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다(Sacada) - 누구에게나 뺏기고 싶지 않은 영역들이 있다. 그 자리를 탐하는 것이 때론 당신을 아프게 할지 모르지만, 멈출 수 없다, 그것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줄 것이기에.
밀롱가에 들어가니, 탱고 음악이 무섭게 우리를 덮쳐왔다.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음악이 마치 우리를 압도하는 것 같았다. 단지 공간이 바뀌었을 뿐인데, 몸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자연스러운 듯 루크는 우리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안쪽에는 바(bar)가 있었고, 그곳에는 호스트로 보이는 사람들이 손님들을 맞이하는 중이었다. 루크는 자신감 있게 그곳으로 걸어갔다. 그들은 루크를 보더니 반가운 표정으로 루크에게 손을 흔들었다. 루크 또한 그들에게 반갑게 인사하며 친밀함을 표시했다.
어쩐지 그런 루크의 모습이 인위적으로 보였지만, 그런 걸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엘리아나도 마찬가지로 조금은 경직된 표정으로 루크의 안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긴장한 듯한 우리를 보더니 루크는 웃음을 터뜨렸다. 긴장한 우리에게 그는 뭘 그렇게 긴장하냐며 농담을 던졌다. 우리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한 말인 것 같았으나,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신의 농담이 소용없는 것 같자, 루크는 일단 입장료를 내야 한다며 우리에게 큐알 코드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입장료를 지불할 수 있는 큐알 코드가 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촬영하여 카카오 페이를 통해 입장료를 지불했다.
간단한 확인 절차가 있었고, 호스트로 보이는 사람이 우리에게 닉네임을 물었다. 우리 둘은 각각 닉네임을 말했고, 그는 장부처럼 보이는 종이에 간단히 이름과 남자 댄서인지, 여자 댄서인지 등의 간단한 정보를 적었다. 일련의 작업들이 끝나자, 루크는 우리를 사람들이 춤을 추는 구역으로 데려왔다. 그곳에는 수많은 남녀가 플로어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아시다시피 저 가운데를 론다(Ronda)라고 해요. 론다에서 춤을 출 때는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야 해요.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들이 오밀조밀 붙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부딪히지 않으려고 각자 공간을 잘 활용하고 있죠. 좁아 보이지만,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이 밀롱가의 매력이에요. 이제 편하게 나가서 춤을 추시면 됩니다. 나가실 때는 눈짓으로라도 들어간다는 신호를 주는 걸 잊지 마세요."
루크는 말을 마치고,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우리를 덩그러니 두고 떠났다. 아직 막 들어왔을 뿐인데, 그가 그렇게 서둘러 떠나는 것이 의아해서 시선을 따라가 보니, 루크는 아까 이야기했던 까베세오(Cabeceo)를 하기 위해 아는 여성에게 다가가는 중이었다. 그는 몇 마디 나누더니, 곧 그 여성과 함께 론다로 나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루크의 몸짓은 이 공간에 완전히 녹아든 듯 보였다. 그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 흐름 속에 있었다.
반면, 엘리아나와 나는 그저 멀뚱히 서서 밀롱가의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고, 그들 사이에서 우리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이런 곳이 홍대에 있는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어요."
내부를 둘러보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도 마찬가지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할머니께서 밀롱가 이야기를 하셨을 때, 정말 그런 곳이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정말 있네요. 신기해요. 서울에 이런 장소가 있을 줄이야. 무슨 동화 속에 나오는 파티 같네요."
엘리아나가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그러게요, 춤을 출 수 있게 가운데를 뻥 뚫어 놓고, 작은 테이블들을 주위에 론다를 감싸듯 배치했으니, 마치 모두를 위한 무대 같네요. 여기서는 누구나 주인공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거겠죠."
감상에 젖어 춤을 추는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보며 엘리아나에게 말했다. 그들의 움직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들의 춤은 그저 움직임을 넘어서는 무언가였다. 마치 그 공간 안에서만 허용된, 다른 차원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춤을 추지 않는 이곳과 음악에 빠져있는 저곳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무엇이 그들을 저렇게 즐겁게 할까? 문득 궁금해졌다. 그들은 외부의 모든 시선과 평가를 잊고, 온전히 춤에만 몰입하고 있었다. 내 삶에서도 즐거움을 느낀 적은 있었지만, 저렇게 온전히 몰입했던 순간은 없었던 것 같았다. 그들이 부러웠다. 나도 저렇게 춤을 추며 완전히 몰입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조용히 서 있는 엘리아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아무 말 없이 춤추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에서 나와 같은 열망이 느껴졌다.
"계속 서서 있을 수 없으니, 저쪽에 가서 앉으시죠?"
론다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엘리아나에게 말하며, 그녀를 빈자리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다행히 아직 자리가 있었고, 우리는 나란히 앉아 탱고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각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춤으로 표현하는 듯,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무언의 대화 같았다. 음악과 춤이 하나로 어우러지며 시간이 흐르는 것을 잊게 만들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들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탱고 음악이 끝나고 팝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마치 신데렐라가 무도회장을 떠나듯, 하나둘씩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제야 잠시 쉬는 시간임을 알 수 있었다.
춤이 끝나자 루크는 자신과 함께 춤을 추던 여성을 자리로 안내했다. 두 사람은 서로 웃으며 포옹을 나누었고, 그들의 표정으로 보아 만족스러운 춤이었음이 분명했다. 인사를 마치고 나서, 루크는 두리번거리며 우리를 찾더니, 우리 쪽을 발견하고 천천히 걸어왔다.
"이런 식으로 쉬는 시간이 따로 있나 보네요."
엘리아나가 다가온 루크에게 물었다.
"네, 맞아요. 이렇게 탱고 음악이 아닌 다른 음악이 나오면 쉬는 시간이에요. 보통 이걸 꼬르띠나(Cortina)라고 하죠. 잠깐 동안 팝송이나 다른 음악이 나오다가, 다시 탱고 음악이 시작될 거예요. 보통 1분 정도 휴식이죠. 다음 딴따(Tanda) 때는 춤추셔야죠?"
"딴따요? 딴따가 뭐죠?"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모르는 말이 너무 많아서 루크에게 질문했다. 루크는 잠시 내쪽을 보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데이빗 님은 배운 지 얼마 안 되셨으니까 모르실 수 있겠어요. 딴따는 탱고 음악 세트예요. 보통 세 곡에서 네 곡이 한 세트로 나오죠. 그래서 춤을 신청할 때 '한 딴따 추실래요?'라고 묻기도 해요."
루크가 친절하게 설명하며 엘리아나를 바라봤다. 질문은 내가 했는데도 그녀에게 시선을 두고 있었다. 엘리아나도 잘 몰랐던 용어였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는 이어서 밀롱가에서 어떤 음악이 선호되는지, 발스와 밀롱가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팝송이 끝나고 새로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다음 딴따는 루크의 말대로 발스(Vals)였다.
"어, 이거 발스다!"
엘리아나는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몹시 흥분된 목소리였다.
"발스를 좋아하시나 봐요? 저도 발스 좋아해요. 특히 'Desde el Alma'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곡이죠. 카나로 악단의 연주가 최고예요. 혹시 발스를 좋아하시면, 저랑 한 곡 추실래요?"
루크는 마치 엄청난 우연을 만난 것처럼 이야기하며, 그녀에게 춤 신청을 했다. 그녀는 그의 제안에 솔깃한 듯했다. 그러나 어쩐지 섣불리 하겠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뭔가 걱정이 되는 듯했다.
"저도 밀롱가에서 춤을 추고 싶긴 한데, 제가 잘 못 춰서… 괜찮을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리드할게요. 그냥 제 리드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첫 밀롱가에서의 첫 춤이라니, 영광이네요."
루크는 손을 내밀었다. 엘리아나는 그 손을 보고 잠시 내 쪽을 쳐다봤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나에게 허락을 구하는 듯했다. 나는 그저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살짝 비장한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파이팅입니다. 힘내세요, 나는 조용히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엘리아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루크의 손을 잡았다. 그들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 론다로 향했다. 서로 손을 잡고 중앙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마치 연인처럼 보였다. 루크는 능숙하게 그녀를 아브라소로 이끌었다. 음악이 점점 크게 들리는 듯했고, 잠시 눈을 감았다. 심장을 두드리는 듯한 음악 때문에 눈이 피로한 것 같았다. 눈을 감으니 어둠과 함께 음악이 몰려왔다. 그가 말한 'Desde el Alma'를 들으며 이 노래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상상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