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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교실네트워크 Sep 11. 2019

처음엔 '이 학교 언제 망하나' 싶었죠

2년 반, 10 모듈. 거꾸로캠퍼스와 함께 컸고, 사과는 이제 하산합니다


지난 인터뷰에서 화니쌤이 사과를 지목하면서,

"사과는 한번쯤 인터뷰 할만 하죠. 많이 변했고."

알쏭달쏭한 말을 남겼는데요,

2017년 3월 거꾸로캠퍼스의 개교부터 지금까지,

2년 반 동안 10모듈을 보내고 학교를 떠나는

사과(김은석, 18)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사과, 거꾸로캠퍼스의 사고뭉치(?)


"처음 5~6모듈까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거꾸로캠퍼스가 좋은 건지, 아니면

그냥 집을 떠나 있어서 좋은 건지 말이에요."


사실 사과의 거꾸로캠퍼스 생활은

그다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수업은 때로 흥미롭기도 했지만,

사과는 학교의 질서를 잘 지키는 편은 아니었죠.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선생님들의 속도

많이 썩였습니다. 자신의 학습 결과를 발표하는

배움장터를 준비할 때가 임박해서야,

겨우겨우 구색만 갖춘 결과물을 내놓곤 했습니다.


"사실 놀기 좋은 환경이잖아요.

친구들이 놀러 가자고 하면,

밖에 나가 놀고 싶고, 예전이랑 똑같이

학교 공부를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잡아주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그냥

자유롭게 잘 지냈던 것 같아요."


자유로운 학교를 찾아 떠나온 아이


거꾸로캠퍼스 학생들의 언어로 말하자면,

사과는 학생들 중 가장 '화석'입니다.

지금은 60명이 넘는 학생들, 3개가 넘는 랩을 가진

거꾸로캠퍼스이지만, 처음에는 12명의 학생들이

경기도 양평에 모여 있던 작은 학교였습니다.


"솔직히 학교를 처음부터 좋아했던 건 아니에요.

그냥 저는 제가 살던 곳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자유로운 학교다, 하는 말을 듣고 왔어요.

근데 제가 생각했던 그 자유로움이랑은 좀 달랐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을 빡세게 다녔어요.

 중학생 땐 학원에서 고등학교 진도를 나갔어요.

방과후에도 6시간 넘게 학원에 있었어요.

12시까지 학생들이 공부를 할 수 있게

가정집 같은 곳에서 운영하는 학원에서

막 맞아가며 공부했었어요. 불법이었을 거예요.

저는 그런 게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학교에서 잤죠. 힘들수록

학교에서는 더 편안히 보내고 싶었어요."


중학교에 다니던 사과의 학교생활은 단조로웠습니다.

주로 자고, 성적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해요.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학교와 학원생활을 던 사과에게

거꾸로캠퍼스가 생긴다는 소식은 이런 희망이었습니다.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학교'


"처음엔 이 학교 언제 망하나 싶었어요."


자유로운 학교라는 말을 듣고 왔지만,

사과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거꾸로캠퍼스의 수업 진행 방식은 사과에겐

그야말로'충격'이었다고 말했는데요,

"당황했어요. 4시간 동안 국어를 어떻게 배울까,

영어를 어떻게 배울까, 이런 얘기만 계속했어요.

다들 공부만 하는 것 같은 거예요!

저는 진짜 이 학교에 안 맞는 것 같았어요.

거꾸로캠퍼스가 양평에서 서울로 갈 때만 해도,

저는 이런 생각했어요.

이 학교 언제 망하나, 빨리 망했으면 좋겠다."





"그냥 다 안 맞는 것 같았어요.

학교도, 처음 만난 친구들도요.

여기에 온 걸 후회도 많이 했었어요."





마디마디 뼈아팠던 그날, 생각을 시작했어요


사과의 변화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배움장터를

준비하느라 바쁜 날 시작되었습니다.

모듈 내내 놀다 하루 이틀 바짝 밤을 샌 결과물을

선생님들 앞에서 발표했을 때였죠.


"얘는 대체 뭘 한 거지 그동안?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전 할말 없어요"

"현실을 직시했으면 좋겠어요"


그날의 피드백은 사과에게 유독 크게 다가왔다고 합니다.

"멘트가 셌어요. 다 아팠어요.(웃음)

한 분 한 분 다 아픈 말을 했었어요.

수선이 이거 하는데 몇 시간 걸렸냐고 해서,

저 그냥 '두 시간 걸렸다'고 했어요 창피해서.

원래는 그게 밤을 새운 결과물이었거든요.

그때 조금 생각했던 것 같아요.

거꾸로캠퍼스를 나가면, 난 뭘 할 수 있을까.

그때가 이미 6모듈, 그러니까 1년 반 정도를

보내고 나서에요. 그리고 7모듈을 시작할 때,

'한 번은 해볼까?', '한 번만 해보자'

이렇게 생각했었죠."



브이랩의 사과, 영화를 만드는 김은석


"딱 한 모듈만 열심히 하고 나가보자,

이런 생각을 고 혜화에서 열심히 했거든요.

정말 절정이었어요. 배움장터 때 사람들 앞에서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도 이야기하고, 기분도 좋았죠.

그렇게 깔끔하게 끝내고 딱 졸업하려고 했는데,

브이랩이 생긴다는 거예요. 제 적성인데요."


브이랩(V-Lab)은 거꾸로캠퍼스가

파주 타이포그라피학교(파티)와 함께

학생들이 시각화 스킬을 키울 수 있도록 만든

교육과정입니다.


사과는 어려서부터 예술에 재능을 보였습니다.

거꾸로캠퍼스에 온 이유 중 하나를,

"학교 수업 대신 마음껏 그림 그리려고"라고도

꼽았을 정도니까요. 그런 사과에게, 브이랩은

새로운 도전이었죠.


브이랩에서의 마지막 모듈을 보내며,

사과는 너드(정유나)와 함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사회의 소수자들을 배려하는 것, 그리고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상할 것이 없는 것,

이런 메시지를 두드려 담아 만든 작품이었죠.

이 두 명이 만든 영화는 배움장터를 방문한 사람들에게

꽤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제가 만든 콘텐츠는 편안했으면 좋겠어요.

영화가 그냥 흘러가면 재미없잖아요.

닿을 수 있는 메시지를 가진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어떤 메시지를 담느냐는 늘 다르겠지만요"


놀랄만큼 쑥쑥 자라 거꾸로캠퍼스에서 엑시트(졸업)한

사과, 앞으로의 도전을 함께 응원합니다.


"처음엔 거꾸로캠퍼스에 온걸 후회했어요.

그런데 이제 후회하지 않아요.

오히려 의미없게 보낸 시간들이 아깝기도 해요.

딱 1년만 돌아갈 수 있다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글. 정유미 (사)미래교실네트워크 콘텐츠매니저

사진. 박종서(링컨) 김해린(메롱)


* [거꾸로캠퍼스 사람들]은 인터뷰 대상자가 다음 인터뷰이를 지목하는 '릴레이 인터뷰'입니다. 사과는 고심 끝에, 혜화 거꾸로캠퍼스 옥상에 배추를 심었던 '배추 아빠'  이상수(콜라) 지목했어요! 거꾸로캠퍼스에서 신나게 크고 있는 콜라의 진짜 성장과 배움 이야기, 다음 편에 대문짝만 하게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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