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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연 Jun 24. 2024

작은 백록담의 행방




얼마 전 나의 작고 귀여운 피지낭종을 소개드린 바 있다. 작년 봄 처음 병변이 나타나고 대학병원 피부과에서 치료를 했지만 일 년 만에 재발을 한  요망한 녀석. 재발한 이번에는 상태가 전과 달랐다.

처음에는 작은 언덕처럼 완만한 듯 봉긋한 듯 솟아있던 녀석이 언제부턴가 중앙부가 말랑해지기 시작했다. 요살스런 질감에 손은 자꾸만 피지낭종을 쓰다듬곤 했다. 그렇게 쓰다듬던 밤, 어라 이것이 백록담도 아닌데 꼭 화산 꼭대기의 분화구 같구나 싶은 거다. 한라산에 가본 적이 없는데 내 손끝이 이렇게 백록담 구경을 하네. 나는 그렇게 자꾸만 (백)록담이의 몸체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백록담 구경에서 대강 끝이 났으면 참 좋았으련만, 그 주의 주말에 결국 화산이 폭발해 버렸다. 노란 고름과 피가 정말로 백록담 꼭대기에서 퐁긋퐁긋 솟아 흘러내렸다. 활화산 상태로 고름피 마그마는 끊임없이 흘러내렸고, 나는 억지로 드레싱 밴드로 분화구를 막아버렸다. 백록담 구경한다고 좋아하지나 말 것을. 발해버릴 줄이야.

그렇게 백록담은 나를 성형외과로 끌고 갔다. 이런 로 온 환자는 처음이라며, 성형외과의 고 선생님은 병변을 찰칵찰칵 찍어서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간호사 선생님들도 두 분이나 시술실로 들어와 나와 록담이 구경을 하였다. 고 선생님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내버려 두었냐며, 엄청 아팠을 텐데 대단하다고 하셨다. 아픈 건 이미 혼자 다 겪고 왔고, 선생님은 최선을 다해 나머지를 짜 주시겠다고 하셨다. '우와 아아아아아 아악!' 거친 비명소리가 났다. 참으려 하였지만 참을 수 없었다.

살을 어디까지 비틀고 짤 수 있는지 시험하는 사람처럼, 고 선생님은 나를 쥐고 짰다. 나의 록담이는 결국 커다란 덩어리를 토해냈다. 그리고 그 전리품을 나에게도 보여주시고, 옆에 있던 간호사 선생님들에게도 보여주었다. 내 안에서 그런 피지 덩어리가 나오다니.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인 남성의 검지손톱 면적한 덩어리를 내보내느라, 오금에 땀이 날만큼 아팠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무척 걱정을 해주었다.

선생님은 한 이틀정도 있다가 또 치료를 받으러 오라고 하셨고, 지난해의 피부과 치료와는 강도를 비롯해 모든 면에서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몸소 느낀 나는 토 하나 달지 않고 대번에 이틀 후 예약을 잡았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오기 전의 수요일 오후였다. 기운이 없었지만 엄청난 치료를 받은 후여서인지, 제법 기운을 짜내어 낯선 정류장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으악. 방금 짜냈는데 또 짜내고 말았다. 다음부터는 기운을 짜내지 말아야지.


금요일에도 투석을 마치고 우리 병원의 윤미선생님을 기다렸다. 또 나를 태워다 주신다고 해서 연스럽게 윤미선생님을 기다렸다. 지난번에는 나를 위해 한 블록 정도를 더 가신 모양이다. 오늘은 한 블록 덜 가서 내렸다. 오늘도 차를 타고 성형외과가 있는 동네까지 가는 동안 재미난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다. 원장님이 친구분을 소개하면서까지 성형외과에 가라고 한 것은, 정말로 나를 많이 생각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그리고 앞으로 또 이쪽으로 병원을 오게 되면 윤미선생님이 언제든 태워주신다는 그 다정함에 마음이 따스해졌다.

오늘은 2시 20분에 예약이 되어 있다. 그 예약 시간까지 혼자 시간을 보내기 위해, 블루투스 키보드와 약, 보조 배터리 등을 모두 챙겨서 나왔다. 병원 근처 카페에서 커피와 빵으로 점심을 때우고, 약도 야무지게 챙겨 먹었다. 그리고는 블루투스 키보드로 글을 썼다.

그렇게 재미나게 시간을 보내니, 어느새 예약시간이 가까워다.

성형외과로 가서 조금 대기하니 금방 차례가 되었고, 시술실로 들어갔는데 나왔습니다. 크크크. 들어가자마자 병변을 소독하니 끝이었다. 

메디폼을 뽁 붙여주신 고 선생님은 주말 동안 붙이고 있다가  월요일쯤 되면 시술했던 자리가 다 아물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앞으로 얼마나 성형외과를 오래 다녀야 할까, 혼자 마음으로 각오에 각오를 거듭했는데 더는 예약을 안 해도 된다고 하셨다.

우리 원장님 이야기를 하며, 접수대에서 잠깐 고 선생님과 담소를 나누었다. 더는 다른 치료가 필요 없고, 혹시 재발하면 그때 가서 아예 간단한 수술로 피지 주머니를 들어내자고 하셨다.

낯선 동네에서 생전 처음 타보는 마을버스를 타고, 전철역을 거쳐 집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또다시 재발했을때를 생각하면 무섭긴 하지만, 새로운 동네를 탐험하는 즐거운 시간이었. 메디폼을 뗀 자리에는 어떤 흔적도 남지 않았다. 손 끝으로 만지면 분화구의 흔적이 아주 살짝 느껴지는 정도다. 잘 알지 못하는 동네여서 무조건 두려워만 했는데, 어디를 가든 길을 찾아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병변이 재발한 덕분에 든든한 의사 선생님 한 분을 더 알게 되었다.

참 재미있었던 것이 나를 성형외과까지 태워다 주신 윤미 선생님의 성도 고, 진료해 주신 성형외과 선생님의 성도 고, 그리고 이날 저녁에 아픈 나를 수화기 너머에서 다독여준 소한이의 성도 고씨라는 것. 우리 한이의 이름은 고소한 이다. 참깨처럼 고소하지 않으니까 고소 안 하시기를 바란다.

고고고.

어쨌든 또 작은 치료라는 산을 넘었으니까 고고고, 침없이 인생의 다음 단계를 향해 또 고고고. 그런 의미처럼 느껴져서 웃으며 고고고를 외쳐보았다.

이정연도, 당신도. 우리모두 함께 고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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