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가 가진 이름들
우리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곳이 있다. 가게 입구에 기다란 나무판자들과 장승이 줄지어 서있고 망치질 소리가 끊이지 않는 보령목공소. 목공소는 주인의 작업실인 공방과 자그마한 뒷마당이 연결된 구조로 이루어져있는데, 그 마당에 하얀 진돗개 한 마리가 산다. 언제나 마당한복판에 턱, 자리를 깔고 누워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녀석. 나는 변함없이 느긋한 녀석이 좋다.
사실 우리 가족은 동물을 싫어한다. 나를 제외하고. 그러니 키우는 건 말할 것도 없다. 가장 키우고 싶었던 고양이는 엄마의 천식 때문에, 강아지는 짖는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다른 동물들도 이유는 비슷했다. 냄새가 지독하거나, 똥을 많이 싸거나. 그러다보니 나는 목공소의 진돗개에게 더 정이 들었다.
동네에서 십년이 넘도록 지켜본 유일한 동물이었으니까.
“너 또 자니?”
말을 걸어도 반응이 없고 짖지도 않는 진돗개는 눈만 느리게 깜빡였다. 참 느리고 순한 녀석이구나, 생각하며 나는 진돗개에게 이름을 정해줬다.
순이.
우리가 친해지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동물에게도 낯을 가리는 못난 내 성격 때문이다. 커다란 톱을 든 주인 목수가 마당에 나타나기라도 하면 나는 순이를 모른 척하고 버스정류장으로 뛰어가곤 했다. 그래서 내가 순이에게 한 거라고는, 고작 혼잣말처럼 웅얼거리는 짧은 인사, 혹은 손 흔들기 정도였다.
그런데 이주 전쯤, 순이가 계속 보이지 않았다. 나는 외출을 할 때마다 왠지 힘이 빠져 목공소 안을 기웃거렸다. 그리고 며칠 뒤, 사라진 순이가 다시 마당에 나타났다. 여섯 마리의 새끼들을 주렁주렁 달고서. 순이는 갓 태어난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재밌는 건 그 다음이었다. 내가 순이를 빤히 바라보고 있자, 책가방을 흔들며 지나가던 초등학생 두 명이 마당 앞에서 멈칫했다. 그리고 한 명이 순이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헐. 대박. 복실이 엄마됐다.”
그러자 다른 아이가 말했다.
“와, 복실이 새끼 봐. 귀여워."
아이들은 복실이 젖이 엄청 커졌다느니, 새끼를 너무 많이 낳은 거 같다느니, 호기심과 걱정이 뒤섞인 말을 주고받다가 자리를 떠났다. 복실이. 아이들에게 순이는 복실이었다. 나는 어쩐지 웃음이 났다. 복실이는 바닥에 축 늘어져 잠이 들었다. 문득 나는 궁금해졌다. 주인은 녀석을 뭐라고 부를까. 그러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계속 순이라고 할래.
양평에 사는 대학 동기의 ‘똥개’는 이름만 다섯 개다. 엄마는 알콩이, 아빠는 뭉치, 동생은 은조, 할머니는 여우, 동기는 뿌빠뽀. 성까지 붙이면 룰랄라 뿌빠뽀라나 뭐라나. 사연인즉, 가족들이 각자 강아지에게 지은 이름을 바꾸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려, 다섯 개의 이름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게 집안의 평화를 지키는 일이라고. 동기는 룰랄라 뿌빠뽀가 자신의 목소리에 유독 꼬리를 더 흔든다며, 자신이 지어준 이름을 가장 마음에 들어 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엄마가 된 순이는, 오늘도 달려드는 새끼들에게 젖을 물린다. 좋아하는 낮잠도 포기했다. 젖을 내줄 때조차 만사 귀찮아하는 표정은 그래도 변한 게 없다.
순이야, 수고했어.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리고 상상했다. 목공소 뒷마당을 향해 순이, 복실이, 백구, 멍멍이, 똘이를 부르는 사람들을. 그리고 뭐라고 부르든, 모두 애정이 듬뿍 들어간 근사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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