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성실성의 관계
최근 교육을 받았다. 한 명의 튜터를 중심으로 열 명 남짓한 튜티들이 교육을 받는 연수였고, 그 튜티 중 하나가 나였다. 교육을 이수하기 위해서는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는데, 튜터가 나의 보고서를 검토해주셨고, 무탈하게 보고서를 제출했다.
연수를 받을 때에는 일말의 의구심조차 들지 않았던 부분인데, 연수가 끝나자마자 문득 이질감이 드는 사실이 있었다. 튜터 분은 분명 이 튜터 역할을 ‘지원’해서 맡았다는 것이다. 특히나 나보다 더 높은 직급에 있으니 훨씬 업무량이 많다는 점을 상기하면 놀라운 부분이었다. 나는 항상 바쁜 사람들을 보면 일이 많겠구나, 정도의 생각에 그쳤는데 그분은 바쁜 와중에 하나의 일을 더 ‘선택’했다는 사실이 나에게 신선함을 주는 지점이었다. 물론 튜터를 했을 때의 금전적 보상을 얻기 위해서거나, 커리어를 쌓는 등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대단했다. 생각해보면 바빠서 여유가 없을 것 같은 이들이 본 업무 이외의 부분에서도 훨씬 더 많은 일을 처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삶의 여유를 중시하는 나로서는 일에 치이는 생활을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당한 바쁨’은 어쩌면 행복의 요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실제로 심리학에서 사람의 성격을 구성한다는 다섯 가지 요인(BIG FIVE) 중에서 높은 성실성이 직장생활의 성공과도 큰 관련이 있고, 결혼 생활에서도 배우자에게 큰 만족감을 준다고 하니 행복과 관련이 있는 것도 거짓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한가한 여유가 좋다고 해도, 나 또한 늘어지는 삶보다는 부지런함을 유지하는 생활 속에서 더 행복감을 느꼈다.
돌아보면 바쁜 듯 살 때가 가장 부지런하게 지냈고, 그럴수록 시간이 많아지는 모순을 느꼈다.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에 더 아껴서 쓰게 되고, 그러다 보면 낭비되는 시간이 현저하게 줄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성실하게 지내면서 얻게 되는 크고 작은 성취들이 나를 즐겁게 해 주었고, 그게 다시 원동력이 되어 나를 더욱 성실하게 만들어주는 선순환을 유지했다. 반대로 오히려 시간이 많을 때는 더 게을러지기 쉬웠고, 생활 리듬도 깨졌다.
부끄럽게도 요즘엔 성실함과는 먼 생활을 하고 있다. 유래 없는 여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음에도, 역시 한가한 삶보다는 바쁜 듯하게 지내는 삶이 나는 더 행복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이미 몸은 게으름에 익숙해져서 잘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관성의 법칙이 떠오른다. 달리는 물체는 계속 운동하려는 성질이 있고, 반대로 정지된 물체는 계속 정지하려는 법칙. 부지런함도 이와 같은 게 아닐까? 부지런하게 지내다 보면 그게 익숙해지지만, 어느 순간 나태함의 굴레에 빠지게 되면 다시 일어서는 데에 훨씬 더 많은 힘이 필요해지는 것과 비슷하다.
요새 다시 나의 성실함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부지런함을 유지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거창함이나 강렬한 의지 따위를 버리는 일이다. 그저 최소한의 규칙을 만들어서 꾸준히 지키는 것, 그게 단순하지만 정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요새 한 달에 1~2편씩은 브런치에 글을 올리자고 다짐하고 있다.(잘 지키고 있다ㅎㅎ) 또, 일주일에 1개씩 그림을 손 놓지 않고 그리는 것도 목표로 해서 지키고 있다.(한번 그리다 보니 또 재미가 들려서 목표한 분량보다도 훨씬 더 많이 그리게 된다.) 또, 하루에 10분씩만이라도 걷는 것도 목표로 삼았다. 하루 10분이라고 하면 부담이 들지 않고, 실제로 걷기 시작하면 10분보다는 더 많이 걷게 된다.
확실히 느끼는 것은, 역시 부지런함 속에서 나는 더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관련 논문
- Donnellan, M. B., Conger, R. D., & Bryant, C. M. (2004). The Big Five and enduring marriages. Journal of Research in Personality, 38(5), 481-504.
- Solomon, B. C., & Jackson, J. J. (2014). The long reach of one’s spouse: Spouses’ personality influences occupational succ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