 속으로 몸을 감춘다.


나는 이 뮤직비디오가 '위로'를 둘러싼 다층적 장면들을 잘 짚어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살아남기 힘든 삭막한 협곡을 우리 삶의 고통스러운 지대라고 했을 때, 한 사람이 품고 있는 빛은 '고통 그 자체' 혹은 '고통에서 벗어나고픈 마지막 희망'일 수 있다. 보통은 그것을 꺼내 보이기 힘들다.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구구절절하고, 그것을 직접 겪어보지 않는 이상 타인의 감정은 실감하기 어렵기 때문에 누군가 이해해주리라는 기대도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용기 있는 한 사람이 과감하게 털어놓는다. 용기 있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포기했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 음성은 유일하고 선지자의 것처럼 숭고해서, 결국 타인에게 닿는다. 알아본 자들이 하나둘 모인다. 사실 나도, 저도 그래요, 그 맘 알아요, 많이 고통스러웠죠, 당신이 외롭지 않으면 좋겠어요 같은 마음에 불이 붙는다. 모두가 한 마음처럼.


그러나 결국 그 빛은 승화한다. 열기가 가라앉으면, 부둥켜안고 같이 울었던 품을 비집고 찬 바람이 들이치기 시작한다. 우리에서 다시 각자가 되는 시간이다. 삶의 고통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눈보라는 멈추지 않는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듯 우리는 각자로 돌아가 자기 자신에게 할당된 유일한 어둠을 거울처럼 마주한다.


결말이 허망해서 '이게 무슨 위로야?' 싶을 수도 있지만, 나는 위로가 이보다 더 나아갈 수 있는 지점은 없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삶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니까. 우리의 몸은 따로고, 우린 유일한 몸뚱이가 되어 추위도 알아서 감내해야 한다. 그러나 이전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것은 분명히 있다. 어딘가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나를 보고 외면하지 않았던 사람들, 나와 함께 자신을 드러낸 자들, 그 표정을 기억할 수 있다.


어둠 속에서 나는 혼자이되, 혼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빛의 잔상, 나를 둘러싼 눈빛들의 잔상이 생생하게 기억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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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면일기는 각자의 정신 상태를 나타내는 내면의 일기가 아니라 사람, 동물, 사물 같은 외적인 세계로 눈 돌린 일기입니다.

✅️ 밑미 리추얼 [하루 한 쪽 외면일기 쓰기] 신청은 밑미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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