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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향문 Jul 09. 2024

원래 좋은 일은 아무데나 다 있어


코로나가 끝난 뒤, 나는 아이와 부지런히 여행을 다녔다.

그간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여행하지 못한 회포를 푸는 것도 있지만, 평소에 아이에게 살갑게 굴지 못한 것을 몰아서 풀겠다는 놀부 심보가 컸다.


많은 여행지 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많이 간 곳은 필리핀 세부.

작년 4월부터 올해까지 총 5번이나 드나들었으니 못해도 분기에 한번은 세부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격이다.


갈 때마다 여행의 테마는 매번 달랐다.

처음엔 단순히 리조트를 즐기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면, 그 다음부터는 로컬 위주로 즐겨보기, 현지인과 가능한 많이 소통하기, 한인들이 가지 않는 숨은 명소 찾아보기 등등 갈 때마다 새로운 컨셉이 생겨났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물놀이였다.

4박6일의 짧은 일정. 우리는 첫날부터 여행의 마지막 날까지 모든 일정에 물놀이를 넣었다.

두 번의 호핑투어와 로컬 비치에서의 해수욕, 그리고 오가는 여정만 왕복 8시간에 달하는 고래상어 투어.

그 바람에 호텔에 있는 수영장은 구경도 못 해봤지만, 아쉽지 않았다.


간혹, 어린 아들과 둘만 여행하면 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받는다.


하지만 오히려 여행하는 동안 투정을 부리는 건 내 쪽이다.

아이와 단둘이 여행하는 만큼 치안에도 각별히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고, 계획한 일정이 틀어져 붕 뜨는 일이 없도록 수시로 일정을 체크해야 하며 무엇보다 두 사람의 체력과 건강을 적절히 안배해야 하니 말이다.


이번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신이 나서 연신 재잘거리는 아이와 달리 내 머릿속은 온통 이 여행을 무사히 마쳐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러니 아이의 말이 귀에 들릴 리가 있나. 아이가 무언가를 이야기하면 나는 그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기 바빴다. 그런데도 아이는 짜증은 커녕 인상 한 번 구기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 덕분에 이런 것도 해보고 너무 좋다고, 엄마가 최고라며 나를 달래고 추켜세웠다. 대체 누가 아이이고 누가 어른인지 모를 일이다.


첫날 저녁, 막 호핑투어를 마치고 마트에서 간단한 저녁거리를 사오던 길이었다. 막탄 뉴타운 거리를 걸으며 아이에게 물었다. 


"여행 오니까 좋아?"


아이는 질문하기가 무섭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너무 좋아. 이렇게 걷는 것도 참 좋다, 그치?"


사실, 그날의 호핑투어는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않았다. 날씨는 줄곧 흐렸고, 스노쿨링 도중에는 비가 왔으며 날씨를 종잡을 수 없는 탓에 이후의 일정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모처럼 들른 마트에는 바퀴벌레가 우글거렸고, 호텔까지 돌아오는 길도 생각보다 멀었다. 

하지만 아이는 그런 상황에서도 좋은 점을 발견해냈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는 네가 그런 좋은 기분을 오래 기억했으면 좋겠어. 살다보면 안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럴 때 좋았던 기억을 하나씩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지거든. 엄마는 네가 어른이 될 때까지 그런 좋은 기억들을 많이 저금해주고 싶어."


그러자 아이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안 좋은 일이 있어도 거기서 좋은 일을 또 찾으면 되지! 원래 좋은 일은 아무데나 다 있어."


아이의 말을 듣자 그간 조바심냈던 것이 불현듯 부끄러워졌다.

그래, 계획이 좀 틀어지면 어때. 여행인데. 그 변수에서도 우리는 또 다른 재밌는 걸 찾아낼 수 있을 거야. 아니, 엄마는 몰라도 넌 분명 그럴 수 있을 거야.


다음 날, 감기기운으로 인해 계획했던 고래상어 투어를 다 마치지 못하고 중간에 돌아와야했지만,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지난 번에는 무서워서 물에 들어가지도 못했던 아이가 선뜻 바다에 뛰어들었고, 그래서 마침내 고래상어와 함께 수영할 수 있었으니까. 기대했던 모알보알엔 가지 못했지만, 그 덕에 차창밖으로 세부의 자연을 실컷 구경할 수 있었으니까. 일찍 호텔로 돌아온 덕에 다음 일정을 위한 체력을 충분히 보충할 수 있던 것 또한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날.

아이는 처음으로 구명조끼를 벗고 바다 깊은 곳까지 잠수했다.

겁이 많아 물에는 발도 못 담그던 이전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한 번 해보니까 별 거 아니라며 허세 아닌 허세를 부리는 아이를 보며 나는 또 한 번 안도했다.

그건 비단 아이가 잠수에 성공했다는 단편적인 성과 때문만은 아니었다.


살다보면 결코 해내지 못할 것 같은 일을 수없이 마주하게 된다.

누군가는 노력하면 안 될 일은 없다고 말하지만, 그 노력이야말로 가장 많은 품이 드는 일이라는 건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나는 내 발로 바다에 들어가기까지 30여년의 시간이 걸렸다. 두려움을 극복할 만한 경험이 없기도 했지만, 그 두려움을 내가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도 없었다. 그래서 스킨스쿠버 다이빙 라이센스를 딴 뒤,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내가 생각했던 두려움은 막상 그렇게 큰 장애물이 아니었으며 그것을 극복하고 말고는 온전히 내 선택에 달려있다는 걸 배운 것이다. 덧붙여 그 벽을 넘고 나면 더 넓은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그런데 내가 30여년을 살아내고나서야 알게 된 걸, 아이는 8살 어린 나이에 배우게 되었으니 여행의 동반자이자 보호자로서 뿌듯하지 않을 리가.


아마 다음 여행에서도, 그 다음 여행에서도, 아이는 무언가 배우고 성장할 것이다.

그 여행에 내가 언제까지 함께해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혹 함께 여행하지 못하는 날이 오더라도 괜찮다.

아이의 말마따나, 좋은일은 아무데나 다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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