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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욱 Sep 16. 2024

활어회

참사의 후일담(스마트소설)

  그는 횟집 주방에서 칼과 숫돌을 꺼낸다. 그와 그녀는 서로에게 칼이었고 숫돌이었다. 칼을 들어 날을 살펴보고 손가락으로 칼날을 쓸어내린다. 칼과 도마를 닦은 다음 가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바람에 생선 썩는 냄새가 실려 온다. 제때 치우지 않은 쓰레기 썩는 냄새도 난다. 예전에 이곳은 현란한 간판 조명과 흥겨운 음악이 흘렀다. 멀리 빨간 등대가 보이고 방파제가 길게 이어져 있다. 방파제 양옆에는 테트라포드가 넝쿨처럼 달라붙어 있다. 바람이 점점 거세진다. 테트라포드 사이에 끼어 있던 스티로폼 상자가 부서지고 조각들이 파도를 탄다. 

  수족관의 크기는 성인 남자가 겨우 누울 수 있을 정도다. 그는 손으로 수족관의 물을 휘휘 저어 거품을 밀어낸다. 거품을 걷어내자, 상처투성인 활어 한 마리가 보인다. 그녀가 좋아했던 활어의 눈부시던 비늘은 시커멓게 변해 고생대의 납작한 화석 덩어리 같다. 그는 뜰채로 바닥에 배를 깔고 꼼짝하지 않는 활어를 끌어 올린다. 꼬리지느러미가 발버둥 친다. 물이 뿌옇게 일어난다. 뜰채로 밑바닥에 달라붙어 죽은 척하고 있던 활어를 건져 올려 양동이에 담는다. 활어는 입을 뻐금거리며 살려고 몸부림치지만, 양동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선실에 물이 차오르는 순간 살려고 몸부림쳤을 그녀를 생각하며 활어를 바라본다. 그와 그녀는 구명조끼를 입히고 탈출 신호를 기다렸다. 선실 문으로 물이 들이닥쳤을 때 그녀의 손을 놓쳤다. 그녀는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을 믿었고 그는 믿지 않았다. 배가 완전히 기울었을 때 혼자 수면을 향해 올라간 것은 본능이었다. 지금도 혼자 살자고 발버둥 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가 양동이를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끈적끈적한 수분으로 출렁이던 대기가 가라앉는다. 세상이 고요해진다. 모든 것이 서서히 정지하는 듯하다. 양동이를 주방에 내려놓고 표백해서 말린 하얀 면장갑을 낀다. 면장갑을 껴야 활어의 몸부림을 제압하기 쉽고, 살과 껍질을 분리하기 쉽다. 양동이에서 활어를 꺼내 칼등으로 활어의 머리를 순간적으로 때린다. 그다음 활어를 도마에 올려놓고 칼로 꼬리에 칼집을 낸다. 이제부터는 칼과 손이 하나가 되어 칼이 벼와 가시를 건드리지 않게 해야 한다. 칼이 활어의 등을 따라내러 오다 살을 파고들어 간다. 살점이 드러날수록 도마에 붉은 피가 번진다. 칼을 살과 가시 사이로 밀어 넣으면서 가시에 살짝 살을 남겨 놓는다. 그녀는 활어 매운탕을 좋아했다. 국물 속에서 건져 올린 생선 뼈를 잡고 가시에 붙은 살을 발라 먹었다. 회를 뜰 때 뼈에 남은 얇은 살점이 별미라고 했다. 

  그녀 생각에 칼이 미끄러진다. 칼날이 활어의 뼈를 건드린 느낌이 둔탁하게 전해진다. 계속 칼을 밀면서 살을 떠낸다. 떠낸 살을 뒤집어 도마에 놓는다. 이번에는 껍질을 벗긴다. 껍질을 벗기는 동안 파리가 계속 활어에 달라붙는다. 고개를 흔들며 입김으로 파리를 쫓는다. 꼬리 쪽 살에 칼집을 내고 칼을 비스듬히 뉘어서 밀어 넣은 다음 살점을 잡고 당긴다. 칼이 살과 껍질을 갈라놓을 때 칼날의 예리함을 느낀다. 힘 조절을 잘해야 한다. 칼이 껍질에 살짝 살이 붙어 있게 지나가야 누런 속껍질이 살점에 남지 않는다.

  그는 다시 칼을 잡는다. 남은 가시에는 살점이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다. 잘못하여 칼날이 뼈나 가시를 파고들었다면 활어는 깨어나 몸부림쳤을 것이다. 머리와 꼬리만 남은 활어를 접시에 담고 뼈와 가시 위에 무채를 얹는다. 도마에 앉은 파리가 살점으로 다가온다. 칼을 휘둘러 파리를 쫓는다. 칼을 닦은 다음 살점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활어의 머리와 꼬리를 연결하듯이 무채 위에 가지런히 놓는다. 접시 위에 오른 활어는 어느 틈엔가 깨어 입을 뻐끔거리며 이빨을 드러낸다. 

  그는 행주로 상을 닦고 냉장고에서 생일 케이크와 소주를 꺼내오다 거울을 본다. 이곳에서 회를 뜨는 동안 눈이 한쪽으로 몰려 퀭해지고 코는 빨개졌다. 양 뺨은 터진 실핏줄들이 얼기설기하다. 주방에서 창밖을 바라보느라 목도 약간 길어진 듯하다. 상을 차리고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붙인다. 잔에 소주를 따르고 눈을 감고 그녀를 기다린다. 초가 다 타들어 가서 불이 꺼진다. 그는 활어회를 바라보며 계속 술을 마신다. 무채가 피로 물들어 핑크빛이 돈다. 파리가 날아와 활어회에 앉는다. 손을 휘휘 저으면서 일어난다. 비틀거리면서 주방으로 간다. 먹구름을 도려낼 듯 날카로운 칼을 바라본다. 칼을 들어 칼끝을 왼쪽 손목에 대고 힘을 준다. 입을 악다문다. 살이 맥을 잃으면서 살짝 벌어진다. 피가 도마에 떨어진다. 온몸에 힘이 빠진다. 칼을 개수대에 떨어뜨린다. 칼이 떨어진 수조에 붉은 피가 번진다. 행주로 손목을 감싼다. 얼굴에서 피가 빠져나간 듯 창백하다. 이제는 그녀를 잃은 슬픔보다 온몸에 퍼지는 통증이 더 크게 느껴진다. 

  파리가 활어회에 앉아 있다. 그는 주방에서 뛰어나와 활어회에 앉은 파리를 날려 보내려다 상을 뒤엎고 만다. 바닥에 떨어진 활어는 아직도 입을 끔뻑거린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활어회를 접시에 주워 담으려다 말고 남은 소주를 병째 비우고 가게 밖으로 뛰쳐나간다. 비는 쏟아지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빗물이 손목으로 흐르는데도 상처는 말라붙는다. 그는 머리를 흔들어 빗물을 털어낸다. 

  쏟아지는 비는 무언가를 말해주려는 듯하다. 물줄기를 빨아들이던 하수구는 이제 배가 부른지 빗물을 거꾸로 뿜어낸다. 비를 안은 거센 바람이 어느 빈집의 잠기지 않은 문을 두드려 댄다. 비틀거리다가 수족관 옆에 쪼그리고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해가 지자, 온기는 사라지고 목덜미부터 시작한 오한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어둠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덮는다. 그는 일어나 빨간 등대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걷는다. 어둠 속에서도 높은 파도가 넘실거리는 것이 보인다. 방파제에 넝쿨처럼 달라붙어 있는 테트라포드 사이로 거품이 일어난다. 거품 사이에는 거센 파도에 밀려온 쓰레기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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