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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명 Nov 11. 2019

일이 주는 생각들

그래 봐야 고작 사람

결국, 모든 것은 사람이 하니까 모든 일은 불확실성/불안정성 속에서 진행된다. 사람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존재니까. 타인이 불안하고 믿음이 가지 않으며 뜻대로 관계가 풀어지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존재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지나치게 예민하게 굴 필요도 없고, 혼자 고결한 척할 필요도 없다. 더 깊이 있게 생각하는 척하면서 옳고 그름을 따져대는 나 역시도 그저 그런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일 뿐이니까. 다들 인생에 뭐 대단한 것이라도 있는 듯 굴지만, 인간도 인생도 모두 ‘ㅈ도 아니다.’

그래서, 곁에 있는 고만고만한 사람들의 ‘나름의 노력’과 ‘알 수 없는 속내’에 감사하는 것이 최선이다. 한 때는 ‘나름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경멸했다. ‘모두가 나름의 노력을 하니까’, 나름 최선을 다했다는 말 쉽게 하지 말고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그런데 언젠가부터 같은 이유에서 생각이 바뀌었다. ‘누구나 나름의 노력을 하니까’, 그 나름의 수준을 비난할 수는 있어도 어쨌든 ‘노력은 노력’이라는 점에서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 또한 ‘알 수 없는 속내’가 좋든 나쁘든 무엇이 되었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하고 있으니까. 일단 행동은 같이 하고 있으니까. 고마운 줄 알아야지. 고마움은 갖되 기대는 하지 않고 그저 나만 잘하면 된다.

누구나 ‘아는 것’과 ‘하는 것’이 다르다. 알면 알수록 하는 것이 더 다르다. 그래서 소위 ‘가방끈’ 좀 달았다는 사람일수록 겸손한 척하면서도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정도의 차이를 막론하고 그렇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누군가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코, 사람은 통제할 수 없는 존재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주제넘게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악마라서가 아니라, 역시나 ㅈ도 아닌 사람이라서 그렇다. 때문에 언제나 어디서나 마찰은 생겨나기 마련이다. 마찰을 문제로 보느냐, 그냥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느냐는 각자의 선택이다.

다만 그 선택이 누군가에게, 혹은 자신에게 어떤 ‘해’를 끼칠 것인지, ‘유익’을 줄 것인지를 잘 생각해보는 것이 그저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어떤 것이 ‘해’이고 어떤 것이 ‘유익’인지에 대한 생각도 각자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무엇이 좋고 나쁘고에 대한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겠다. 그저 그 ‘해’와 ‘유익’이 내가 평소에 추구하는 태도와 결이 같은지 생각해 볼 필요는 있겠다. 평소 자신에게 ‘해’라고 말하던 것을 ‘유익’으로 취하거나, 타인에게 ‘유익’이라고 말하면서 ‘해’를 주는 일만은 없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이렇게 조심해야만 살 수 있는 것이 세상인가, 라고 생각해보면 참 살기 힘들어진다. 이렇게 살기 싫으면 딱 하나만 생각하면 된다. 첫 문단 마지막 문장으로 돌아가서, ‘인간이든 인생이든 ㅈ도 아니다’라는 생각하나면 충분하다. 그럼 모든 불필요한 일들이 사라지고 인생이 아주 담백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누구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고, 잘 보일 필요 없으니 쓸데없는 말이나 행동을 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를 통제할 필요도 판단할 필요도 없어지고, 예민해질 필요도 없어진다. 아주 깔끔하고 담백해진다.

길게 썼지만 3줄 요약하자면,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 ‘사람이 제일 귀하다는 것을 알고’ / ‘나나 잘하자’라고 할 수 있겠다. “그저 살아있자”가 신조이며 ‘연명’이 목표였던 2019년, 뜻하지 않게 한 해의 반을 일하는 데에 쓰게 되면서 또 한 번 머릿속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기분이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좋은 생각들을 하게 된, 좋은 경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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