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다(sacada)
전반적인 사항들을 확인하고 리허설을 마무리했다. 마지막 리허설은 콘서트 전날 진행하기로 했다. 돌아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미묘했던 건 아마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다. 당일 어떤 대답을 준비해 올지 그들의 대답이 기대됐다. 당장이라도 그 대답들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아직도 한 달이나 시간이 남았기에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그들이 떠나는 걸 확인하고, 곧장 아카데미로 향했다.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 계단 아래에서부터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방음문임에도 불구하고 살짝 열린 틈 사이로 음악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탱고에서 비롯된 그 떨림이 나를 반겼다. 계단 난간을 잡고 천천히 그 울림을 느끼며 내려갔다. 문을 열자 탱고가 나를 반겼다. 밑으로 깔리며 우는 듯한 현악기 선율이 오늘따라 반가웠다. 아카데미에는 이미 몇몇의 사람들이 일찍 나와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유독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파트너인 엘리아나였다. 거울 너머로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엘리아나가 뒤돌아 반갑게 인사했다.
"오늘은 늦지 않았네요?"
장난스럽게 눈을 흘기며 그녀가 말했다.
"당연히 늦으면 안 되죠. 그때는 사정이 있었어요. 다음부터 늦게 되면 먼저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에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 말 믿어 볼게요. 좋아요, 이제 그럼 우리 뭐부터 연습할까요?"
그녀의 질문에 나는 잠시 주춤했다. 연습을 하려 하는데 마땅히 무엇을 연습해야 하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다시 한 번 탱고에 대해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태 배운 동작들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생각보다 아는 게 없었다. 그러다 보니 무엇을 연습해야 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우선 배웠던 동작들을 되짚어 보기로 했다. 식스 살리다부터 오쵸까지, 할 수 있는 동작들을 만들어가며 배웠던 동작들을 복습했다. 배울 때도 어설펐지만, 막상 다시 하나하나 되짚어보니 엉망으로 동작들이 만들어졌다. 동작이 엉성하게 완성될 때마다 조금씩 짜증이 쌓여갔다.
하지만 전처럼 그녀에게 짜증을 내고 싶지 않았다. 분명 내가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건 사실이니까. 그 탓을 그녀에게 돌리고 싶지 않았다. 사과 하나 하지 못한 모습도 별로였는데, 더 별로인 모습을 보여 그녀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전날의 실패를 반복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오로지 나만의 생각이었다는 걸 느끼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데이빗 님, 자꾸 상체가 제 쪽으로 숙여져요."
"데이빗 님, 공간을 열어주셔야 제가 들어가요."
"데이빗 님, 자꾸 저를 휘두르세요."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아무런 불만이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그녀의 요구는 점점 많아졌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런 적은 처음이라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저번에는 분명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내가 그녀에게 이야기를 해달라 다그쳤던 것 같은데, 갑자기 달라진 그녀의 태도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그녀의 태도가 변했는지 너무 궁금할 지경이었다. 참아보려 했지만 그녀의 지적은 끊임없어서 참다 참다 그녀에게 돌려 물었다.
"엘리아나 님, 원래 이렇게 성격이 직설적이셨어요?"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무슨 의미로 물어보신 거죠?"
"아, 다른 게 아니라 평소보다 적극적이신 것 같아서 신기해서 물어봤어요."
"대회에 나가자고 했잖아요. 그러면 당연히 잘해야죠. 그러려면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말해줘야죠. 아니, 데이빗 님이야말로 저번에는 그렇게 잘 말하더니 오늘은 왜 아무 말도 안 해요, 답답하게."
그녀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네? 답답하다니요? 대답은 다 하고 있는 걸로 기억하는데요."
나는 마음속에 쌓인 불만을 참고 말했다.
"그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네’만 하고 대답하면 그게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건가요?"
"표정 가지고 뭐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녀의 지적에 어이가 없어 순간 목소리가 커졌다. 나름대로 그녀의 신경에 거슬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는데, 그녀는 그걸 알아주지 않고 오히려 신경 쓰고 배려하는 내 모습을 가지고 화를 내고 있었다. 나라고 하고 싶은 말이 없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 또 참으며 그녀에게 맞추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 모습이 지적을 당하니 참을 수 없었다.
"제가 언제 말하지 말라고 했나요. 파트너십인데 당연히 서로 피드백을 해줘야죠. 그것도 안 하면 뭐 하러 파트너십을 하겠어요?"
그녀는 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녀의 표정을 보자 참고 있던 감정이 화산처럼 터질 듯했다. 소리를 질러 화를 내려고 하던 찰나, 밀러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곧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다 가운데로 모여주세요."
그의 목소리를 듣고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숨을 고른 뒤 일단 끝나고 다시 이야기하자고 차분히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각자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잠시 자리를 옮겼다.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각자 다른 곳으로 이동해 준비를 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루크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시 내 쪽을 힐끔 보더니 루크와 귓속말로 몇 마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내 심장이 부글부글 끓는 듯했다. 너무 화가 나서 눈을 감고 숨을 고르고 있는데 누군가 살며시 내 팔짱을 꼈다. 순간 놀라서 눈을 떴다. 팔짱을 낀 사람이 누군지 확인해보니 에밀리아가 옆에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