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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oveseoul Feb 23. 2020

산하엽, 그리고 바람

투명해진 당신

난 추위를 지독하게 싫어한다.


겨울 특유의 날카로운 바람은 누군가에겐 낭만적일 수도 있지만

추위를 잘 못 견디지 못하는 나에겐 외로움과 괴로움을 더하는, 반갑지 않은 손님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바람이 불었다.


'산하엽 (Diphylleia grayi)'이란 노래를 속삭이듯 부르는 당신의 목소리는 바람을 닮았다.

때론 찢어질 듯 섬세하고 때론 부드럽게 잔잔하다.


산하엽은 '젖을수록 투명해지는 꽃'이다.

물에 닿으면 흰 꽃잎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투명해지는 꽃이다.


투명하지만 사라지진 않아



그 후론 바람이 불 때마다 당신이 세상에 남기고 간 숨이라고 생각하니 바람이 반가웠다.


눈을 감고 내 볼을, 내 귀를, 내 머리카락을 스쳐가는 당신의 숨을 느꼈다.


당신은 당신이 일평생 흘렸던 눈물에 젖어 투명해졌을 뿐이구나. 사라지지 않았구나.

바람에 흩날리며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워졌구나.


당신이 떠난 이 겨울이, 그래서 더 슬펐던 이 계절이

더 이상 고독하고 춥지만은 않았다.




♫ 산하엽 (Diphylleia grayi) - 종현

(종현 소품집 "이야기 O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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