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작가 온수와 교육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물꿈이 함께하는 [너를 통해 나를] 프로젝트입니다.
'엄마'와 '아빠'라는 서로 다른 역할을 맡고 있는 친구가 만나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나눕니다. 멀고 깊은 이야기도, 가깝고 가벼운 이야기도 담습니다.
[너를 통해 나를] 프로젝트는 매월 첫째 주, 셋째 주 토요일에 공유됩니다.
아이의 머리 길이가 많이 길었다. 곧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멋있게 잘라주려고 어느 정도 길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머리가 눈을 가려 이마가 보이게 묶어주었더니 나름 또 예쁘다 싶지만, 아무래도 깔끔하게 다듬어야겠지. 동네에 새로 생긴 미용실로 가봐야겠다. 다녀오면 저녁도 해 먹어야 하고 시간이 빨리 흐를 테니 나가기 전에 나를 위한 짧은 드로잉 한 장만 그리고 싶어 졌다.
예전에 찍어두었던 필름 사진을 그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진을 뒤적이니 내 어린 시절 사진 한 묶음이 나왔다. 초등학교 입학 때의 사진이었다. 나는 깔끔하게 땋은 머리를 말아 올리고, 풍성한 드레스를 입고, 꽃다발을 들고 교문 앞에 서있다. 누가 이렇게 꼼꼼히 머리를 만져주었을까? 다음 사진을 보니 대구에서 서울로 수험 공부를 하러 올라와 우리 집에 잠시 살았던 사촌 언니가 커다란 안경을 쓰고 옆에 서있다. 또 다음 사진을 넘기니 보글보글 파마한 긴 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개구지게 웃는 내가 있다. 지금은 없는 그때의 발랄함을 조금 가져올 수 있을까 싶어 종이에 슥슥 그림을 그렸다.
“자, 이제 우리 머리 자르러 가자!”
“어디로요?”
“요 앞에 새로 생긴 미용실로!”
“오, 좋아!”
마스크를 쓰긴 했어도 새어 들어오는 바깥공기는 기분이 좋다. 집 뒤에 작은 산이 있어서 그런지시원하고 깨끗한 느낌이 든다. 주택가가 있는 골목을 지나야 상가가 있는 길이 나온다. 아이의 손을 잡고 골목길을 걸으면 곧 달리고 싶어 진다. 길이 직선으로 나있고 차가 많이 다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내 어린 시절 동네도 그랬다. 나도 아이도 달리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달리기만 해도 이렇게 즐거운 걸.
“도착!” 신나게 달려 미용실 앞에 왔는데 문이 닫혀있다. 분명히 영업시간을 확인했는데, 하얀 커튼이 무심히 가려져 있었다. “어떨 수 없지. 다른 미용실 갈까?” 조금 실망했지만 지나온 길을 다시 돌아 원래 다니던 미용실을 찾았다. 그런데 다른 날 보다 기다리는 손님이 많았다. “어떻게 하지, 또 다른 미용실 갈까?” 하고 아이에게 물었더니 다행히 “좋아!”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난 왠지 불안해졌지만 동네에 미용실이 많으니까 다시 길을 나섰다. 하지만 마트 앞에 있는 미용실도 문이 닫혀 있었다. 서점 옆 미용실은 아이 머리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우리는 달리기를 통해 기분이 들떠있었고, 미용실 문 앞에서 무려 4번의 거절을 당했어도 오기를 발동해 ‘미용실 찾기’ 놀이를 시작했다. “좋았어! 우리 육교를 한번 건너가 보자!” “좋아!” 해가 지는 동네의 육교를 아이와 함께 건너는 일은 꽤나 설레고 낭만적이다. 잠시 하늘 냄새를 맡고, 발 밑에 지나가는 차들을 구경하고 내려오면 금세 새롭고 낯선 옆 동네에 도착한다. 미용실을 찾기 위해 우린 정말 가본 적 없는 길로 들어서기로 했다. 방향은 과일 가게와 빵집이 보이는 쪽으로 정했다.
모퉁이를 돌자 다른 정취의 동네가 나타났다. 어둑해진 시간이라 더 묘한 기분이 났다. 맛있어 보이는 빵집에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돌아오는 길에 가보기로 하고 미용실 간판을 찾았다. 손님 한분이 머리를 하고 있는 미용실 문을 여니, 가게 사장님께서 “죄송해요, 이분이 마지막 손님이에요.” 하셨다. 이제 정말 마지막 한 군데만, 하고 뒤를 돌았는데 예스러운 미용실 간판 하나가 바로 보였다. ‘정동 미용실’.
“들어오세요.” 주인아주머니의 이 말이 어찌나 감격스럽던지. 우리는 만세를 불렀다. 아이는 만세를 부르면서도 겁이 살짝 나는지 이상한 표정이 되었다. “이제 학교 가는데 너무 짧지 않게 멋진 스타일로 다듬어 주세요.” 하고 사장님께 아이 머리를 부탁드리고 미용실을 둘러보았다. 오래되어 보이는 TV에서는 트로트 방송이 틀어져 있었고 개업할 때 받으셨을 것 같은 화분은 천장에 닿을 듯한 나무로 자라 있었다. 잡지가 꽂힌 낡은 책장을 살펴보는데 익숙한 파마약 냄새가 코 끝에 풍겨왔다.
그 냄새를 맡으니 대구에 있던 큰어머니 미용실이 생각났다. 어릴 적 나는 방학 때마다 대구에 있는 큰집에서 지냈다. 어린 시절 추억이라고 한다면 모든 좋은 날이 그곳에 있는 것 같다. 큰어머니는 미용실을 하셨는데 집은 미용실 뒷문과 연결되어있었다. 큰어머니는 손님 파마를 말아두시고도 밥때가 되면 집으로 건너와 척척 김밥을 말아 오락실에 있던 나와 사촌 동생을 불러와 먹이셨다. 심심할 때면 큰어머니 미용실 소파에 앉아 잡지를 보거나 파마 롤에 묶인 노란 고무줄 푸는 일을 돕고는 했다. 그곳에 있었던 오래된 개업 화분, 가요무대가 나오던 TV, 햇살이 비추는 유리벽에 붙은 미용실 이름은 ‘챠밍 미용실’
저녁이 되어 미용실 문을 닫으면 큰아버지가 가끔 갈매기 고기를 사 오셨다. 우리는 옥상에 올라가 모기장을 펴고 고기를 구워 먹었다. 낮 동안 따듯하게 데워진 옥상 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았을 때 수없이 빛나던 많은 별들. 방학이 끝나 서울로 올라갈 때면 큰어머니는 내 머리를 보글보글 정성 들여 파마해주셨고 큰아버지는 비상금을 모두 꺼내 버스 터미널 상가에서 제일 비싼 드레스를 꼭 한 벌 사주셨다.
“어머니, 여기 와서 애기 머리 좀 붙잡아줘요!”
어느새 아이 머리는 동그란 버섯처럼 잘 다듬어져 있었다. 의젓한 8살이라 그런지, 울지 않고 머리를 자르니 내가 이렇게 앉아 한참 딴생각도 할 수 있구나. 오히려 아이가 간지러움에 너무 들썩이며 웃어서 내가 머리를 잡아줘야 했다. “애기야 웃지 말고 호랑이 생각해 무서운 호랑이!”하고 말씀하시는 아주머니가 정겨워 나도 웃었다. 이제 다 커서 호랑이 안 무서워하는데. 생각했던 멋진 스타일은 아니 되었지만, 학교 잘 가라고 쓰다듬어주시고 악수해주시는 사장님의 다정함이 좋았다. 또 와야지 생각했다.
돌아가는 길에 가보려던 빵집 문이 닫혀있어 그 옆에 있는 과일 가게에 갔다. 딸기가 한팩에 4,000원, 떨이로 1,000원을 더 깎아 3,000원에 사들고 기분 좋게 다시 육교를 건너갔다. 얼른 저녁밥을 해먹여야 하는데 싶어 걸음이 급해졌지만 집 앞에 있는 슈퍼에 들러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도 하나 샀다. 동그란 플라스틱 통에 흔들면 찰랑찰랑 소리가 나는 조약돌 캔디.
나는 힘들 때나, 기분이 좋아지고 싶을 때 어린 시절 좋았던 추억을 생각한다. 먹어도 먹어도 없어지지 않는 별사탕 같은 기억을 내 아이의 주머니에도 하나 둘 넣어주고 싶어서. 하지만 아이에게 기억될 그 순간이 언제인지 몰라 문득문득, 순간순간 소소한 애를 써보게 된다. 집으로 가는 골목길 가로등 아래에서 길어지고 짧아지는 그림자를 폴짝폴짝 밟으며 아이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