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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onsoo May 15. 2021

[너를 통해 나를] 내 틈에 자라는 풀

2021년 5월 / 그 날의 S에게

그림 작가 온수와 교육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물꿈이 함께하는 [너를 통해 나를] 프로젝트입니다.


'엄마'와 '아빠'라는 서로 다른 역할을 맡고 있는 친구가 만나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나눕니다.  멀고 깊은 이야기도, 가깝고 가벼운 이야기도 담습니다.



아스팔트 도로 위 시멘트 턱에 혼자 앉아 있을 때, 봄은 아름다웠어. 고개를 떨구고 길 위를 걸을 때에도 발아래 풀꽃은 예뻤지. 비밀이 많았던 나는 스스로를 이해하기 어려웠어. 비밀은 사람의 질문 앞에서 편안하고 듣기 쉬운 대답으로 바꾸어졌지. 나중엔 그 거짓말 위에 내가 서있게 되더라고. 거짓말은 능숙하지 않아도 돼. 사람들은 다른 이에게 그렇게 까지 깊이 따져 묻지 않으니까. 하숙을 하고 있던 중학생에게 사람들이 “부모님은 어디 계시고 혼자 하숙을 하니?”하고 물으면, “두 분 모두 외국에서 일하게 되셔서요. 여기엔 잠시 있는 거예요.” 하면 돼. “어디에서 일하시는데?”하고 되물어오면, “미국요. 로스앤젤레스요.”라고 말하면 되었지. 나는 L.A갈비를 좋아했거든.

일 년에 한두 번쯤은 학교 앞으로 엄마가 찾아오시는 날이 있었어. 하교할 때 교문 앞에 노란색 경차가 세워져 있으면 혹시나 어디에선가 엄마가 나를 찾고 있을까 두리번거렸지. 엄마는 오랜만에 만난 딸에게 영양 있는 음식을 먹여주시겠다며 돌솥 비빔밤을 사주셨어. 돌솥에 날치알이 타닥타닥 익는 소리를 들으며, “아빠랑 그 여자는 너에게 잘해주시니?” 하는 질문에 “네, 잘해주세요.”하고 대답했어. 짧은 식사 시간이 지나고 “오늘 엄마랑 만난 것 아빠한테는 꼭 비밀로 해야 한다.” 당부하시는 엄마의 말씀에 알았다고 대답했지. 아빠는 새어머니와 함께 사는 집의 위치를 엄마가 알게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었어. 집까지 데려다주시겠다는 엄마의 차에서 그 집 아파트로 가는 길 반대편에 세워 내리고 발길을 돌려 다시 내 방 하숙집으로 향했지.

비밀을 지키고 약간의 거짓을 보태면 다툼 없는 고요한 시간이 지켜지지. 나는 도로 바닥 보도블록을 빼곡히 채운 푸른 이끼를 보며 걸었어. 어쩜 저렇게 단단하게 자랐을까. 내가 한 거짓말처럼 정말로 내가 부모님이 외국에 일하러 가신 것이라 어쩔 수 없이 잠시만 하숙집에 맡겨진 학생이라면 어떨까. 그럼 지금 걷는 이 길은 슬프지 않을 거야. 그냥 조금 외롭고 부모님이 보고 싶을 수는 있겠지. 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고, 이상하지 않고 이해받을 만한 사람일 거야 생각했어.

새어머니를 서운하게 해 아빠에게 뺨이 붓도록 맞던 날, 무서워 울지도 못하고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아빠는 내가 무서워졌다고 하셨어. 어버이날 아빠에겐 생화를 새어머니에게는 시들지 않는 조화를 사드렸던 날, 새어머니는 가짜 꽃을 사다 준 의붓딸에게 분해 모두에게 전화를 거셨지. 어느 날 엄마는 내가 친딸이지만 따듯하고 살갑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셨어. 건물 구석 계단 아래 작은 내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나면 나는 다음 날이 올 때까지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았어. 나는 정말 무섭고 차가운 사람인 걸까.

친구의 집에서 저녁까지 놀고 돌아가다가 두고 온 물건이 생각나 다시 찾아갔을 때, 문 밖으로 친구 어머니의 고함 소리가 들렸어. “저 애랑 놀지 말라고 했지. 저 애 부모가 이혼했다며, 게다가 쟤 혼자 산다며.” 마치 드라마처럼 친구가 울면서 뛰쳐나왔고 문 앞에 서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어. 놀라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친구에게 괜찮다고 말하고는 뒤돌아서 걸어가는데 늘 다니던 길이 낯설어 한참을 헤맸어. 이런 일이 왜 내 일인 걸까. 나는 나도 모르는 나쁜 아이인 걸까.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줄 줄도 안다는 말이 있어. 누군가 어떤 뜻을 전하기 위해 꺼내었을 이 말은 발 없는 말처럼 맥락 없이 곳곳을 달려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애틋한 따듯함과 가슴 철렁이는 슬픔을 주었을 테지. 나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일까. 더 나은 사람이 되어보려고 서점에 서서 오랫동안 책을 뒤적여보았어. 당연히도 해답은 없었어. 나를 알고 나면 불쌍히 바라보거나 불편해하던 사람들의 눈빛을 조금 더 이해해 볼 수는 있었지. 나는 불행한 사람인 걸까. 어떤 페이지에서 본 것처럼 치료받지 않는다면 내가 바라지 않아도 무의식이 이 불행을 대물림하게 될까. 어쩌면 나를 통해 내 뒤에 올 아이에게 나는 밝고 따뜻한 사랑을 건네어 줄 수 있을까.


천천히 걷다 길 가에 놓인 벤치에 기대어 앉았어. 부드러운 바람이 나를 만지고 그대로 지나갔지. 초록잎이 흔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가로수를 보는 것이 좋았어. 어두운 벤치 아래에 가려진 바닥에서도 조그만 풀무리는 동그란 꽃을 깨끗하고 정성스럽게 피워내고 있더라. 사람들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무심히 다니며 낮은 소음을 내는 그곳이 오히려 내가 있어도 되는 곳처럼 느껴졌어. 그 시간의 틈에 앉은 동안은 나에게 아무런 의문도 설명할 것도 없었지.

내려앉은 곳에서 담담히 돋은 풀처럼 이야기하고 싶었어. 보통의 말을 고르다 보면 할 수 있는 말이 점점 사라져. 적당한 말을 찾는 건 늘 어렵잖아. 누군가의 마음을 무겁게 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닌 그저 그곳에 있었던 이야기. 내 틈에 자라는 풀을 보이고 싶었어. 오랫동안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워. 네가 있는 곳은 어디야? 나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눠 들고 다음으로 건너가고 싶어.






[너를 통해 나를] 프로젝트는 2020년 4월부터 매월 첫째 주, 셋째 주 토요일에 공유되었습니다. 이제 1년 동안의 연재를 마무리하고 이제 함께 써온 글을 모아 기록물로 엮는 작업에 들어가려 합니다.


그동안 따듯한 시선을 두어 보아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읽어주시는 분들을 생각하며 글을 만들어 나갔어요. 좋은 소식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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