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연 Aug 11. 2024

엄마는 될 수 없지만, 행복한 이모로는 살아갈 수 있다

나의 첫조카 산이의 귀여운 아가시절



내 주변은 참 평범하게 잘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평범하다는 표현은 참 조심스럽지만, 절대다수가 살아가는 방식대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는 이야기. 2-30대의 나이에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 사람들. 20대 때에는 주변 친구들이 내 곁을 그런 방식으로 떠나는 것이 무척 슬프기도 했다.

나는 결코 도달할 수 없 생의 단계들을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주변을 보는 일이 서글프기까지 했다. 나는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일들이었으니까.


첫 단계인 연애부터가 내게는 너무도 높은 산이었다. 건강할 때도 나타나지 않았던 운명적인 그가, 병든 25살에게 나타날 리가 없다는 생각에 나는 매우 좌절했었다. 그러니 그런 내게 결혼이나 출산에 대해 떠드는 사람은 없었다. 특히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들은 일절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친척들도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세상 밖으로 나가니, 왜 결혼을 하지 않냐는 둥 말이 많은 이들이 생겨났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은 그다지 대미지가 없었지만, 나의 모든 사정을 알면서도 자꾸 결혼이니 출산이니 떠들어대는 사람들을 나는 자연스럽게 마음에서 내보내게 되었다.

'못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의 차이'는 매우 크다. 사람들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혼자 마음을 도려내고 또 꿰매기를 반복하면서 많은 일들을 못하는 것이 아닌, 안 하는 것으로 인식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10여 년 사이에 마음의 여유도 꽤나 생겼다.


27살엔가 고등학교 때 짝꿍이 결혼한다고 해서 밤늦도록 엉엉 울었던 적이 있다. 아마, 그때가 내 주변의 누군가가 결혼한 첫 번째 일이었던 것 같다. 아이 같은 마음에 머물러서 살던 시절이었다. 아픈 나를 받아들이려고 애쓰면서, 아픈 나를 달래면서. 그러나 겉으로는 허허실실 살던 중에, 갑작스레 내 주변의 누군가가 어른의 세계로 건너간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때 갑자기 '나는 할 수 없는, 못하는 결혼'이라는 사실이 폐부를 찔렀다. 나도 결혼을 '안 하고' 싶은데, '못해서' 너무 속상했다. 그렇게 실컷 울면서 그 답답한 마음을 풀어내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결혼이라는 행복을 맞이한 짝꿍을 질투하는 건가, 하는 의심도 잠깐 해보았지만 단순한 질투가 아닌 것은 나를 비롯한 온 우주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진진이 결혼을 했다. 산이를 낳았다. 또 몇 년 후 소중한 나의 동생 나무가 결혼을 했다. 진진 둘째 아신이를 낳았다. 그런 과정들을 거치며 는 행복했다. 내가 가장 아끼는,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인생의 다음 단계로 가는 모습을 보며 너무 행복했다. 그 아이들을 통해 나는 조금 성숙한 30대가 되었다. 그리고 또 사랑하는 나무가 쌍둥이의 엄마가 되었다. 바로 지난해의 일이다. 




그럼에도 상처는 계속 생겨났다. 나는 친구라고 생각했던 가까운 사람이, 대화 끝에 아무렇지도 않게 "너도 애 낳으면 되지!"라고 가볍게 이야기해서 상처가 되었던 적이 있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다 알면서, 그런 무신경한 발언이라니.  번이나 나는 이번생에는 출산을 하지 않을 것임을 말하였고, 어느 집 아이들을 칭찬하는 말을 했을 뿐인데 무턱대고 너도 낳으면 된단다.


물론 좋은 마음에서 말씀을 하시는 인생 선배님들도 계신다. 정연이도 앞으로 건강해져서 얼마든지 해보고픈 것 다 하면서 살 수 있어. 그런 진심이 담긴 말은 너무도 감사하다. 만 내 경우에는 하고픈 일의 목록에 출산이 없을 뿐이다.


진진과 나무는 정말로 단호하게 "남과 같을 필요 없다!"라고 끊임없이 내게 말해주었다. 20대에는 그 말의 의미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30대의 어느 지점부터는 그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여전히 나는 남과 같지 않다. 결코 남과 같아질 수도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남과 다른 채로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단하고, 이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또한 아끼고 사랑한다. 그들 역시 그들과 다른 나의 삶을 존중하고 혹여나 상처받을 수도 있는 상황에 놓인 나를 배려하고, 나에게 아낌없이 애정을 베풀어준다.


이번주 월요일에 나무네 쌍둥이들을 만났다.

진진의 아들 산이, 아신이는 모두 태어나자마자 눈도 뜨지 못한 그 얼굴들을 모두 사진으로 봤다. 진진에게 나는 늘 가장 특별한 친구이기 때문에, 진진은 산이를 낳자마자 품에 안고서 찍은 사진을 내게 보내주었었다.

그리고 두 돌이 지난 산이를 데리고 서울에 왔었다. 오롯이 나를 만나기 위해. 유모차를 타기도 하고, 걷기도 하던 그 시절의 산이는 처음 만난 나를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그런 산이와는 지금도 꾸준하게 만나서 놀고 있다. 거리가 멀기 때문에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가끔 통화도 한다. 늘 '제일 예쁜 정연이 이모'라고 하고, 보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아이들의 조건 없는 사랑을 산이에게서 처음 배운 것 같다. 둘째인 아신이와는 태어난 지 3개월 되었을 때, 누워있는 모습으로만 만났었다. 지난번에는 처음으로 제대로 아신이와 통화를 했는데, "정연이 이모? 누구세요? 만난 적이 없어."라고 해서 진진과 둘이 까르르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 보니 돌도 되지 않은 아가들을 만나는 일은 내게 무척이나 기대되는 일이었다. 생애 처음 있는 일.

사실 아가들과 강아지들에게는 인기 만점이라고 너스레를 떠는 정연이지만, 막상 나무네 쌍둥이가 나를 싫어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떨리는 마음을 안은 정연을 태운 기차는 뜨거운 월요일 오후, 오송역로 진입하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