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주욱 Sep 16. 2024

공존의 지대

부부의 고유영역(스마트소설)

  애인과는 침대를 같이 써도 남편과는 침대를 같이 쓰기 싫어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남편의 목을 조를까, 아니면 베개로 얼굴을 누를지 망설이다 그냥 일어나죠. 예전에 일찍 결혼한 친구가 충고하길 사랑을 유지하려면 침대를 따로 써야 한다. 같이 자는 한 침대는 사랑을 죽인다고 했는데 그땐 이해할 수 없었죠. 남편은 요즘 다리에 베개를 끼고 자는 습관이 생겼어요. 그것도 꼴 보기 싫은데 더구나 오늘 새벽에는 남편이 내 배에다 다리를 올리고 자는 바람에 악몽에 시달렸어요. 

  결혼 전에 가장 두려웠던 것은 집안에 내 영역이 사라진다는 걱정이었어요. 누구든지 나만의 영역에서 편안한 시간을 즐길 필요가 있잖아요. 나는 궁리 끝에 각자의 절대 영역을 제안했어요. 남편은 처음에 반대했지만, 나에게 설득당했죠. 절대 영역의 표시는 사람이 깔고 누울 수 있는 러그로 정했어요. 그는 동그란 러그, 나는 사각 러그죠. 러그를 깔아 놓은 곳은 자신의 절대 영역이고 그곳에 들어가 있으면 나올 때까지 건들지 않기로 했어요. 만일 실수라도 상대의 절대 영역을 침범한다면 백만 원의 벌금을 내기로 했죠. 

  방해받고 싶지 않은 휴일이었어요. 점심을 먹고 나서 거실에 있는 사각 러그에 앉아 멍때리고 있었죠. 안방에 있던 남편이 동그란 러그와 보디로션을 들고 거실에 나왔어요. 동그란 러그를 소파 앞에 깔더니 옷을 전부 벗어 던지고 스트레칭을 시작했어요. 동그란 러그에 떨어진 햇살이 기울어진 사각형을 그렸어요. 스트레칭을 끝낸 그는 나를 바라보며 아주 요염한 자세를 잡았어요. 다리를 벌리고 누운 포즈는 그의 하드 디스크에 감춰진 포르노배우의 자세와 똑같았죠. 마룻바닥에 그려진 그의 그림자는 열대우림의 나뭇가지에 달린 열매를 연상시켰어요. 차츰 진지한 그의 모습이 신기해졌어요. 나는 그가 보이지 않는 듯 그를 멍하게 바라봤어요. 그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더니 자기 성기를 손으로 주물럭거리기 시작했어요. 그가 항상 자랑스러워하던 그것이 고개를 쳐들고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어요. 그는 성기를 주물럭거리다 말고 로션을 바른 다음 손을 빠르게 움직였어요. 나는 눈을 감았어요. 눈을 감으니 주물럭거리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 눈을 떴어요. 로션에 범벅된 그것이 햇빛에 빛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어요. 그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면서 동그란 러그 앞으로 다가갔어요. 그는 나를 신경 쓰지 않고 그것을 계속 주물럭거렸어요. 그의 동그란 절대 영역을 침범하려는 순간 벌금 백만 원이 떠올랐어요. 내 가슴을 쓸어내리다 말고 단단해진 젖꼭지를 꼬집을 뿐 어떻게 할 수 없었어요. 그의 손동작에 힘이 빠지고 커튼이 서서히 닫히듯 바닥에 떨어진 햇살이 희미해질 때 좋은 생각이 났어요. 바로 행동에 옮겼죠. 내 사각 러그를 끌고 와 그의 동그란 러그 위에 겹쳐놓았어요.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절대 영역의 침범 여부가 달라지는 상황을 연출한 거죠, 그는 손동작을 멈추더니 나를 보고 웃었어요. 나는 옷을 하나씩 벗어던지고 그에게 올라탔어요. 그는 누워서 천장을 향해 다리를 뻗은 채 나를 받아들였어요. 그의 짧은 넓적다리를 스프링처럼 이용했어요. 마치 커다란 공에 앉아 엉덩방아를 찧듯이 몸부림칠 때 깨달았어요, 상대를 잘 받쳐주지 않으면 힘든 노동이 될 수도 있겠구나. 그의 그것이 점점 팽창할수록 나의 상체가 앞으로 기울여졌어요. 허리가 움직이는 각도도 달라졌죠.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색다른 감정이 피어올랐어요. 그의 뜨거운 것이 내 안에서 터지는 순간 그가 나에게 올라탔을 때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었어요. 새롭게 발견한 공존의 지대에서 느낀 게 많아요. 각자의 절대 영역이 존중받고 지켜지는 상황에서 생성된 공존의 지대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했죠. 나는 후희를 생략하고 그에게서 얼른 빠져나와 사각 러그를 끌고 도망치듯 장식장 앞으로 가서 뻗었어요. 내 안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려 사각 러그에 스며들고 있었지만, 꼼짝할 수 없었죠. 그는 옷을 주섬주섬 챙겨 화장실에 들어갔어요. 그가 없는 동그란 러그를 바라보는데 걱정이 밀려왔어요.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가 동그란 러그를 끌고 와 사각 러그를 올라탄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내키지 않을 때 공존의 지대를 거부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어요. 일단 더블베드를 트윈베드로 바꿔야겠어요. 그다음 오늘을 교훈 삼아 각자의 절대 영역에 관한 개념을 확실하게 정립해야겠죠.     

작가의 이전글 활어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