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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Jun 10. 2021

딴짓하는 두려움

인생은 역할극이 아니라지만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그래서 즐겁고, 괴롭고, 두렵다. 할 일이 많아 심심할 새가 없으니 즐겁다. 쓸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으니 괴롭다. 그리고, 이 수많은 딴짓 때문에,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될까 봐 두렵다.


인생에 '정말로 중요한 일'이라는 게 따로 있을까? 위치에 걸맞은 본분 정해져 있는 걸까. 모름지기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하고, 직장인은 일을 해야 하고, 20대 초반에는 연애를 해야 하고, 30 즈음에는 결혼을 해야 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엇나간 사람이다. 도무지 본분만으로는 삶이 즐겁지가 않고 만족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물론 시기에 맞는 일이 아예 없다고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삶을 통틀어 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은 한 때뿐이다. 나이가 들면 도전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일들도 많다.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는 순간 수많은 제약이 생긴다. 그러니 그렇게 되기 전에, 특히 학생 시절에, 더 많은 것을 경험해 보고 준비해 두라고 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지금의 때'를 지나는 대학생인 '나'는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온 시간을 공부에 쏟는 것이 옳다. 그게 진짜 중요한 일이니까.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들에 시간을 쏟다 본분을 놓쳐 버리면 안 되니까.


정말 그런가? 인생이란 때에 맞는 과제를 수행하며 때에 맞는 역할극을 수행하는 일일 뿐일까. 본분에 충실한 삶만이 바람직하고 안전할까. 글쎄, 솔직히 말하자면 아닌 것 같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 수는 없다. 그렇게 살 필요도 없고.


인생은 역할극이 아니다. 아마도. / 출저 픽사베이.


우리는 모두 각자 수많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신분, 소속, 나이와 같은 것들은 자신을 이루는 무수한 조각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 조각 하나 때문에 모든 행동에 제약을 걸고 심지어는 죄악감을 느낄 필요는 없지 않나. 누군가는 본분에 충실함이, 혹은 남들 사는 대로 사는 것이 안전한 삶을 만들어준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수의 방식을 따른다고 안전함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그런 건 주위만 둘러봐도 알 수 있다. 어쩌면 안전한 삶 자체가 허상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해보고 싶은 것들을 잔뜩 해보고 마음 가는 대로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나라는 존재를 현재의 상황과 신분에 가두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조금은 자유롭게 살아도 괜찮을 것이다. 본분이나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나답게 살아도 될 것이다. 그럼 조금은 사는 게 쉬워질 거다. 그런데, 우습게도, 내 말을 스스로 믿지 못하는 자신이 있다. 여전히 딴짓이 두렵다. 자유롭게 살았다가 낙오될 까 봐. 다들 그럭저럭 버텨내고 있는데 나만 도망가는 걸까 봐. 솔직히 궁금하다. 다들 그걸로 괜찮은 걸까. 다들, 도대체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걸까.


언젠가부터 거의 모든 행동과 생각을 '의대생'을 기준 삼아 판단하고 있었다. 대체 그게 뭐라고 스스로의 행동을 선악으로 판단하고 죄악감을 가졌다. 그 기준에 의하면 브런치도 불필요한 딴짓이다.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건 의대생의 본분이 아니라며, 제발 그냥 공부만 하라며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런데도 그게 되지를 않았다. 딴짓을 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딴짓해도 괜찮은 이유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본분에 얽매이니까 본분을 무시하고 싶은 거다.


글을 쓰면서도 여전히 모르겠다. 나의 딴짓은 도피일까, 도전일까? 깊고 성숙한 자아를 갖기 위한 폭넓은 경험일까, 아니면 뭣이 중한지도 모르고 이리저리 기웃대는 철부지 짓일까.


이러나저러나 딴짓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이 모든 딴짓과 기웃거림이 무언가 생산적인 의미를 갖는다면 그제야 확신이 설 거다. 그때까지는 딴짓하는 두려움과 함께할 수밖에. 다른 사람은 어떻게들 사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어떻게 해야 여기저기로 뻗치는 관심을 억누를 수 있는지요. 더 많은 자신이 궁금하진 않으신지요. 만약, 자락 흩날리는 보헤미안처럼 이미 길을 떠나셨다면, 후회는 없으신가요. 더 이상 두렵지는 않은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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