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맛 개발 욕망을 순한 맛으로 바꾸는 법.
인간의 욕망이 북극의 얼음을 녹이고 기후변화를 일으키고 다른 종들을 멸종에 이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 것일까요?
욕망을 절제하거나 버리는 일, 소유하지 않고 존재하는 일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불가능의 영역입니다. 일부 종교와 철학의 영역에서 생각으로나마 살짝 도달할까 말까 한 것이 욕망의 진공상태라면, 그렇게 어려운 것이라면 왜 우리가 그것을 추구해야 하는지 의문마저 듭니다.
욕망을 쇼펜하우어는 "의지"라고 부르고, 부처는 "고통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방향성(이로운 것은 원하고, 해가 되는 것은 피하고자 하는)이라고도 합니다. 인간도 동물의 일종이므로 욕망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욕망을 가진다고 욕하거나, 괴로워하거나 할 필요가 없고요. 저희 집 고양이도 자신의 욕망에 아주 당당하고 자연스럽습니다.
인간의 욕망이 위험한 것은 욕망 그 자체보다는 상상력이 더해진 욕망이 끝없이 재생산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욕망이 자신의 직접적인 생명에 이로운 수준에서 멈추지 않는 것이죠. 진화를 위해 얻게 된 생각하는 능력은 시간의 지평과 가능성의 지평을 확대합니다. 이를 상상력이라고 부릅니다. 상상력을 통해 우리는 더 먼 미래와 더 많은 가능성에 대비하고, 그만큼 더 소유하고자 합니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애서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 거론한 가상의 개념(국가, 신 등)을 만들어내고 믿는 능력도 상상력의 일종입니다.
제가 지난 20년 동안 업으로 해 온 국제개발협력은 다양한 방향으로의 상상력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 내가 평생 알지도 못했던 낯선 나라와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겠다는 행동은 상상력이 없으면 시작조차 될 수 없겠지요.
1. 의도를 가지고 현재의 상태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활동 _ 상상력
개발 또는 발전은 어떤 가능성/잠재력을 열어서 펼친다는 뜻입니다. 개발은 좀 더 미개발된 것을 개발된 상태로 만든다는 느낌이라면, 발전은 기존에 있던 것을 다른 방향으로 펼친다는 뉘앙스가 강하지요. 부동산 개발, 택지 개발, 경제 개발, 사회 개발, 국제 개발, 무기 개발, 도시 개발, 교육과정 개발, 금융 개발 …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현재의 상태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활동이 개발인만큼, 인간의 경제활동의 대부분이 개발행위와 연관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새로운 주거지를 만들어서 이윤을 남기고 팔려는 의도, 가난한 국가들을 도우면서 자국산업을 진출시키고 외교적 교섭력을 강화시키려는 의도, 잠재적 위협에 대비하면서 힘의 과시를 통해 분쟁을 억지하려는 의도, 인간의 의도는 개발이라는 행위로 구체화되죠. 즉,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의도, 그것이 개발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오직 미래, 하지만 과거의 반복 _ 역사에 대한 상상
'의도'에 기반한다는 속성으로부터, 개발은 언제나 미래를 향하고 있습니다. 과거를 향하는 개발을 본 적이 있나요? 저는 없는 것 같습니다. 만약 있다면 과거를 재해석하여 미래의 개발에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겠죠. 동북공정처럼.
하지만 국제개발협력에는 역사에 대한 상상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합니다. 개발은 항상 미래를 향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과거의 기억과 교훈은 '합리적 계획'의 오점으로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나왔기 때문에, 과거의 정치적 불안정은 사라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 하지만 많은 경우 과거에 했던 실패와 성공의 패턴을 반복하고, 붐이 일어나고 거품이 꺼지고, 경기가 순환합니다. 국제적인 개발행위들도 이런 오류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역사에 대한 상상이 필요한 이유이지요.
3. 개발을 하는 쪽과 받는 쪽 _ 상상력의 거울 앞에서
상호적인 개발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참여적인 개발이라는 용어가 한 때 유행했었고, 요즘은 locally-led라는 담론이 유행합니다. 개발 결과의 수혜를 받는 사람들이 참여해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는 의미이지요. 하지만 이마저도 개발을 하는 쪽과 받는 쪽의 이분법적인 전제는 여전한 것 같습니다.
개발이라는 단어 속에는 이런 일방적인 관계성이 배경음악처럼 깔려있습니다. 교육과정 개발이란? 학생들에게 ‘내가 원하는 의도’를 학습시키겠다는 기본전제가 깔려 있죠. 학생들은 선생보다 열등한 존재이므로, 개발의 아래쪽 편에 서 있습니다. 아마티아 센의 ‘개발은 자유의 증진’이라는 명제는 바로 이 지점을 주목하죠. 개발의 아래쪽 편에 서 있는 사람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가장 궁극적인 자유이고 궁극적인 개발이라고요. 상상을 하는 주체와 상상의 대상이 되는 주체를 바꾸어 생각해 보는 것, 상상력의 거울 앞에 서서 거울 속의 상대방이 나를 바라보는 이중의 상상을 하는 것을 꿈꿉니다.
4. 전지구적으로 부딪히고 엉키는 변화의 의지들 _ 관계성에 대한 상상
사회의 다양한 구성요소들이 서로 다른 의도를 가지고 변화를 시도함으로써, 개발은 다양한 힘이 서로 부딪히고 엉키는 무대가 됩니다. 국제사회, 국가, 국가 간 공동체, 지역사회, 민간기업, 정부, 시민사회, 개인들까지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것이 개발이라는 행위죠.
전 대륙이 참여하는 세계대전을 거쳐 인류는 정보, 물류, 문화, 경제가 밀접히 연결된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국적 기업들의 개발행위, 특정 국가의 농업 분야의 변화 등이 서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된 것이죠.
이러한 복잡한 관계성에 대한 상상은 때론 저를 소진시킵니다. 너무 복잡해서 내가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럴 때는 내가 맺고 있는 작은 관계들과, 내가 속해 있는 작은 공동체들에 대해 생각하면서 관계성을 감각합니다. 그 감각을 기반으로 다시 한번 전 세계적인 관계성에 대해 상상을 펼치는 거죠.
5. 아낌없는 자원 소모의 과정 _ 하나뿐인 지구에 대한 상상
개발은 자원을 소모합니다. 당연한 얘기죠. 인간의 존재자체가 자원을 소모하고 있으니 개발이 자원을 소모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개발이라는 행위는 대규모의 자원을 집중적으로 소모합니다.
개발은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는 선형적인 역사관에 기반하고 있어요. 현재 일어나는 개발행위들이 대부분 자본주의의 논제들과 일체화되어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적 선의 방향인 개발을 향해 아낌없이 자원을 투하하는데 거리낌이 없고요. 그 결과 인류는 존재해 온 25만 년 중 최근 몇 만년 사이에 6천만 명에서 80만 명으로 폭발적인 인구성장을 이루었습니다. 동시에 잠재적인 형태로 묻혀 있던 자원을 꺼내어 쓰면서 급격한 기후변화를 초래했습니다.
내가, 우리가 하고 있는 행위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상상하는 것, 도시라는 인공물에 갇혀 사는 현대인들에게 낯선 과제일 겁니다. 아파트 단지에도 나무가 있고 새들이 있으니 매일 자연을 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구글 지도를 켜고 도시가 얼마나 회색인지 한번 들여다볼 일입니다.
6. 연민 _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민은 인간의 본성 중의 하나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죠. 공동체 생활을 하는 인간은 타인의 고통으로부터도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얻어야 했습니다. 위기를 감지하고 재빨리 도망칠 수 있어야 했고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함으로써 비로소 그 공동체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 바로 compassion 연민이니까요.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이익이 되는 행동을 선호하지만, 타인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고 돕고자 하는 마음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도 또한 개발의 원천이 됩니다. 사회복지 사업, 국제협력 사업, 다양한 자선활동들이 그렇죠. 하지만 이러한 활동들도 여전히 역사성, 관계성, 일방성에 대한 한계를 공유하고 있죠.
7. 상상과 현실의 괴리 _ 상상력의 지평선
의도하고 상상했던 결과와 현실 간의 괴리에서 개발자는 좌절합니다. 아주 작은 변화도 기대할 수 없는 견고한 저항에 부딪힐 수도 있고, 선한 의도의 개발이 오히려 나쁜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상상력이 더 크고 더 멀리 뻗을수록 그 괴리는 커지고, 미리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는 능력도 한계에 부딪힙니다. 그런 괴리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단기간에 변하지 않는 것은 포기해야겠다고 돌아서야 할까요. 아니면 상상력의 지평선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야 할까요.
국제개발협력을 추동하는 상상력은 기본적으로 나 자신에만 국한되지 않은, 낯선 사람과 낯선 영역을 포괄하는 상상력이기에 선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쇼펜하우어도, 부처도 욕망을 버리고 비우라고 말했지만, 평범한 저는 아직 그게 잘 안돼요. 버릴 수 없다면 조금이나마 나아지는 방향으로 상상하려고 합니다.
미래뿐 아니라 과거를 상상하고,
내 입장뿐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상하고,
가깝고 먼 관계들에 대해 상상하고,
내가 발 딛고 있는 지구에 대해 상상하고,
타인의 고통에 대해 상상하고,
상상력의 한계에 대해 상상하는 것.
다양한 대상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방향으로의 상상은 매운맛 욕망을 순하고 맛있는 욕망으로 고급스럽게 재탄생시켜 주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