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부르크행 기차에서 만난 사람들
13시간이라는 긴 시간 끝에 오후 6시 쯤에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나는 숙소로 향했다. 어짜피 하룻밤 자고 내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로 이동할 예정이라 도착 당일은 푹 쉬자고 생각했다. 사실 프랑크푸르트는 이번 여행의 메인 도시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 인생 처음으로 유럽이라는 대륙에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내심 기대하면서 숙소로 가는 길에 여기 저기 둘러보았는데, 예상과는 달리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다. 마치 이전에 와본적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30일 동안의 긴 여행인데 처음부터 아무 감흥이 없는건 엄청난 위기 아닌가! 내가 왜 이곳이 익숙한지 생각해보았는데 아마 전에 살던 미국과 비슷한 풍경이라고 느꼈기 때문일까. 그러면서 독일에 살던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주해 생활하면서 유럽의 여러가지 문화가 미국으로 건너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잘츠부르크로 이동하기 위해 나는 일찍 일어나 숙소를 나섰다. 이른 아침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am main) 역에는 출근하는 사람, 여행하는 사람, 출장가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여행가는 사람들 가방을 구경는데, 한국에서는 등산가방이라고하면 대부분 그레고리 아니면 오스프리를 많이 사용한다. 반면 독일에서는 자국 브랜드인 도히터 배낭을 많이 매더라. 기차역 이름이 어떻게 DB(데이터베이스)?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기서 말하는 DB는 도히치 반의 줄임말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잘츠부르크로 가는 직행 열차는 없고 중간에 뮌헨을 한번 거쳐야한다. 뮌헨행 기차를 기다리며 전광판을 보던 나는 열차가 30분이나 지연되는 것을 보았다. 과연, 유럽은 열차가 밥먹듯 딜레이 된다고 들었는데 그 말이 사실이구나. 심지어 열차가 지연되면서 도착하는 플랫폼 번호까지도 변경되었다. 즉, 내가 가진 표와 플랫폼 번호가 달라진 것이다. 이럴수가 있나 싶어, 내 눈을 의심하는데 옆에 있던 친절한 아주머니께서 플랫폼 번호가 바뀔수있다며 설명해주셨다. 유럽 사람들은 인종차별이 심하다고 들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했다.
뮌헨으로 가는 약 4시간 기차 여행 동안, 나는 옆 자리의 은행원 독일 아저씨랑 이야기를 하면서 갔다. 그 분 나이는 40대 정도로 보였고 하이킹을 가는 중이라고 했다. 축구이야기도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기차 연착이 왜 발생하는지 물어보았다. 사실 한국에서는 기차 연착이라는게 보기 힘들다. 물론 가끔 발생하긴하지만 오늘처럼 무려 30분씩 연착하는 경우는 드무니까. 아저씨가 말하길 철도가 오래되서 그런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철도가 오래되면 수리 시간이 오래걸리니까 말이다.
나는 유럽에 살면 유럽 나라들이 서로 가까우니까 여행다니기 너무 좋을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막상 유럽 여행은 잘 안다닌다고 했다. 왜냐면 유럽 국가들은 서로 비슷해서 별로 가고 싶지 않다며...들어보니 맞는 말인 것 같다. 나야 유럽에 살지 않으니까 이런 것들이 신기한데, 유럽 사는 사람들은 지겨울 것 같다. 그는 아시아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캄보디아, 태국, 필리핀, 베트남, 일본 등을 다녔는데 한국은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을 듣고 한국이 여행지로서 외국인들에게 매력적인 나라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역사 이야기도 했는데, 나는 일본 이야기를 하면서 일본과 우리는 역사적인 문제 때문에 많이 싸워서 갈등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독일도 옆나라 프랑스와 사이가 안좋냐고 물어보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모두와 싸웠어
ㅋㅋㅋㅋ...현웃이 터져버렸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여행을 하는데 역 하나를 지날때마다 연착이 점점 심해졌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출발한 기차는 뮌헨에 도착해서 잘츠부르크 행 열차로 갈아타야하는데 나는 기존에 50분의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기차가 연착되는 바람에 이제는 20분밖에 여유가 없어진 것이다. 초조해진 나는 기차 앱을 계속 확인했고, 그 모습을 본 아저씨는 나에게 물었다.
Do you worry about connection?
환승 못할까봐 걱정하고 있니?
나는 그렇다고 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웃으며 기차 놓치면 다음 기차 타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이미 틀렸다면서 본인은 다음 기차 타면 된다고 웃으면서 말하는데 그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나였으면 기차 놓쳐서 기분 상했을 것 같은데, 아저씨는 본인 기차 놓쳤는데도 여유가 넘쳤다. 나도 그런 여유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면서 그는 나에게 뮌헨 구경해본적 있냐고 물었는데, 나는 가고 싶은데 이번 여행 스케줄상 시간이 안되서 못간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말했다.
너가 만약 기차를 놓친다면 넌 뮌헨을 구경할 수 있어 :)
그는 여전히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웃으면서 말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 멋졌다. 사실 그렇다. 내가 지금 잘츠부르크에 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차 놓치면 다음 기차 타면 된다. 충분히 여유있게 여행을 즐길수도 있는데 1분 1초가 아까워서 기차앱만 보느라 현재를 즐기지 못한 내 자신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저씨 말처럼 내가 만약 기차를 놓치게 된다면 난 뮌헨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인생은 여행과 같다. 어떻게 항상 계획대로 되겠는가.
인생은 대응이다.
뮌헨에서 내리자마자 부리나케 12번 플랫폼으로가서 잘츠부르크로 가는 기차를 탔다. 이전 기차는 ICE였는데 ICE 같이 멀리 가는 기차는 지정석인데, 뮌헨에서 잘츠부르크 가는 기차는 자율석이었다. 나는 어떤 할머니 옆에 앉았다. 잘츠부르크로 가는 동안 할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인터넷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기차에 있는 와이파이가 너무 느렸는데, 거의 웹서핑이 안되는 정도였다. 내가 인터넷 속도 왜이렇게 느리냐고 물어보니까 할머니는 이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고 하셨다. 독일의 대도시가 아닌 이상 시골에서는 인터넷이 느리며 심지어 안되는 곳도 있다고 하셨다. 소프트웨어 개발일을 하는 나로써는 이런 환경에서 개발자가 나올수는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실상 아직도 이렇게 인터넷 조차 안되는 곳이 있는데 웹은 점점 무거워지고 있는게 현실이다.
할머니는 70세는 족히 넘어 보이셨는데도 걷기, 자전거, 보트타기, 하이킹 등을 즐기신단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나이 이야기를 하면서 나이드니 어디가 아프다 혹은 젊었을때는 가능했었는데 나이먹으니 안된다와 같은 이야기를 많이하는데 이 할머니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평소 나이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의 가능성에 한계를 긋는 행위를 좋아하지 않는데, 그런면에서 할머니와 말이 잘 통했다. 할머니는 대화 내내 나이에 관한 이야기를 단 한번도 한적이 없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모차르트의 도시 잘츠부르크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