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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범 Mar 31. 2024

메디아 루나 - 살리다 5

밀러의 말 때문이었을까. 밤새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수면장애가 다시 도진 것 같았다. 한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잘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조금 언짢았다. 조금 더 늦장을 부리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습관이란 건 사람을 가만히 두는 녀석이 아니었다. 습관처럼 새벽 네 시에 눈이 떠졌다. 눈이 떠지면 잠을 잘 수 없었기에 몸을 일으켰다. 쓸데없이 너무나 일찍 일어났기에 무얼 해야 되나 고민이 됐다. 고민을 하다가 익숙한 것을 하기로 했다.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아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을 했다. 매일 새벽마다 하던 것이기에 자연스레 호흡에 집중했다. 아니 집중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이어 잡스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정리되지 않은 과거들이 숨통을 조여 오는 것만 같았다. 계속해서 떠오르는 잡다한 생각들을 정리하려 했지만 생각을 없애려 할수록 잡념들은 숲 속에 난 불처럼 그 열기를 점점 더 키워갔다. 차분하게 가라앉아 머리를 맑게 해줘야 할 시간이 머리를 뜨겁게 만드는 시간으로 변해갔다.  


가만히 앉아서 이 짓을 계속하면 오히려 머리가 뜨거워질 것만 같았다. 머릿속을 휘젓고 있는 생각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을 움직여야만 할 것 같았다. 그때 떠오른 것이 탱고였다. 그들이 알려준 연습 스텝이 떠올랐다. 몸을 움직여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불길을 잠재우고 싶었다. 자세를 잡고 살리다 스텝을 떠올리며 앞, 뒤, 옆을 반복하며 연습을 했다. 사람 하나 혼자 살만한 원룸에서 달밤의 체조가 시작된 것이다. 혹여나 밑에 집에서 층간소음으로 항의를 할까 뒤꿈치를 들고 조심스레 스텝을 밟았다. 뒤꿈치를 들어서였을까 다리에 힘이 더 들어가고 힘든 느낌이었다. 십오 분을 넘기자 땀이 나기 시작했다. 땀이 나니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조금 더 탱고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과 선생님들처럼 마음이 닿는 동작을 하고 싶다는 의지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한 시간 정도 그 동작들을 반복하고 나서야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시간은 어느새 여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출근 준비를 해야 할 때였다. 출근이란 게 익숙하지 않아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일하러 나간다는 건 비슷한 거니 크게 다르지도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현실에 적응해야 할 때임을 알았기에 살짝 뺨을 두드리며 정신을 차렸다. 


성수역까지 가려면 제법 시간이 걸렸기에 얼른 준비를 해야 했다. 그래도 같은 이호선 라인인 곳에 직장을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역까지 걸어가는 시간도 생각해야 하니 조금은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간단하게 시리얼에 우유를 부으며 아침을 준비했다. 아침을 먹으며 오늘 해결해야 했던 업무들을 정리하며 출근 준비를 했다. 이런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지만 그런 걸 따지기에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모두에게 평범하고 당연한 삶이 당연하지 않았기에 때때로 자신이  이 서울 한복판으로 떠밀려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마치 이민자처럼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 같았다. 아니 이민자처럼 정착하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는 게 옳은 표현이었다. 낯선 땅에 살기 시작한 사람인 듯 두려운 마음을 안고 또다시 출근길에 올랐다. 문득 아카데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금요일이 돌아왔으면 좋겠다라 생각하며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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