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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 Feb 26. 2020

김 모 씨

社會欄






 녹음이 매우 푸르렀다. 한 달 뒤면 죽음을 맞이할 매미들이 곡성을 지르듯이 시끄러웠고 햇빛은 거실을 가득 차지하고 있는 전체 유리창 안으로 더 들어오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어쩐지 괘씸하다고 생각하면서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무리 내가 더위를 안 탄다지만, 오늘의 기온은 분명 과도하게 올라가 있었다. 아마 내가 밖으로 나간다면 나는 우리 집 아침 상에 자주 나오는 계란 프라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위는 기세를 그칠 줄 모르고 기세 등등하게 성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성난 더위의 수많은 피해자들 중 한 명이었다. 오늘 밤은 그 기세를 몰아 열대야로 장식될 것이다. 아마도 내 기력은 똘똘 뭉쳐서 당분간은 우리 집 침대 밑이나, 소파 밑으로 들어가 있겠지. 드러누워서 TV를 바라보니 화면마저도 흐물거리는 것 같았다. 뉴스에 나오는 아나운서의 옷차림마저 답답해 보일 정도로 나는 더위에 지쳐있기도 했다. 아, 생각이란 뭘까. 기계적으로 현상을 외치는 뉴스의 소음을 듣는다. '오늘도 전국적으로 폭염이 계속될 예정입니다. 가급적 외출을 삼가 주시고...' 멍하니 흘러나오는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김 모 씨가 떠올랐다. 그의 다이빙, 수영, 지하철, 자살... 창 밖의 나뭇잎이 저항하듯 흔들렸다.




 사실 그건 아주 괴짜스러운 사건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어릴 때 꿈이 수영 선수라고도 했고, 다른 이들은 그냥 관심을 좀 받아보고 싶은 관심병 종자로 분류했다. 하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오고 가는 것도 필시 그들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관심이 없었더라면 혀를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아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김 모 씨의 목표가 관심이었을 경우, 그의 목적은 성공했다.

 아무튼 김 모 씨는 별 다른 특징이 없는 평범한 남자였다. 이 '평범한'이라는 범주를 명확히 표시하기는 어렵지만, 굳이 정의하자면 보통의 출근 시간에 대중교통을 타고 회사에서 일을 한 뒤-뭐 가끔 야근도 하고- 집에 와서 휴식을 취하다 잠에 드는 그런 평범한 일상. 김 모 씨는 혼자 살던 노총각, 서른여덟 살의 회사원이었다. 회사에서 변변한 직책 하나 맡지 못하고, 딱히 못하지는 않았지만 잘하지는 않아 회사 내부의 경쟁 선상에서 밀려난 지 오래였다. 뭐든지 느릿느릿하며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기가 두려워 항상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것이 익숙했던 회사원. 이상할 것 하나 없는 자살이긴 했다. 그에게는 가족도, 연인도, 그를 대변해 줄 만한 변변찮은 친구도 없었고 그 흔한 차 한 대 없었다. 심지어 국민 건강보험 납부 내역 외에 그의 명의로 등록된 보험조차 하나도 없었다. 다가올 내일과 미래를 대비하기 안달인 마당에 정말 하루하루를 충실히 사는 사람이었다.

 여기까지 들으면 이 자살 사건은 아주 평범하고 평범한 죽음이 아닐 수 없다. 너무 짜거나 신, 자극적인 뉴스를 하나라도 더 틀고 싶어 안달 난 마당에 그의 목숨 값은 화젯거리가 되기에는 부족해 보였고 하루 평균 40명이 자살한다는 평균에서 그의 목숨 하나란 정말 덧없음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이 인터넷 상에서 꽤 화제가 된 것은, 그의 조금 특이한 자살방법 때문이었다.




 그는 지하철에서 자살했다. 시간대는 막차가 끊기기 바로 전이었고 장소는 사람이 거의 내리지 않는 종점역 바로 전 역이었다. 그래서 그 흔한 슬라이드 도어도 없었던 것이다. 그는 회사에서 입었던 정장을 집에 벗어두고 새로운 정장을 입고 갔다고 했다.

 순서대로 김 모 씨의 행동을 나열해보자면, 먼저 그는 자신의 가방을 지하철 라커 룸에 넣었다. 그러고 자신의 주머니에서 물안경과 수영모를 꺼냈다. 그러고 나서는 가지런히 차려입은 정장을 차례차례 벗었다. 정말 마지막으로, 수영선수가 준비를 하듯이 그는 수영모와 물안경을 쓰고, 낡은 소니 이어폰을 끼고 긴장한 채로 준비운동을 했다. 그러고 나서는, 완벽한 자세를 갖추고 입수하듯이 오는 지하철에 뛰어들었다.

 목격자는 어떻게든 한 정거장이라도 지하철을 타보려고 급히 계단을 뛰어내려온 직장인 L 양. 그녀가 계단을 거의 다 내려오는 순간 지하철 선로로 그 남자가 다이빙을 했다고 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완전 변태 아니에요? 왜 옷을 다 벗고 뛰어들고 그래요? 살아생전에 이상한 취미 같은 거 있었던 거 아니에요? 정말 세상 무서워서 못 다니겠어요..." 그리고서는 살짝 찡그린 표정으로, 못 볼 것을 보았다는 듯 빨간색 네일을 발라진 손톱으로 입을 가렸다. 손 등에 있던 커피 얼룩이 유일한 흠이었지만, L양의 경멸하는 듯한 표정은 필히 인상적이었다.




그의 '수영'과 관련된 특이한 점은, 그가 자살하기 육 개월 전부터 뜬금없이 수영 학원에 다녔다는 것이다. 수영 학원 강사의 인터뷰도 나왔었다. "항상 열심히 배우셨는데, 특이하게 다이빙하는 포즈랑 접영만 유난히 잘 알려달라고 부탁하셨었어요. 끝나고도 매일 혼자 그 두 동작만 연습을 해 보시고... 그 자세에만 너무 열심이셔서 좀 궁금하기 했지만 그런 분들이 많으셔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죠."

 회사원은 퇴근하고 저녁 늦은 시간에 수영을 배웠는데, 정말 다이빙과 접영 연습만을 열심히 했다고 한다. 그는 왜 죽기 전에 수영에 집착했을까? 삼십 대 후반의 배가 나온 아저씨가 갑자기 수영선수가 되는데 안간힘을 썼을 리가 없었다. 이 사건에 대한 궁금증은 쉬이 풀리지 않았고 나는 가끔 그가 생각났다. 아무 연관도 없는 사람이, 갑자기 내 인생에 불쑥 침입한 것이다.
 내가 이 사건을 알게 된 것은 정확히 작년 팔월 십 삼일이었다. 나는 그날의 나와, 날씨와, 풍경을 기억한다. 이때 나는 은행에 가기 위해서 녹아내리는 아스팔트에 거의 붙어가듯이 걸어가고 있었다. 아지랑이가 굽이치듯 일렁거려서, 나는 이러다가 맨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갈 만한 액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햇빛에 닿아 반쯤 바스러져 보이는 나뭇잎이라던가, 잔뜩 긁혀 스티커에 얼룩진 전봇대라던가, 그런 것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잘 보고 있었다. 겨우 도착한 은행은 한산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평일 낮, 게다가 중요한 업무가 아닌 이상 오늘 같은 날씨에 나오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번호표를 뽑고 앉아있는데 TV에서 뉴스가 나왔다. '12일경 오전 열한 시에 서른여덟 살 김 모 씨가 지하철 역에서 자살했습니다. CCTV 영상에 찍힌 그의 모습은...' 그때부터 나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차례대로 예의를 지키듯 엄숙하고 순수하게, 정갈한 모습으로 뛰어드는 그의 모습이 나의 모든 감각을 앗아갔기 때문이었다. 나는 왜 인지는 모르지만, 명확하고 또렷이 알 수 있었다. 그건 달랐다. 그는 저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연습하고, 기다려왔던 것이다.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위해서 참고, 참고, 또 참았던 것이다. 저 순간만을. 그 벅찬 순간을 자살 사건으로 덮어버리다니. 시야가 흐릿해졌다.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왜 우는 걸까 생각하면서도 나는 어쩐지 그의 기분을 알 것만 같았다. '92번 고객님, 고객님!'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던 건 한참 후였다.
 그 날 이후로 수많은 뉴스와, 프로그램과, 기사를 접했다. 그 어떠한 정보 보다도 그 사건은 나에게 꽤 큰 후유증으로 남았다. 나는 왜 김 모 씨의 죽음이 그렇게 슬프고, 안타까웠던 걸까.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었다. 고장 난 카세트처럼 끊임없는 되감기를 하고는 했다. 그러다 정말 어느 순간 나는 그 사건을 자연스럽게 잊게 되었는데, 그래도 때때로 김 모 씨는 문득 나의 생활에 침입하고는 했다. 나는 가끔 아무 상관도 없는 그의 꿈을 꾼다. 김 모 씨는 꿈을 꾸었을까? 아니, 그의 꿈은 뭐였을까.




김 모 씨의 삶은 지루했다. 그 자신도 항상 지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분수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유명 강연자들은 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말했지만 김 모 씨는 그 이야기를 강하게 불신했다. 그리고 지금 사는 삶이 최선이라고 믿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와의 추억이라고는 한 톨만큼도 없었고 가끔 사진을 꺼내 보는 것이 전부였다. 잘 사는 큰 아버지네 맡겨져 청소년기를 힘들게 보낸 적은 없지만 그는 구석에 몰린 생쥐처럼 자기가 성인이 되면 제 발로 그 집을 나가야 한다는 필사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생각은 어린 시절 그 집 문턱을 처음 밟을 때부터 주전자 연기처럼 피어났다. 김 모 씨는 귀염 받을 애교를 부리는 능력은 없었지만 꽤 눈치가 빨랐으니까. 이렇게 불안해하는 어린 시절 김 모 씨의 마음을 어른들이 알았더라면 아마 김 모 씨는 지금과 같은 무미건조한 삶을 살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큰아버지는 과묵하고 일 밖에 모르는, 집안에 관심이 없는 남자였고 큰어머니는 날마다 새로운 쓰레기로 자신의 옷장을 꾸미는데 혈안이 된 사람이었다. 악의가 있었던 게 아니라 단지 김 모 씨에게 쏟아부을 관심은 콩쥐 항아리의 틈만큼도 남아있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그래서 김 모 씨는 그들을 딱히 원망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 집을 나갈 때까지, 남은 날 들을 꼼꼼히 세기는 했다. 결국 그는 그저 그런 학창 시절을 보냈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그저 그런 대학에 가 자취를 하겠다고 했다. 아쉬워서 어떡하냐, 자주 연락하고 가족처럼 지내자고 말했지만 김 모 씨는 다시는 그 집에 갈 일도, 그들이 자신을 찾아 올 일도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애초에 큰어머니의 말의 의미는 이제까지 너랑 같이 지내기는 했지만 가족이 아니었단다, 의 의미와 일맥상통했으므로. 그것이 큰 집과의 마지막이었다. 이후 김 모 씨가 큰 댁에 명절에 가끔 과일바구니를 보내기는 했으나 답이 온 적은 없었다.

 김 모 씨의 인생에는 커다란 실패도 없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도 없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김 모 씨를 자기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김 모 씨가 자신 있게 소개할 사람도 물론 없었다. 회사를 들어간 후에도 마찬가지로 김 모 씨의 인생은 쳇바퀴 같은 굴레를 돌고 있었다. 김 모 씨는 특출 난 스펙이 있거나 사교성이 좋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단번에 합격했다. 그는 정직하게 느리고 착실하며 말수가 없었다. 입에 맴도는 말이 없어서 뱉어낼 수 없던 것뿐인데 회사는 그의 묵묵함을 '과묵하다'는 말로 뭉뚱그려서 좋아했다. 또한 김 모 씨는 시키는 일은 군말 없이 잘 하지만 경쟁을 하고 싶은 의지가 없었으므로 회사 내에서 마음 한가득 야망으로 채워진 뱀 같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자기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패를 마다할 리가. 회사에는 몇 명의 통치자만 있으면 되었고 적당히 밑을 깔아줄 성실한 일꾼들이 필요했다. 김 모 씨가 그들 중에 가장 모범적인 한 명이었다.

 그즈음에 김 모 씨는 사는데 완전히 질려버렸지만 자살을 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목숨을 끊을 용기가 없다는 것을 알았고, 아직도 저녁에 무엇을 해먹을지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갑자기 김 모 씨의 인생에 터닝포인트라고 할 만한 일이 생겼다. 그것은 수영 경기 방송이었다. 그다음 재생된 프로그램은 열대 섬으로 떠나는 여행 다큐였다. 김 모 씨는 처음으로 그 두 가지가 굉장히 멋져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기도 그렇게 비슷하게라도 되어보자는 목표를 처음으로 가졌다. 김 모 씨는 책상 위에 열대 섬의 사진과 수영 경기 사진을 붙였다. 그의 집 벽에 무언가 붙는 것은 처음이었다. 어쩐지 김 모 씨는 날개뼈가 간지럽다고 생각했다.





김 모 씨는 다음 날 수영을 등록했다. 그가 생각했던 일이 그렇게 빨리 이루어진 적은 처음이었다. 또한, 그는 운 좋게도 그는 수영을 할 줄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기억도 나지 않는 스포츠센터에서 수영을 배웠던 까닭이다. 그의 기억은 희미했지만, 몸은 조금 더 정확했다. 덕분에 그는 금방 진도를 나갈 수 있었다. 그는 접영을 배우기 위해 정확한 시간, 지정된 요일에 나가 열심히 연습했다. 그 시절의 김 모 씨에게 유일하게 알 수 없는 내일이 두렵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다음으로 김 모 씨는 열대 섬을 가려고 했다. 최저가 항공권이니 뭐니 하는 정보들은 그가 알 리 없었다. 그저 정직하게 사이트에 들어가 항공권을 구매했다. 여기까지 본다면 그의 인생이 불을 켠 듯 밝아지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는 비행기 공포증이 있었다. 이제까지 비행기를 타 본 적이 없기에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도 모르는 그의 결함. 구역질과 토기가 내장을 감싸며 몸에 기억된 방향으로 힘껏 달음박질했다. 그것은 완전한 실패였다. 그는 공항을 나오며 생각했다. 손에 맺힌 식은땀 때문에 기껏 매달 듯 가지고 나온 가방이 쿠당탕, 하고 바닥에 미끄러졌다. 그 가방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다시, 인생이 지루하다는 생각이 오래간만에 들었다. 그는 허망하게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잠에 들기 위해 눈을 감았더니, 고장 난 테이프처럼 다시 원치 않는 꿈이 재생되었다.

김 모 씨는 다시 자신의 일생으로 돌아왔다.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대로는 계획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번쩍, 계시처럼, 갑자기 자신이 매일 타던 지하철이 생각났다. 자신의 지루한 인생을 끝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을 한 그날, 처음으로 그는 꿈을 꾸지 않았다.




 김 모 씨는 처음으로 회사를 마음대로 결근했다. 문자 한 통 외에 연락은 오지 않았다. 김 모 씨의 존재감은 그 정도였으니까. 아마 내일도 회사에 나가지 않는다면 그제야 연락이 올 것이다. 김 모 씨는 작게 흥얼거리며 자신에게 있는 가장 깨끗한 정장을 입고 막 광을 낸 구두를 신었다. 모두 자신이 가진 것들 중 가장 좋은 것들로만 골랐다. 싸구려가 다 거기서 거기지, 하면 할 말이 없지만은, 그래도 그것은 김 모 씨가 가진 가장 좋은 것들이었다. 김 모 씨는 먼 역으로 갔다. 그곳은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는, 그의 집에서 그나마 가까운 바다가 보이는 역이었다. 그 날 따라 지하철에는 아무도 없었다. 빛이 지하철 칸의 창을 삼키고, 쇠로 된 마감을 따라 빛났다. 바다의 수평선이 선을 따라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엇나가지 않은 채, 어디서 온 지, 어디서 끝날 지도 모르는 채로.

  김 모 씨는 자신의 계획이 성공할 것임을 본능적으로 예감했다. 그가 큰 집을 나와서 다시 그들을 만날 수 없다는 미래를 알아차렸을 때처럼. 시답지 않은 생각들을 몇 번 흘려보내자, 열차가 역에 도착했다. 열차와 역 사이의 틈이 아주 넓었다. 헛디디면 바로 다리가 낄 만큼의 넓은 틈이었다. 낡은 역이라는 이야기였다. 경건한 마음으로 발을 내디뎠다. 새로운 세계로 진입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조금,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라커를 향해 잰걸음으로 달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라커 문을 열고 자신의 가방을 각에 맞추어 가지런히 넣었다.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그는 옷을 빠르고, 정확하게 순서대로 벗어 개키기 시작했다. 수영복은 안에 입고 왔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고 나서는 그의 낡은 소니 이어폰을 꽂았다. 쇼팽의 녹턴이 흘러나왔다. 그 어느 때 보다도 그의 마음은 차분했다. 드뷔시의 달빛이 흘러나오기 전에 이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수영모와 물안경을 쓰고 준비운동을 했다. 천천히 나가자마자, 예정되었던 시간에 지하철이 그를 향해 오고 있었다. 그는 이제까지 연습했던, 아주 익숙한 동작으로 철로에 뛰어들었다. 그의 몸이 깃털처럼 날아올랐다. 시야를 찢을 듯 한 빛이 망막에 스며드는 순간- 드뷔시의 달빛이 떴다. 바야흐로, 그의 낮에 달이 뜨는 시점이었다. 타인에게 부여받은 이름으로, 원치 않은 생의 시작으로, 이해할 수 없는 지겨운 날들로부터. 그에게 낮은 너무 길었으니 이제는 완연히 밤이 그를 비출 차례였다.




맨 몸으로 뛰어든 김 모 씨는 무슨 생각을 한 걸까? 차라리 정글에서 표범의 눈을 홀린 듯 쳐다보다가 잡아먹히는 편이 훨씬 나았을 텐데. 사막에서 오아시스의 신기루를 보다가 모래 바람과 함께 흩어졌을 텐데. 사람과 커다란 빌딩들과 매연과 누군가의 한숨으로 채워진 이 온실 속의 정글에서 죽음을 맞이할 바에는. 그렇게 옷을 한 겹 한 겹 벗어던지고, 그 와중에 신발은 가지런히 정리하고 지하철로 뛰어든 김 모 씨. 수영장도 아닌 차가운, 고철덩어리의, 어쩌면 쥐가 들끓을지도 모르는 철로로 뛰어든 걸까? 왜 하필 그곳으로 홀가분하게 다이빙을 했는지. 지하철 라커룸에서 자신의 손잡이와 모서리가 닳은, 낡은 갈색 서류가방을 가지런히 넣을 때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쩐지 가끔, 아지랑이처럼 내 꿈의 잔상으로 피어오를 그의 마지막 모습.








2016년에 시작했던 생각을 2020년이 되어서야 끝맺음을 했습니다. 스물두 살의 어휘력이 지금 보다 낫군요. 태어나서 처음 쓴 단편 소설이네요. 엉망진창인 글이지만, 시도에 의의를 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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