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무어냐 물으신다면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
사랑이 무어냐 내게 묻는다면, 나는 기꺼이 '책임지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하겠다. 나의 그 마음을 받을 수 있는 이는 당연하게도 가족인 엄마와 정남, 특별한 소한이다. 그 외에는 정말로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친구들. 깊은 마음을 나누는 극소수의 친구만이 내가 책임지고픈 마음을 품고 있는 대상이다. 그 외는 그야말로 '아웃 오브 안중'이다.
아주 오랜 세월동안 이타적인 삶을 살았다. 으레 우리나라 교육은 이기적인 사람은 나쁜 것이니 남을 돕는 이타적인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나는 늘 모범생이었으므로 그 누구보다 이타적인 사람으로 자라났고 그렇게 살았다. 그러나 그런 삶이 결코 나의 정신 건강에는 이롭지 않다는 것을 많은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됐다.
나를 갉아먹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했다. 사람이 말로도 얼마든지 타인을 할퀼 수 있음을 그들을 통해 배웠다. 때로는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말들로 나의 에너지를 갉아먹었다.
그런 그들을 미워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애를 썼더니, 내가 나를 미워하게 되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A에게 상처받았다. 그래서 A를 대하기가 껄끄럽다. A에게 상처받은 내가 유난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 우주 그 누구였어도 A의 그런 말본새에는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그렇게 나를 상처 입히는 이를 미워하는 것은 당연지사.
B는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끊임없이 부정적인 기운을 쏟아내더니, 나중에는 본인의 힘듦에 절어 나에게 소리를 지르기에 이르렀다. 나는 B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오랜 친구였고 마음으로 아끼는 친구였지만 점점 대화를 피하고 싶어졌다. 더는 그 친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마음이 내 속에서 강렬하게 피어났다.
A를 싹둑. 그리고 B를 싹둑. 나의 인생에서 끊어내기로 했다.
그런 식으로 여러 마음을, 여러 사람을 끊어냈다. 오로지 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모든 기준은 오로지 나와 나의 마음이 되었다. 나를 지켜냈더니 내 곁의 소중한 이들에게 더욱 좋은 에너지를 쏟을 수 있었다.
누군가로 인해 상처 입어서 마음이 깎여 나가기 시작하면, 더는 그의 마음에 대해 관심이 없어진다. 내가 그이를 끊어내서 그이가 상처 입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제 그이의 감정도 그 무엇도 나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책임지고 싶지 않은 마음은 사랑이 아니다.
너무 예쁜 친구 봉숭아가 있다. 이 친구는 배려가 넘친다. 맨 처음 인연을 맺던 순간부터 나의 병을 염두에 두고 단어 선택을 주의하는 모습이 정말로 예뻐 보였다. 진심은 어떤 순간에도 느껴진다. 그러나 이 친구에 대한 마음이 클수록 급히 다가가지 않았다. 그 친구를 찬찬히 지켜보았다. 재미있는 것은 봉숭아 쪽에서도 늘 나에게 급히 다가오려 하지 않고, 다정하지만 신중하게 거리 유지하는 것이 느껴졌다. 몇 년이 지나도 한결같이 배려하고, 상대를 높이는 화법을 쓴다. 그렇게 3년 만에 만난 봉숭아는 정말로 햇살 같은 사람이었다. 햇살 같다는 표현은 활자로 많이 보았지만, 그 표현 그대로의 사람을 만난 것은 정말로 생애 처음이었다.
봉숭아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혹 속상한 일은 없었는지 자주 살펴주고 싶다. 그래서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봉숭아를 사랑한다는 것을.
나는 이제 나를 상처 입히는 A, B, C, D의 인생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의 마음에도 전혀 관심이 없고, 당연히 그들에 대해 어떤 책임도 없다.
이제는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하는 데에만 나의 모든 에너지를 쓰기로 다짐한다.
상처와 손 잡고 나아가기에는 당신과 나의 생이 너무 짧고, 찬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