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꿈이었던 적은 없다. 작가가 되고 싶다고 간절히 바란 적도, 글에 대해 심도 깊은 고민을 해본 적도 없다. 나는 그야말로 얼떨결에 작가가 된 케이스였다.
첫 작품(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졸작)을 계약한 건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9년 5월,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지 1년이 조금 넘었을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온라인으로 소소하게 핸드메이드 소품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돈을 벌려는 목적보다는 그저 뭔가 만들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수완은 썩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그 일을 하지 않더라도 나는 무언가를 만들어댔을테고, 만든 물건을 집에 쌓아두는데는 한계가 있으니 여러모로 괜찮은 소일거리였다. 게다가 1년쯤 같은 일을 반복하다보니 제품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도 점차 짧아졌다. 들어온 주문을 모두 처리해도 오전 11시가 채 되지 않는 날이 허다했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어떻게든 인생을 날로 먹고자 애쓰는 한량에게 '할일 끝냄'과 '시간 남음'의 조합은 곧 '놀자'라는 결과를 도출해내기에 충분했으니 말이다.
어떻게 하면 잘 놀았다고 소문이 날까.
나는 오로지 거기에 몰두했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하고 놀 순 없었다. 나는 어엿한 30대였고 한 가정의 구성원이었으며 동시에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했으니까. 노는 거라면 뭐든 좋아할 뽀로로기는 지났다. 놀긴 놀되, 한량의 정체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진 않을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나는 눈에 불을 켜고 재밌는 일을 찾아다녔다. 나름의 기준도 있었다.
첫째. 돈이 들지 않아야 한다. 들더라도 적게 들어야 한다. 고작 시간 떼우려고 하는 일에 돈까지 들이는 건 너무 한량스러우니까.
둘째. 무언가를 만드는 일도 안된다. 잘 못 만들면 본업(?)의 자격을 의심하게 될 테고, 잘 만들면 이것도 팔아볼까, 하는 생각을 할 게 틀림없다.
셋째. 몸을 쓰는 일은 곤란하다. 이건 달리 이유가 없다. 그냥, 귀찮으니까. 안 움직여도 되는데 굳이 움직일 필요가 있나?
이것 저것 재고 따진 끝에 내가 선택한 건 글쓰기였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본업(?)에 위해를 가하지도 않으며 움직일 거라곤 손가락 몇 개가 다라니, 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재미난 취미냔 말이다.
나는 곧장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다음 카페에 연재 소설을 써 올리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레포트 백업용으로 만들어 둔 비공개 카페는 나 말곤 다른 회원이 없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나 재밌자고 하는 짓인데 볼 사람 좀 없는 게 뭐 대수라고.
글쓰기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작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탓에 캐릭터는 제멋대로 날뛰었고 내용 역시 산으로 갔다 바다로 갔다 육해공을 넘나들었지만, 어쨌거나 그랬다. 회차가 쌓여갈수록 더 재미있었고 완결에 다다랐을 때쯤엔 찔끔 눈물이 났던 것도 같다.
한달도 안 되는 기간에 후루룩 써낸 졸작을 순전히 재미삼아 투고하면서도 나는 그 행위에 어떤 '결과'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