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인지를 활용해 불안을 다스리자
나는 입버릇처럼 ‘바쁘다’, ‘일이 많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래서 약속을 잡는 것조차 부담스러워서 친구도 아주 가끔씩만 만난다. 그런데 최근 불현듯 떠오른 질문은, ‘내가 진짜 그렇게 바쁜가?’ 하는 것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보다 더 큰 일을 맡은 사람도 놀 땐 확실히 놀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쉬운 일을 맡은 나는 친구 얼굴 한 번 보는 것에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결국 내가 늘 바쁘다고 느끼는 것은 일의 절대적 양보다는 심리적 부담감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떻게 하면 일에 대한 부담감을 없앨 수 있을까 고민하는 와중에, 예전에 본 다큐멘터리가 생각이 났다. <EBS 학교란 무엇인가-8부 0.1%의 비밀>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한다. 상위 0.1%의 학생 집단과 일반 학생 집단에게 25개의 단어를 제시하고, 제한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이 기억하도록 요구한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얼마나 기억하는지 확인하기에 앞서 학생에게 자신이 몇 개나 쓸 수 있을지 ‘예측’해보게 한다는 것이다. 그 후 기억하는 단어를 직접 써보며 확인한 결과, 일반 학생과 상위권 학생의 기억력에는 두드러진 차이가 있지는 않았다. 일반 학생보다 더 못 기억한 상위권 학생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차이점은 ‘예측한 개수의 정확성’이었다. 일반 학생은 모두 예측한 개수와 실제 개수가 일치하지 않았다. 너무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한 것이다. 그런데 상위권 학생은 많이 맞히든 그렇지 않든, 대부분이 정확하게 예측했다. 결국 실험의 요지는 기억력 자체가 아닌, 예측 능력의 중요성을 말하고자 함이었다. 실제로 메타인지라는 용어가 있다. 쉽게 말해 자기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정확하게 구분하는 능력이다.
메타인지적 지식(metacognitive knowledge)
: 무언가를 배우거나 실행할 때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능력
(출처: corbis)
일에서도 메타인지가 중요하다, 즉 이 일을 처리하는 데에 얼마만큼의 작업량이 필요한지를 정확히 예측하는 능력 말이다. 메타인지 능력이 부족하면 자신을 과신해서 마감을 넘기거나, 반대로 나처럼 너무 일을 부풀려 생각해서 부담을 느끼게 된다. 나는 일에 대한 메타인지가 부족했다. 가령 어떤 일을 끝마치기 위해 해야 할 작업이 4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고 예측을 하면, 실제로는 3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대체로 나는 내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일을 좀 과대하게 부풀려보는 경향이 있다. 일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면 좋은 거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1시간만큼의 부담감을 더 많이 안고 시작하는 꼴이다. 이것이 아마 내가 늘 일에 부담감을 느끼는 원인이라 추측된다.
일에 대한 부담감은 나의 예상 능력과 실제 능력의 사이의 괴리로부터 발생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메타인지를 잘 활용하면 일에 대한 부담감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일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일에 걸리는 시간과 작업량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만약 나처럼 예측을 잘 못하는 경우에는 일의 큰 흐름을 파악하는 연습부터 필요하다. 일의 큰 가닥이 머릿속에 잡혀 있어야 잘 예측할 확률이 높아진다. 예측의 정확도가 높아지면 그 후에 작업 자체는 자신의 페이스에 맞게 조금 천천히 해도 된다. 메타인지 능력의 상승만으로도 일에 대한 막연한 부담감이 확실히 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어떤 보고서를 쓰는 데에 얼마만큼의 작업이 필요할지를 먼저 가늠해본다. 그런데 그 예측이 잘 되지 않는다면, 일단 개요 정도만 간단히 작업을 해본다. 그러면 보고서 작성에 얼마나 시간이 들지 좀 더 현실적으로 추측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연습만으로도 나는 심리적 부담감이 크게 줄었다.
예전에는 일에 대한 불안감의 원인을 생산성의 탓으로 돌렸다. 그래서 일처리 속도를 늘리는 것에만 혈안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빨리 일을 끝내야 부담감이 사라진다는 단순한 계산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으니, 원한다고 다 빨리 끝내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요즘에는 무조건 빨리 처리하겠다는 마인드보다도 자기의 능력을 잘 예측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자신의 속도를 존중해야 심리적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법이다. 익히 잘 알려져 명언으로 남은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너 자신을 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