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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연 Jun 03. 2024

사진을 보다가

(003) 2024년 6월 3일


   


소중한 사람이 볼멘소리를 했다. 정말 오랜만에 이모님을 뵙게 되었는데, 살 좀 빼라고 한 소릴 하셨단다. 그 말씀에 자극을 받았는지 진짜로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말하는 소중한 사람.

 "엥? 이모님이 그러셨다고? 우리 소한(소중한 사람)이가 얼마나 잘생기고 멋있는데~"

그랬더니 다 내 탓이라며 웃는다.


난 외적인 것으로 가타부타하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다. 지금까지 인물을 밝히거나 따져서 친구 사귀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고유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정남이에게는 '확실히 체중이 늘었네'와 같은 직언을 한다. 그러나 남의 외모를 뜯어서 보거나, 남의 외모를 비하하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외모에 앞서는 인격이 드러나는 행동이 늘 내 눈에는 먼저 들어온다.


나는 소한에게 관대하다. 알고 있다. 소한의 체중이 늘어도 나에게 소한은 늘 똑같은 소한이다. 스스로 건강을 걱정해서 체중감량을 하겠다고 하면 응원한다. 그러나 그뿐이다. 체중에 따라 소한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마음도 변하지 않는데, 어찌 일부러 못된 소리를 한단 말인가. 그런데 늘 예쁘다 예쁘다 해주는 나의 화법이 정말로 소한의 다이어트를 방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야 말았다.


그래서 사진첩을 뒤진다. 한 3년 전쯤에 둘이 같이 찍은 셀카가 나왔다. 세상에. 나는 참으로 젊고 뽀송뽀송하니 아기 같고-물론 과장을 보태어-, 소한 또한 얼굴이 참 얄쌍하니 반지르르하다. 그래, 이때 정도까지만 감량을 해도 어디서 인물 버렸다는 소린 안 들을 터인데. 소한에게 사진을 전송한다.


사진을 보고 직접 느끼라는 뜻이다.

그런데 나조차도 체중이 많이 늘어서 남에게 뭐라 할 계제는 아닌데 말이지.

사진을 보다가 생각한다. 내가 정말 자식을 망치는 부모처럼 너무 오냐오냐 했던가. 소한에게 기름진 음식을 권했던 4년여를 반성하며, 이제 예쁜 말은 없다. 그러나 여전히 소한에게 일부러 상처가 될 말을 할 생각은 없다. 한마디 말은 생각보다 마음에 오래 남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 오래 남는 상처의 깊이를 알고 있기에, 나는 마음을 헤집는 비난의 말은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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