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시간과 통 시간 사수하기
박사과정 육아맘, 공부는 언제 하나요
"박사과정"으로 논문을 읽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내가 공부를 아주 사랑하는 사람인 줄 안다. 내가 대학원 그것도 박사과정까지 할 수 있었던 건 공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10년 이상 현업에서 일했지만 참 어디 가서 '전문가'라고 이야기하기도 쑥스럽고, 그렇다고 전문가가 아니라고 하기도 자존심이 상한다. 그래서 어찌어찌 대학원에 대학원을 이어 공부를 하고 있다. 주변에 박사과정생이 아무도 없었기에 가볍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원래 모르면 용감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기 전 대학원을 다닐 땐 할만했다. 통계학이 참 어려웠는데 난 사교육 키즈라 늙은 나이에 과외를 받으면서 어찌어찌 수료까지는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학업에 노란불이 켜지기 시작하였다. 아이의 탄생과 함께 말이다.
아이의 탄생은 개인적으로 엄청난 축복이었다. 나는 최소 30살 이상인 사람하고만 대면을 하며 살다 갑자기 0세 아기를 만나니까 감격하다 못해 황송하다는 감정까지 들었다. 아기는 너무 작고 소중했다. 내 온 정신이 아기에게 집중되면서 자연스레 전공과목은 멀어졌다. 확실히 논문을 읽는 것보단 아기 옹알이 듣는 게 더 즐거웠다. 논문이나, 아기 옹알이나 뭔 소리 하는지 알아듣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아기는 귀엽기라도 해서 마주하는 즐거움이 컸다.
육아휴직 중 나보다는 아기에 집중하게 되었다는 소리는 나를 잃어간다는 이야기와 밀접하다. 내가 밥 먹는 시간을 뒤로하고, 아기 밥을 먼저 챙겨주고 내가 잠자는 시간을 쪼개 아기의 건강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를 잃어가는 시간 속에 그토록 원한 건 '나' 그 자신이었다. 나를 채우고 싶어 다시 공부를 시작하였고, 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논문은 써야 하니까,
육아하며 공부는 언제 하나요
안 했다. 육아하며 약 130일이 지날 때까지 공부를 안 했다. 슬럼프니 뭐니가 아니라 아가랑 노는 게 더 재미있었다. 약 5개월이 지나갈 무렵 '나'자신을 원해 다시 슬금슬금 공부를 해야겠다는 싹이 올라왔다. 혼자서는 무리였다. 그래서 나는 아기를 돌보며 유튜브를 라디오처럼 틀어놨다. 논문 후기, 최신 UX 연구 동향, 합격 후기 이런 키워드로 말하는 영상을 주로 돌려보았다. 가끔 암기를 해야 할 땐 아기에게 설명하는 형태로 진행하였다. 세상 밖에 나온 지 5개월 밖에 안된 아기는 무슨 소리인지도 모를 텐데 내가 하는 말에 반응을 해줘서 그런대로 입 밖으로 내뱉을만했다.
육아맘은 아기 돌볼 땐 주로 소리로 들을 수 있는 콘텐츠로 인풋을 쌓고 아웃풋은 녹음기를 켜고 말을 하였다. 처음에는 효율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몇 번 연속해서 말하며 녹음한 것을 한국어로 번역하니 그런대로 할만했다. 짬짬이 시간을 통해 귀로 듣고, 말로 내뱉는 형태로 근근이 공부의 끈을 이어가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역시 공부는 통시간이 필요해,
자투리 시간 활용도 좋지만 역시 공부는 통시간이 필요하였다. 결국 육아맘이 논문을 쓰려면 주변 사람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래서 주말 오전에는 남편이 4시간 이상 아기를 돌보는 것으로 새벽~아침 시간을 마련하였다. 평일 오전에는 베이비 시터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하루 4시간 이상의 시간을 통째로 마련하는 것에 성공하였다. 아기를 낳기 전과 비교했을 때 절대적인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확실히 이 시간 아니면 공부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집중도는 훨씬 올라갔다.
나를 잃지 않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시간 사수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은 돈을 주고 사는 방법도 있고 가족의 도움을 받는 방법이 있다. 특히 돈을 주고 시간을 살 때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공부를 한답시고 그 정도 비용을 투자하는 게 맞을까? 아기를 안 돌보고 공부를 하는 게 맞을까? 별 생각이 다 든다. 하지만 24시간 타인에게 의지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3~4시간이라면 나는 시간을 돈 주고 사든, 의지를 하든 공부에 투자할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나를 잃지 않으면서 육아를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잃지 않는 육아에 정답은 없다. 그저 계속 실험을 하면서 보완을 해나가는 방법만이 있을 뿐이다. 물리적 시간이 부족한 육아맘과 육아대디지만 시간의 밀도는 한층 진해졌으니, 농밀한 집중력과 사랑으로 하루하루 그럭저럭 보낸다면 그럭저럭 아름다운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