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돌아온 작문
1학기만 하더라도 학급일지 쓰기에 진심으로 매진을 했는데 어느 순간 글쓰기에 대한 욕구가 떨어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게 정확히 어떤 순간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글감이 쉽사리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솔직히 학급의 일들을 글로 적어보려고 노력했는데 우리 반 아이들이 내 맘처럼 따라와 주지 못한다고 생각되면 서운함이 쌓여 분노로 바뀌고 그 분노는 동력을 잃게 한다.
1학기부터 나름 야심 차게 1년을 지내보고자 많은 노력들을 했다. 나 나름대로는 아이들과 래포가 형성되었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아이들과 부딪히는 지점이 많아지고 부딪힘의 강도가 달라질 때마다 힘에 부치는 것을 느끼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뭘 하고 있지 하는 원론적인 물음으로 다시 돌아가곤 한다. 그렇게 지내는 와중에 우리 교실에 상담시간이 돌아왔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사업 중에 상담지원 사업이 있다. 집단상담이라는 것을 진행하고 담임과 함께 면담을 통해서 학급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1:1 상담은 많이 접해봤지만 집단상담이란 것은 처음 접해보는 성질의 활동이라서 처음에는 무엇을 하는 건지 잘 알 수 없었다. 2시간 동안의 집단 상담이 끝나고 모든 수업이 끝난 오후 시간에 상담 선생님과 1대 1로 면담을 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나의 치부와 같이 느껴지는 우리 반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터놓고 얘기하기에는 상담 선생님과 나의 심리적 거리는 매우 멀었다. 그러나 면담이 시작되고 아이들의 활동 결과물을 바탕으로 한 선생님의 추리와 대화의 포인트에 금세 나는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의 교우관계와 자신에 대한 표현력, 그리고 자아존중감에 대한 분석 결과를 듣고 나니 왠지 모르게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따스한 손길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선생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 맞아요. 그 부분이 참 어려웠어요." " 우리 반 아이들에게 제가 바라는 부분이 그런 부분인데 참 어렵네요."등등 나도 모르게 리액션 좋은 동네 아줌마처럼 맞아 맞아를 외치며 동조하고 있었다. 30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상담 시간은 퇴근시간까지 이어졌고 그 시간은 내 마음에 연고를 바르는 시간이 되었다.
오늘이었다. 그 상담 시간이 다시 돌아왔다. 선생님께 교실을 양보해드리고 잠시 업무를 하면서 학교를 배회하고 있는데 2시간의 상담시간이 정말 짧게 느껴졌다. 오늘은 우리 반만 상담을 하고 오전에 일정이 끝나는 날이라 상담 후 바로 면담에 들어갔다.
상담 선생님의 첫 말씀에 내 마음은 사르르 녹아들어 갔다.
" 선생님.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아이들이 1학기의 그 아이들이 아니네요."
친구들의 눈치만 보고 자신의 생각을 꽁꽁 숨겨놓던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려 하고 주의 집중도 잘하고 1학기의 그 아이들이 맞나 싶다는 선생님의 말에 그만 눈가가 촉촉해질 뻔했다. 어디 가서 잘 울지 않는 사람인데 이런 것에는 왜 이리 약한지 그 말에 신나서 그동안 아이들 지도하면서 노력했던 내용과 아이들이 좀 더 커서 그런 면도 있는 것 같다는 소심한 겸손을 떨고 나니 면담시간이 금방 끝나고 말았다.
초등학교 교사라는 직업을 이어가면서 가장 큰 동력은 바로 이런 순간이 아닌가 싶다. 내가 생각하는 교육관에 맞게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때 느껴지는 희열이 있다. 거기에 화룡점정은 아이들의 수줍은 감사 편지 하나 더 얹어주면 완성이 되곤 한다. 2학기 들어 아이들의 수업태도 및 활동 태도들이 좋아졌다는 소문을 교담 선생님으로부터 듣곤 한다. 1학기에 비해 너무 좋아졌다는 이야기에 괜스레 뭐 그 정도 가지고라는 얼굴 표정과 눈짓으로 담담히 넘어가곤 하지만 그 덕에 컴퓨터 앞에 앉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오랜만에 신이 나서 쓰는 글이라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고 있다. 오늘따라 글이 참 잘 내려간다. 내 마음속 해묵은 체증이 한방에 내려가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