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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Jul 16. 2019

신경치료를 하다가 눈물이 났다

-방치형 인간의 취업과 치아의 상관관계

육 개월 전, 밥을 먹는데 딱딱한 게 씹혔다. 치아처럼 보이는 단단한 알갱이였다.


‘예전에 신경치료 하려고 때웠던 게 떨어진 건가?’


구멍이 난 건 왼쪽 어금니였다. 어금니는 이미 칠 년 전에 신경치료를 받은 바가 있었다. 그런데 설마……이게 어금니 조각이겠어? 내 이가 이렇게나 약해빠졌다고? 나는 조각을 휴지에 싸서 휴지통에 버렸다.   

  

통증이 심해져 결국 치과를 방문하기로 했다. 접수할 때, 나는 간호사에게 예전에 이를 때운 것이 떨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진료가 시작되었을 때 의사는 화면에 보이는 내 치아 X-RAY를 보며 담담히 말했다.


“그 떨어져 나간 거, 치아 조각이에요. 어금니가 이렇게까지 썩었는데 안 아팠어요?”


맞다. 아팠다. 무지 시리고 아팠지만 무서웠다. 이번 신경치료는 사랑니 치료만큼이나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는, 신경을 다 잘라내야 한다는, 치아 색을 덧댄 크라운을 씌운다면 비용이 꽤 든다는 의사의 말과 함께 내 왼쪽 잇몸에 마취가 시작되었다. 나는 초록색 천을 얼굴에 뒤집어썼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내 왼쪽 어금니가 사정없이 갈려 나갔다. 이가 약한 편이라 이십 대 초반에 무려 일곱 개의 이를 신경치료 했건만, 이번에는 정말 달랐다. 마취를 한다고 해도 계속 입을 벌리고 있으니 턱이 뻐근하고,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입안 구석구석이 아팠다.


‘왜 치아 조각을 봤을 때, 바로 치과에 가지 않았을까.’


나는 정신을 바로잡기 위해 손가락을 꼬집으며 기억을 돌이켜봤다. 내가 치아 조각을 발견하던 날, 육 개월 전, 혼자 계란을 부치고 미역국을 끓이던 식탁으로.     


그 날은 원하던 회사의 면접 결과가 발표 나는 날이었다. 그리고 육십이 넘은 아빠가 치과 치료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던 날이기도 했다. 회사는 똑 떨어졌고, 아빠는 일 하느라 여태껏 방치해 온 치아를 치료하고 임플란트를 시작했다. 아빠의 총 예상 비용은 천 만원이 훌쩍 넘었다. 나는 내 왼쪽 치아의 구멍 난 곳을 혀로 몇 번이나 간질거리며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들겼다.


빨리 취업을 해서 내 돈으로 치아를 치료해야지, 라는 결론이 났다. 그 생각을 하며 나는 최대한 오른쪽으로 조심스럽게 계란을 씹어먹었다.


회사에 떨어지고 아빠의 이는 하나둘씩 사라졌다. 자소서를 쓰면서 통증을 견뎠다. 곧 취업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의 스펙과 자소서는 형편없었고 결국엔 아빠에게 도움 요청을 했다. 왼쪽 어금니를 치료해야 할 것 같다고. 아빠는 왜 방치했냐고, 당장 말하지 그랬냐며 내 통장에 돈을 입금했다.


누워서 이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작은 입을 힘껏 열고 있자니, 내가 미련해 견딜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방치형 인간으로 사는 건지, 내 몸 하나 간수 못하고, 내 어금니 하나 치료할 돈도 못 벌어서 이러고 있는 건지. 나는 왜 이렇게 무능력한 건지.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하니 숨이 막히는 듯했고 목에 뭔가 턱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이번년도는 취업을 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도 중단했는데, 당장 내일이라도 아무 아르바이트를 알아봐야 하는 건지.


“크게 아, 하세요!”


의사의 말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입이 작은데 대체 얼마나 더 크게 아를 하라는 건가. 아아, 정말 아아.     

오십 분가량 되는 치료가 끝나고, 뻐근한 왼쪽 턱을 부여잡고 진료비를 내는데, 간호사가 작은 비닐에 담긴 금 조각을 내밀었다.


“이거. 원래 지인씨 어금니에 붙어있던 거 가져가세요.”


칠 년 전, 어금니 위의 모양을 본 따 만들었던 금 조각이었다. 이렇게 형편없어 보이는 금 조각은 처음이네. 나는 금 조각을 고이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어쨌든, 보잘것없는 내 어금니 위에 몇 년을 잘 붙어있어 줬으니까. 집으로 가는 내내 자꾸 눈물이 났다. 건강 하자, 난 건강해야만 한다, 주문을 외우듯이 계속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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