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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Jul 25. 2019

아무도 내 생일을 모르기를

해피 버스데이 투미

생일이 달갑지 않은 어린이도 있다. 십여 년 전, 9월 15일의 나는 그랬다.

    

내가 나온 초등학교는 콧대 높은 국립 초등학교였다. 시험에 통과해야 입학이 가능하고, 교복을 입어야 하고, 치맛바람이 세고 교육열이 높은 부모들의 자녀들이 모여든 곳이었다. 모든 조건이 일치하지 않는 내가 어쩌다 그 초등학교에 갔냐면……이유는 하나. 집이 가까웠기 때문에.

    

초등학교 4학년, 한 여자애와 같은 반이 되었다. 류라는 성을 가진, 늘 양갈래 머리를 한, 가르마가 홍해 갈라지듯 정확히 반으로 나뉜, 입매가 시원시원한 아이. 류의 부모님은 당시 인기 있던 프렌차이즈 레스토랑 지점을 몇 군데 가지고 있는 사업가였다. 그리고 류는 9월 15일, 나와 생일이 같았다.

     

류는 매년 생일파티를 부모님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했다. 그러니까 그날은 류의 날이었다. 류는 레스토랑에 우리 반 교실을 재현해놓을 기세로 애들에게 초대장을 돌리고, 아니 날리고 다녔다. 아이들은 그 날 스테이크를 썰 수 있는 거냐며 신나 했다.  

   

9월 15일이 가까워지면 친구들에게는 ‘너 이번에 류 생일파티 가?’ 가 안부인사처럼 들려왔다. 마치 학교의 연중행사랄까. 반면 내 생일을 아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고작 친한 친구, 홍, 한 명밖에. 게다가 나는 생일파티를 할 형편도 되지 않았다. 차라리 모조리 류의 생일파티에 가서 아무도 내 생일을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쉬는 시간, 류가 내게도 초대장을 건넸을 때 나는 차마 ‘나도 너랑 생일이 같아’라고 말하지 못했다.


“책 선물은 별로야. 알지?”


류의 말에 고개만 끄덕였다. 정말 가려던 건 아니었다. 그냥 내 생일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뭐? 너도 나랑 생일이 같았다고?’ 하며 놀란 류의 표정이 보기 싫어서. 모여드는 애들에게 설명하고 싶지 않아서.     


하지만 생일은 어디선가 탄로 나기 마련이다. 선생님이 만들어놓은 반 친구들 소개 게시판에서, 혹은 나의 입방정, 아니면 친한 친구의 입방정.     


생일 당일, 교실에 도착하니 반 애들이 분주했다. 모두 선물을 한 아름 안고 있었다. 그게 류의 생일선물인지, 처음으로 가보는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초대권과 교환하는 선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침 종례 시간이 끝나는데 유일하게 내 생일을 아는 빨간 안경의 홍이 나에게 와서 선물을 내밀었다.


“생일 축하해!”


얼굴이 붉어졌다. 기뻐해야 하는데, 나도 생일인데, 류만 생일이 아닌데, 어쩐지 주변이 신경 쓰였다. 홍 너는 왜 이렇게 목소리가 큰 거니. 홍은 왜 선물을 뜯지 않냐는 듯 손을 뻗어 채근했다. 나는 선물을 받아들고 고맙다며 중얼댔다. 선물은 토끼가 잔뜩 그려진 플라스틱 필통. 애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홍이 나에게 물었다.


“이따 다람쥐 통 타러 갈래?”


나는 흔쾌히 알겠다고 대답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학교 근처 공원에는 페인트칠이 벗겨진 낡은 놀이기구들이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홍과 나는 언덕이 유난히 높던 공원으로 가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다람쥐 통을 여러 번 탔다. 360도 회전을 반복하는 다람쥐 통 안에서 바지 주머니에 넣었던 백 원짜리 동전이 툭툭 떨어지는데도 우리는 좋다고 깔깔거렸다. 가방 안에 있던 토끼 플라스틱 필통은 살려달라고 계속 달그락댔다.


그래, 나도 어? 오늘 생일이라고! 오늘은 좀 시끄러워도 돼! 생일은 다람쥐 통을 타면서 몇 번이고 360도로 구를 자격이 있다고!

    

홍의 생일은 12월 25일이었다. 홍은 크리스마스 선물과 생일선물을 같이 받는 게 싫다고 투덜댔다.


“넌 그래도 류만 신경 쓰이잖아. 중학교 가면 류 볼 일도 없는걸? 나는 매년 예수님이랑 생일이 같아! 예수님 진짜 싫어!”


그래, 예수님이 경쟁상대인 홍은 얼마나 더 싫을까. 그렇지만 홍은 매년 성탄절, 독실한 기독교인인 부모님을 따라 교회에 가서 얌전히 예배드렸다.     


신운선 작가의 동화 「해피 버스데이 투미」의 주인공 유진이는 부모로부터 방치된 채 힘겹게 살아가다가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동생과 함께 보호소에 들어가게 된다. 보호소는 편안하고 깨끗하지만 유진이는 자신이 살 집이 간절하다. 유진이는 몰래 보호소를 빠져나가 지방에 사는 할머니를 찾아 나선다. 여행길에서 문득, 유진이는 자신의 생일이 지났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고 보니 어제가 내 생일이었다. 내 생일은 어버이날이어서 잊은 적이 없었다. 작년에는 엄마에게 줄 카네이션을 그리면서 케이크도 그렸었다. 그림 속 케이크에 꽂힌 초에는 환하게 불이 켜있었다. 그 그림을 보며 생일 축하 노래도 불렀었는데. 그런데 잊고 있었다.
‘생일 축하해. 내 생일을 축하해.’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그러고는 속으로 생일 축하 노래를 천천히 불렀다. 내가 마흔 살쯤 되었다면 생일쯤은 무시할 수 있을 것이다. 마흔 번이나 생일을 챙긴다는 게 지긋지긋해질 테니까. 하지만 아직은 열두 살이었다. 나는 매일매일이 내 생일인 것처럼 살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p.186」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생일을 잊고 지낸다.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생일인지도 모르고 넘어간 적도 있고, 생일 연락이 온 것이 내가 회원으로 가입된 사이트에서 보내는 문자가 대부분일 때도 있다. 내 생일의 축하 정도를 남들과 비교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까짓 생일이 뭐라고, 그냥 태어난 날일 뿐이잖아, 라며 담담하게 구는 나를 발견한다. 그래도 생일은, 어쨌든 누구나 공평하게 축하받아야 할 날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우리는 모두, 이 어려운 생을 여차여차 살아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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