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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e Apr 27. 2024

기후변화의 대안을 지방자치에서 찾을 수 있을까?

들뢰즈, 가타리의 생태철학

들뢰즈, 가타리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작년입니다. 기록학자인 김익한 교수님의 강의를 통해서였습니다. 함께 성장하는 힘에 대해 얘기하셨고, 자본과 능력이라는 기준으로 서열화된 사회에서 우리가 대안으로 삼을 수 있는 삶의 양식으로, 나무뿌리처럼 얽히고 뻗어나가는 리좀이라는 비정형 네트워크에 대해 얘기하셨지요. 반복을 통해 표준화된 정답에 수렴해 가는 것이 아니라, 반복을 통해 고유성을 찾게 된다는 ‘반복을 통한 차이’라는 개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철학적 질문은 잘못된 언어사용에서 비롯된 잘못된 질문이다)에 멈춰 있던 제 철학공부를 재개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들뢰즈, 가타리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지구 살림, 철학에게 길을 묻다(신승철)’라는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새롭게 기후변화에 관계된 일을 하게 되면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내가 가져야 할 생각의 방향을 고민하며 읽었었지요. 기후변화와 관련된 철학이 크게 근본생태주의, 사회생태주의, 환경관리주의라는 세 가지 갈래로 나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탈인간, 생명을 전체적을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환경위기를 극복하려면 세계관과 생활양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 가타리의 근본생태주의입니다. 철학자 들뢰즈는 ‘동물 되기’라는 개념을 통해 전지구적인 관점을 되살리려 합니다.

자본주의와 이어진 경제성장과 과소비가 환경위기의 원인이므로, 인류의 생산소비체계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 사회생태주의입니다. 탈성장이라든지, 지역공동체, 코뮨스 등에 대해서 얘기하지요.

마지막으로 환경을 관리의 대상으로 보고, 기술, 정책 등을 통해 환경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환경관리주의입니다.


저 자신이 환경관리주의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개발도상국의 경제사회 발전을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 어떤 나라의 환경에 문제가 생기면 돈이 부족하거나, 기술, 역량이 부족하거나,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환경보다 더 급한 일이 있겠지)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라는 체제에 의문을 가지고 대안적인 지원방안을 찾는다거나, 철학적이고 근본적인 세계관의 변화를 꾀하는 것은 ‘소용없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나 봅니다.




지난 며칠간 에콰도르에서 기후변화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주 내내 17번의 인터뷰를 하면서 ‘지방정부의 보다 적극적 역할’이라는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들렸습니다.


기후변화의 대안이 지역에 있다는 것은 읽었지만, 실제로 지방정부가 기후변화의 양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각 지방에 맞는 해결책을 찾고 사업으로 구상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것을 직접 목격하니 신기했습니다. 에콰도르 개발은행(bank of development)은 지방정부들이 주주로 참여하고, 개발은행은 지방정부들이 기후변화 관련 사업을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국제기구나 국제 NGO들은 지방정부가 기후를 더 잘 이해하고 더 좋은 사업을 만들 수 있도록 역량강화를 지원합니다. 물론 지방정부가 지역사회(특히 자연과 밀접하게 사는 원주민과 지역민)의 입장이나 이해관계를 충분히 반영하지는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진짜 문제라면 문제겠지요), 적어도 나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지방자치에 대해 정말 무지합니다. 지방자치를 강화하는 방향이 맞는 거라는 담론이 국제적으로 있다, 정도밖에 모릅니다.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태어나고 살아와서 그런지, 똘똘한 중앙정부가 서로 이권 다툼을 하는 지방정부보다 낫지 않나? 하는 느낌만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좀 찾아보니, 지방자치는 중앙집중식 정부에서 권한을 하부 구조에 이양함으로써 지역 특성에 맞는 정책을 개발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입니다. 각 국가의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맥락에 따라 지방자치의 형태와 깊이는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유럽이나 미국은 이미 주나 성의 권한이 상당합니다. 아시아는 인도와 필리핀을 제외하고는 다소 중앙집권적인 경향을 보입니다. 아프리카는 지방자치를 강화하려고는 하지만 자원의 부족과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진행은 다소 더딘 편입니다.


에콰도르의 지방자치는 2008년 새 헌법이 도입되면서 본격화됩니다. 사실, 2008년 에콰도르 헌법은 생태주의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의미가 큽니다. 이 헌법은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의 주도 하에 만들어졌으며, 국민투표를 통해 승인되었습니다. 이 헌법은 에콰도르를 ‘다민족 다문화 국가’로 정의하고, 여러 원주민 그룹의 권리를 인정하고 보호하는데 중점을 둡니다. 교육과 건강을 기본권리로 명시하고 이러한 서비스의 무료제공을 목표로 둡니다. 또한 이 헌법은 세계 최초로 자연(파차마마, 어머니 지구)에 법적 권리를 부여한 헌법입니다. 자연이 스스로 복원력과 권리를 가지며, 보호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세웁니다. 또한 지방자치권을 강화하며 지방정부가 중앙정부 간섭 없이 자체적으로 세금을 걷고 배분하는 권한을 강화했습니다. 참여적으로 지역에 맞는 정책과 사업을 결정하고, 지역 고유의 문화와 다양성을 증진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지요.




에콰도르의 헌법은 좋은 삶(수막 카우사이)을 추구합니다. 우리 자신, 다른 공동체들, 그리고 자연과 조화로움을 유지하는 삶입니다(www.pachamama.org/sumak-kawsay).


이러한 헌법에 기반해 추진하고 있는 에콰도르의 지방자치는 들뢰즈, 가타리가 추구했던 비정형의 네트워크, 반복을 통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철학과 닮아있습니다. 각 지역의 구성원들이 참여하고, 그 지역에 맞는 정책과 사업을 만들어 기후변화를 이겨나가고, 그 과정에서 각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문화와 환경이 빛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지구살림, 철학에게 길을 묻다’의 개정 전 제목이 ‘갈라파고스로 간 철학자‘이더군요. 갈라파고스를 품은 에콰도르에서 이 책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 것이 공교롭습니다. 내일은 아마존 숲 보호 사업(REDD+) 현장으로 갑니다. 현장에서는 어떤 모습을 만날 수 있을지 기대되네요. 또 이야기 전할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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