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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e Apr 19. 2024

세계관 싸움, 뭣이 중한디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세계관은 무엇인가?

한동안 직선적 세계관과 순환적 세계관에 골몰했었습니다.


인류는 끊임없이 발전한다. 진화는 잘 적응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v.s.

자연이 돌고 도는 것처럼 인간의 문명도 순환하는 거 아닌가요?


어제의 쓰레기는 오늘이든 내일이든 결국 치워야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순환적 세계관이라면, 쓰레기가 쌓이면 화성으로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직선적 세계관입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세상이 직선적인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세상은 순환적입니다. 나무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한 방향으로 직진하는 것 같지만, 좀 더 긴 시간으로 늘려보면 나고 자라고 죽고 다시 나는 순환고리 속에 있죠.




그래서,


제 마음속 세계관 싸움의 승자는 '순환적 세계관'이었습니다. 조상의 지혜가 이긴 거죠. 안데스 산맥에서 사는 분들이 믿는 파챠마마가 나선적(정-반-합)이긴 하나 어쨌든 방향성 있는 진보를 주창하는 헤겔을 이긴 것입니다. 제 맘속에서요.


그런데,


세계관을 현실로 내려 적용해 볼라치면 고민에 빠집니다.


우선, 적용의 용이성입니다.


순환적 세계관은 종종 익숙한 생산과 소비 방식을 바꾸어야 하는데, 이는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깊이 연결되어 있어 저항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단순히 자원을 절약하고 재활용하는 것 이상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할 때, 사람들이 이에 적응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워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하수도와 연결되어 더러운 것을 단번에 눈앞에서 치워주는 현대식 화장실 대신 생태화장실(일명 푸세식)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인간의 배설물을 자연으로 돌아가게 해주는 순환적 방식이지만 우선 도시에서는 불가능하고, 시골로 내려가 생활방식을 바꿀 각오를 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왜 굳이? 동기 문제입니다.


갈라파고스로 유명한 에콰도르는 헌법의 기본정신으로 환경보전의 중요성을 명시할 만큼 환경적 의식 수준이 높은 나라입니다. 반면에 산업개발을 우선으로 하는 나라들도 있겠죠. 아주 적절한 예는 아니지만, 중국은 막대한 환경오염을 감수하고 희토류를 채굴합니다.


왜 다를까를 생각하다 보면 그 나라, 그 사회가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된 동기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에콰도르는 갈라파고스나 안데스 산맥과 같은 유니크한 자연환경을 활용해서 관광산업이 발달해 있습니다. 제조업 발달이 느린 만큼, 농업에 대한 의존도도 높습니다. 다시 말해, 에콰도르는 환경을 보전하고 가꿀 동기가 있다는 것이죠. 농경에 의존하던 시절의 인류는 모두 순환적 세계관을 가졌을 겁니다. 자연에 의존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연의 주기에 맞게 살아야 했을 테니까요. 농경 외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굳이 대세인 산업개발보다 환경보호를 택했을까, 어쨌든 인간은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의 선택을 하게 마련인데, 순환적 세계관은 현대사회에서 유리한 점이 있는가?


세 번째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딜레마입니다.

  

eco-system based solution이라고 불리는 기후변화 적응전략은 생태계(숲, 습지 등)를 보존하고 관리하며, 생태계를 활용한 지속가능한 생활방식(빗물저장활용 등)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마을이나 지역 수준에서 적용가능한 솔루션이죠. 하지만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골격들, 철골, 전기, 화학비료 등 대규모 산업은 그 자체로 계를 이루어 돌아가고 있습니다. 생태계와 관련 없는 산업계 속에서요.


산업계를 바꾸려면 기술적, 재정적 제약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순환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솔루션들, 예를 들어 재생 가능한 에너지 사용이나 자원의 효율적 재활용 등은 종종 초기에 큰 투자가 필요하고, 기존 시스템과의 호환성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때로는 기존 기술을 대체하는 새로운 기술 개발이 요구됩니다. 이는 기존에 산업화가 잘 진행된 나라에서도 도전이고, 돈과 기술이 없는 나라에서는 더 큰 도전이 되죠.




여기까지 생각하다 머리에서 김이 푸시식 나더라고요. 아니, 세계관을 바꾸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세계관 안 바꾸면 세상 망하나?


네, 망할지도 모르죠.


문제는 인간이 지극히 짧은 시간에 대해서만 실감한다는 겁니다. 사람은 '실감', 생생하게 느껴야 행동을 합니다. (후안무치한 소리지만, 저도 저 죽고 나서 망하기를 바라면서 행동을 미루는 것 같네요.) 먼 미래 얘기를 하면 도무지 감이 안 와요. 하지만,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후소송들, 특히 10대 포르투갈 남매가 유럽인권법원에 제기한 기후소송을 보면, 그들이 느꼈던 위기감을 실감합니다. 2018년 44도까지 기온이 오른 리스본에 사는 남매는, '여기 산불이 나면 꼼짝없이 갇히겠구나' 싶었답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돈을 모아 파리협약에 가입한 유럽 33개국을 대상으로 소송을 했습니다.


최근 뇌과학에서는 인간은 의도를 가지고 한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기 위해 인지를 발달시켰다고 합니다. 세계관은 이러한 인지의 총체이지요. 다시 말해, 세계관은 우리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사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농경사회에 순환적 세계관이 유용했고, 산업사회에서는 직선적 세계관이 유용했습니다. 기후위기의 시대의 세계관은 지금 바로 여기에서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보다 넓은 범위의 연결을 중시하는 시스템적 세계관, 자연과 기술을 연결하는 그런 세계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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