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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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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은 바람과 먼지가 섞여 있다. 업무로 폐기물 산을 방문할 때마다 얼굴을 때리고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먼지가 들어간다. 쓰레기 처리장 건설 가능성을 조사하는 일. 며칠씩 걸리는 출장이다.

차를 몰고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 폐기물 산이 있는 지역에 도착한다. 멀리서 보면 거대한 산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쓰레기 더미가 층층이 쌓인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공기에는 화학물질 냄새가 섞여 있고, 까마귀가 잔해 사이를 날아다닌다.

지유는 차에서 도면과 수첩을 꺼낸다. 폐기물 처리장 건설 가능성을 분석하기 위해 주변 지형을 살핀다. 때때로 기술자와 함께 온다. 그들은 토양 샘플을 채취한다. 지유가 그들을 따라 주변을 걷는 동안, 아래에서는 주민들이 폐기물 산을 뒤지고 있다. 그들은 금속 조각과 플라스틱 조각을 찾아 재료를 모은다.

한 여성 노인이 다가와 말을 건다.

“우리 아이들이 여기서 놀던 자리에 쓰레기가 더 쌓이면 안 돼.”

지유는 고개를 숙여 안타까움을 보인다.

“하지만 돔에선 더 이상 처리할 곳이 없어요. 우리가 다른 옵션을 찾아야 해요.”

그녀는 지유의 얼굴을 뚫어지게 본다. 그 눈에는 분노와 슬픔이 섞여 있다.

“그래서 이런 일을 계속하나? 돔에서 쫓겨났으면서도?”

지유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신다. 그녀는 내 과거를 알고 있다. 지유가 돔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을. 트라그마 증후군 발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다시는 돔에 들어갈 수 없단 걸 알아요.” 지유가 가시 돋친 말투로 말한다.

“하지만 다른 선택이 없어요. 이렇게라도 해야 돔이 우리 가족을 도와줄 기회가 생기니까요.”

노인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각자의 일로 돌아간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먼지와 바람이 지배한다. 숙소는 돔에서 먼 언덕에 있다. 창문을 열면 멀리 둥근 돔이 아주 작게 보인다. 낮에는 미세하게 윤곽만 보이지만, 밤이 되면 잔잔한 빛이 어둠 속에 떠다닌다. 돔이 있는 방향으로 붉은 노을이 길게 뻗는다. 방 앞에는 황야가 펼쳐진다. 굳은 땅과 먼지, 그리고 바위뿐이다. 그곳을 지나야 폐기물 처리장 후보지에 닿는다. 지유는 매일밤 돔의 빛을 바라본다. 그곳 안에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다. 가끔 아이들이 웃으며 소리를 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든다.

지유는 예전에 돔에 살았다. 돔이 지어지기 전에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검진 결과에서 트라그마 증후군 발현 가능성이 있다는 판정이 나오기 전까지. 그날, 의료진은 화면을 보여주며 조용히 말했다. “정책상 입주 자격이 없습니다.” 그 이후로 도심에서 멀어진 이곳에서 지낸다.

밤마다 돔을 바라본다. 빛이 천천히 회전하는 것처럼 보여, 마치 멀리 있는 행성 같다. 그 안에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은 돔 밖 세상을 잘 모른다. 돔 내부는 항상 일정한 온도와 밝기를 유지하지만, 바깥은 바람과 먼지, 끝없는 건조함이 지배한다는 것을. 지구 온도가 5도 올라갔을 때, 사람들은 기존의 대도시 주위에 성벽을 쌓았다. 성벽은 돔이 되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었고, 선택된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 곳에 살 수 있었다.

책상에는 지도와 도면, 협상 자료가 흩어져 있다. 흩어진 종이 뒤로 예전에 찍은 사진 한 장이 눈에 밟힌다. 푸르른 나무 아래서 웃고 있는 젊은 얼굴들. 그중 하나가 자유다. 그때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

새로운 폐기물 처리장 후보지에 가는 날. 차에는 공용 기자재가 실렸다. 도로는 울퉁불퉁했다. 먼지가 흩날려 시야가 흐려졌다. 마을에 도착하니 주민들이 이미 모여 있다. 팔짱을 끼고 신경질적인 표정이다. 간혹 구호를 적은 종이를 들고 있다.

“또 왔네.” 한 노인이 말했다.

“이번에는 어떤 조건을 들고 왔소?” 중년 남자가 묻는다.

협상은 쉽지 않다. 처리장 건설 대신 돔에서 제공할 보상 목록을 읽어 내려간다. 정수 시설, 의료 지원, 학교 설립.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젊은 여성이 손을 들었다.

“우리가 받는 보상이 몇 년이나 갈까요? 쓰레기장은 영원할 텐데.”

공허한 질문. 대답은 준비되어 있지만 설득력은 없다. 일부 주민들은 물러서지 않는다. "더 이상 더럽히지 마세요. 이곳은 척박하지만 더럽게 살고 싶지는 않아."

지유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도면을 펼치고 설명을 시작한다. 어느 위치가 적합한지, 어떻게 건설할지. 그러나 그들의 시선은 냉담하다. “쓰레기는 쓰레기지.” 한 사람이 중얼거린다. “아무리 좋은 이름을 붙여도 쓰레기야.”

대표로 나선 중년 남자가 팔짱을 낀 채 묻는다.

“그게 다예요? 쓰레기가 쌓이면 우린 죽어요.”

그는 경험에서 나온 말투였다. 지유는 속으로 계산한다. 더 많은 보상을 약속해야 할까? 돔에서는 예산이 정해져 있다. 지유는 말한다.

“더 논의해 볼 수 있습니다. 저도 혼자 결정할 수는 없어요. 돔과 상의해 보겠습니다.”

협상은 길어졌다. 주민들은 돌아가며 발언했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이 땅을 지켜왔다고 했다. 쓰레기 더미를 보고 자라야 하는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했다. 지유는 차분하게 적어 내려가며 그들의 요구를 기록했다.


저녁이 되어 숙소로 돌아왔다. 창밖으로 돔의 빛이 보인다. 지유는 피곤한 몸을 침대에 던졌다. 전화 알림이 울린다. 기다리던 메시지였다. 익명의 발신자가 전송한 것이었다.

“유전자 검사를 조작해 드립니다. 돔 입주 기록을 없애드립니다. 안전 보장. 연락 주세요.”

지유는 한참 동안 그 메시지를 응시한다. 남편이 알려준 마지막 방법, 꺼림칙하지만, 마음이 흔들린다. 그동안 돔에 돌아갈 기회가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지만 그 방법은 몰랐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지유는 잠시 고민한 후 메시지에 답했다.

며칠 후, 약속된 장소에서 그 사람을 만났다. 골목 안쪽 작은 방, 낡은 의자와 허름한 책상만 있는 곳이었다. 그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다.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기다리셨습니다.” 그가 조용히 말했다. “트라그마 증후군 기록을 삭제하는 건 위험하지만 가능해요.”

지유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가능한가요?”

“돔 시스템에도 빈틈이 있습니다. 코드에 접근해 기록을 변경할 수 있어요.” 그는 작은 칩과 태블릿을 내보였다. “이걸 적용하면 당신의 기록이 업데이트됩니다. 돔이 더 이상 당신을 트라그마 환자로 인식하지 않을 겁니다.”

지유는 의심을 품으면서도 돈을 꺼냈다. 그는 돈을 검토한 후 칩을 내 손에 쥐여주었다.

“성공을 빕니다.” 그가 말했다.

집으로 돌아와 조심스럽게 단말기에 칩을 꽂았다. 화면이 깜빡거렸다. 새로운 데이터가 입력되는 듯했다. 나는 며칠 동안 응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돔 시스템에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연락처로 메시지를 보내도 답이 없었다. 지유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어디선가 문제가 생겼을 거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

숙소 창으로 돔이 보인다. 밤이 되면 돔의 표면을 흐르는 작은 빛줄기들이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 지유를 외롭게 한다. 며칠마다 남편과 영상 통화를 한다. 그날도 그는 화면 속에서 평소처럼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어땠어?” 그가 물었다.

“협상은 잘 안 돼. 주민들은 화가 나 있어.”

“너무 무리하지 마. 밖은 위험해.”

그가 말한다. 지유는 창을 바라본다.

“돔 내부는 어때?”

“점점 힘들어. 사람들은 더 많은 공간을 원해. 물과 음식이 부족해. 지난주에 소요가 있었어.”

그의 표정이 굳는다. 나는 마음이 아프다. 우리 아이들은 그 내부에 있다. “아이들은 괜찮아?”

“응. 학교에서 식물 재배를 배워. 하지만 밖의 세상은 그림책에서만 본다더라.” 그의 목소리에는 씁쓸함이 묻어 있다.

나는 아이들의 이름을 부른다. “지현, 준호. 엄마가 곧 데리러 갈게.”

그들은 화면에 나타나 손을 흔들고 웃는다. “엄마 언제 와?” 둘째 준호가 묻는다.

“곧. 조금만 기다려.” 지유는 말을 아끼며 미소 짓는다. 아이들이 있어서 유전자 검사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통화를 마치고 나면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아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을 만나려면 돔의 벽을 넘어야 한다. 시간은 흐르고, 돔은 점점 포화상태에 도달한다. 안의 사람들은 불안에 떨고, 밖의 사람들은 고통에 괴로워하는데, 지유는 돔의 유지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다른 방법이 없잖아"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1주일이 더 지났지만 유전자 검사 결과에는 여전히 아무 변화도 없었다. 결국 가진 돈을 다 쓰고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다는 것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런 허술한 정보를 알려준 남편에게도, 그걸 믿은 멍청한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하지만 당장의 문제는 텅텅 빈 잔고, 지유는 야간에 돔 외벽 관리업무를 시작했다.

돔 외벽 관리업무를 시작하고 교육 중에 다른 수강생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대부분은 돔 주민이다. 위험수당이 높아 지원했다고 한다. 누구도 돔 밖에서 온 사람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젊은 여성 하나가 다가온다. 이름은 윤아라고 한다. 그녀는 묻는다.

“왜 이런 일을 하게 됐어요?”

머뭇거린다. “돈이 필요해서.” 간단히 답한다.

윤아는 고개를 끄덕인다. “돔 안에선 이런 일 안 하려고 해요. 위험하니까.”

“밖에선 이런 일밖에 없어요.” 덧붙인다. 그녀가 웃는다. “밖 사정을 잘 모르지만, 힘들겠네요.” 서로 어색하게 미소 짓는다.


교육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면 돔이 멀리서 반짝인다. 지유는 남편 현우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화면 속 그의 얼굴에 지친 기색이 있다.

“돔은 어때?”

“물 줄 서는 사람들로 북적여.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해. 물이 부족해.” 그는 카메라를 돌려 돔 내부를 보여준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물을 받는다.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하다. 경찰과 로봇이 줄을 정리한다. 목소리가 높아진다. “우린 이렇게 살려고 돔에 들어온 게 아닌데!” 누군가 외친다.

“아이들은 괜찮아?” 질문한다.

“학교는 아직 열려. 하지만 물 배급 문제 때문에 수업이 자주 중단돼. 식량도 줄었어.” 그의 음성이 가라앉는다.

“밖은 어때?” 그가 묻는다.

“여기도 마찬가지야. 물은 부족하고, 바람은 거세. 오늘은 협상 때문에 새벽부터 뛰어다녔어. 곧 돔 외벽 관리업무를 시작할 거야 야간에.” 상황을 말한다.

“조심해. 밖은 위험해.” 그가 말한다.

“돔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잖아.” 속으로 말하지만, 목소리에 내지 않는다. 둘 다 알고 있다. 간신히 유지해 오던 돔 내부의 평화도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왜 쫓겨났어요?” 어느 날 윤아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지유는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이야기를 했다. 검진 결과, 트라그마 증후군 가능성, 돔의 규칙. 윤아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저었다.

“너무 잔인하네. 나는 돔에서 태어났지만 그런 이야긴 몰랐어.”

그녀는 내 어깨를 두드렸다. 우리는 잠시 서로의 고독을 공유했다. 그날 밤 나는 숙소에 돌아와 창밖의 돔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반짝이는 벽. 그 벽을 건너편에는 내 가족이 있었다. 내가 보호해야 할 벽이었고, 동시에 넘어야 할 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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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벽 관리 일을 시작하고 며칠 후였다. 외벽을 돌며 이상이 없는지 살펴본다. 바람이 강하다. 미세먼지가 눈을 찌른다. 안전 장비를 갖추고도 코와 입이 따끔거린다.

새벽의 어둠 속에서 작은 울음소리가 들린다. 잘못 들은 걸까? 지유는 멈춰 서서 귀를 기울였다. 소리는 벽 아래에서 나온다. 손전등을 비추니 작은 아이가 배수구 앞에 놓여 있다. 천으로 싸인 몸이 떨리고 있다. 손을 뻗으려는 순간, 그림자가 다가온다.

지유는 깜짝 놀라 다른 경비들에게 알리려 했다. 그 순간 누군가가 지유의 어깨를 잡았다. 고개를 돌리자 검은 옷을 입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나를 조용히 끌어당겼다.

“소리 내지 마세요.” 그녀가 속삭였다. 지유는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예전에 폐기물 산 근처에서 만났던 그 노인의 딸, 소라였다. 그녀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지유는 숨죽이며 물었다.

“돔은 유전자 검사 결과가 좋지 않은 아이들을 몰래 버립니다. 우리가 구하려고요.”

그녀는 아이를 들고 재빨리 사라졌다. 지유는 그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 작은 골목 안쪽, 숨겨진 문을 지나 지하실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피곤한 눈빛과 굳은 표정으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도와주세요.” 소라가 말했다. “이 아이들은 트라그마 증후군을 가졌다는 이유로 버려졌어요. 그러나 우리는 알아냈어요. 신성한 땅의 먼지는 이런 아이들을 살릴 수 있어요. 트라그마 증후군이 없는 사람은 그 먼지를 견디지 못하지만, 있는 아이들은 견딜 수 있어요.”

지유는 머리가 멍해졌다. 내가 저주라고 생각했던 병이, 살 수 있는 능력이었다니. 하지만 지유는 주저했다.

“나는 돔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야. 이렇게 하는 건 위험해.”

“당신도 이 벽의 잔인함을 알잖아요.” 건우라는 남자가 나섰다. “우리가 이 아이들을 구하지 않으면 죽어요. 돔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이들을 내다 버려요.”

지유는 벽을 바라봤다. 자신이 지키는 벽이 이런 일을 감추고 있었다. “어떻게 도와줄 수 있죠?” 지유는 물었다.

“우리가 아이들을 빼내는 시간에 경비를 돌려주세요. 잠금 코드를 열 수 있지 않나요?”

지유는 망설였다. 그날 이후 몇 번 더 아이들이 발견됐다. 매번 소라와 그녀의 동료들이 나타나 아이를 데려갔다. 점점 더 많은 진실이 드러났다. 돔은 아이들을 버렸고, 밖의 사람들은 그들을 살렸다. 지유는 혼란 속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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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오후, 지유는 소라와 함께 신성한 땅을 다시 찾아갔다. 쓰레기 처리장 후보지라고만 생각했던 그 땅으로. 처음보다 더 느린 속도로 먼지가 떠올랐다. 햇빛을 받으며 은빛과 금빛으로 반짝였다. 지유는 마스크를 벗고 조심스럽게 공기를 들이마셨다. 폐 속으로 먼지가 들어왔다. 약간 따끔했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호흡이 불편하지 않았다.

“보셨죠?” 소라가 말했다. “트라그마 증후군이 있는 사람은 괜찮아요. 여기에서 살 수 있어요.”

함께 온 과학자 다연이 자료를 펼쳐 보였다.

“이 먼지는 독성을 분해하는 미생물과 결합해 있어요. 일반 사람들은 면역 체계에 영향을 받아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지만, 특정 변이를 가진 이들은 오히려 안정적으로 적응해요.”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트라그마 증후군 환자가 적응할 수 있다는 연구가 진행 중이에요. 식물도 자라요. 여기서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그동안 돔에 들어가기 위해 그 기록을 지우려고 애썼는데, 사실은 그 반대였어. 지유는 몸을 떨었다.

밤에 숙소로 돌아와, 방 안에서 천천히 창밖을 바라봤다. 돔이 보였다. 우리 아이들은 아직 그 안에 있다. 지유는 남편에게 연락했다.

“내가 오늘 무엇을 봤는지 알아?” 그가 영상 속에서 지유의 눈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신성한 땅의 먼지. 트라그마 증후군이 있는 사람만 살아남아. 나도 괜찮았어.”

“그게 정말이야?” 그의 목소리에는 놀라움이 묻어났다.

“그래. 그런데 돔은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숨겼어. 아이들을 버려.” 지유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화면 너머로 들리는 소음이 잠잠해졌다. 오래된 팬이 도는 소리만 들렸다. 끝내 그가 입을 열었다.

“나도 사실 오늘에서야 알게 됐어. 우리 아이들이 트라그마 증후군 판정을 받았어. 내일 밤에 조용히 내보내겠다고…” 그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내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이야? 아이들이 왜?” 숨이 멎는 느낌이었다.

“검사 결과가 나왔어. 돔은 발현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군. 추방하겠다고 통보를 받았어. 난 어떡해야 할지 정말....”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아이들을 구해야 해. 밖으로 나오게 해. 내가 기다릴게.”

“방법이 있겠어?” 그의 목소리에 불안이 스며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을 걸고라도 아이들을 데려올 거야. 신성한 땅으로 가면 살 수 있어.”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긴 숨을 내쉬었다. 지유와 남편은 다시 한 팀이 되었다. 돔을 넘기 위해,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

다음 날, 돔 내부의 상황은 빠르게 악화되고 있었다. 물 배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며칠마다 고장 나는 시설. 사람들이 수백 미터 줄을 서서 물을 받는다. 식량 배급도 줄어든다. 아이들은 배고픔에 울었다. 돔 내부 게시판에는 불만이 쏟아진다. “우리 돈은 어디 갔나?”, “지도부는 뭘 하고 있나?”

어느 날, 식량창고가 불탔다. 누군가 우발적으로 던진 화염병 때문이었다. 혼란이 일어났다. 내부 경찰과 로봇이 진압에 나섰지만, 주민들은 흥분했다. 투석전이 벌어지고,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떤 이는 벽에 “우리는 바깥으로 나가겠다”라고 적었다. 돔 안에서 최초의 대규모 폭동이었다.

현우가 연락해 왔다.

“상황이 안 좋아.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있어. 물과 식량이 너무 부족해. 바깥에 살기 좋은 땅이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소문이 아니야. 정말 그런 땅이 있어. 하지만, 트라그마 변이가 없는 사람들은 거기서 살 수 없을 거야.”

설명한다. "알고 있어" 현우는 말했다.

“내일까지 아이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올게. 그날에 맞춰줘.”

준비가 시작된다. 소라와 동료들은 경로를 확인하고, 차량을 준비했다. 외벽 잠금 코드를 몇 번이고 연습한다. 재난 상황에 대비한 비상 신호도 준비한다. 밤낮으로 계획을 검토한다.

약속된 날, 폭풍이 몰아친다. 먼지가 세차게 덮친다. 돔 안에서는 물과 전기를 얻기 위한 싸움이 다시 벌어진다. 일부 사람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돔 외부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그 혼란을 틈타 현우는 아이들에게 마쓰크를 씌우고 출발했다.

“정말 나가야 해?” 지현이 불안해하며 물었다.

“그래. 밖으로 나가야 해.” 현우는 다정하게 손을 잡아준다.

아이들은 무사히 틈을 통과했다. 그들은 먼지를 들이마셔도 괜찮았다. 현우는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엄마!" 지유는 마냥 아이들을 꼭 끌어안는다.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벽 너머에서 사람들이 밀려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먼지를 마시며 쓰러졌다. 한 명, 두 명. 비명과 울음이 섞인다. 트라그마 변이가 없는 그들은 숨을 쉴 수 없다.

아이들을 태운 차는 신성한 땅으로 달렸다. 소라와 동료들이 앞에서 길을 인도한다. 바퀴아래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난다. 마침내 신성한 땅의 경계에 도착했을 때, 먼지가 반짝이며 그들을 감쌌다. 아이들은 그제야 마스크를 벗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지현은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준호도 두 팔을 벌린다. 그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먼지가 몸을 감싸면서 따뜻한 느낌이 든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안정된다.

뒤를 돌아보니 멀리서 돔의 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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