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만들어지는 것인가 깎여가는 것일까
며칠 전 엄마와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가족이었으면 좋겠다고.
조언하려는 사람은 너무도 많지만 그런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라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했는데 순수하게 믿어준다는 건 불가능한가.
돌이켜 누군가 나를 믿어달라고 했을 때 그 사람의 평소 행실을 돌이켜 생각하게 된다.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서 의심을 지워가고 확인해야 단단한 믿음을 갖게 되는 거지. 결국- "평소에 잘했어야지." 양치기 소년을 믿을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장난 삼아 거짓말을 계속했는 걸. 나는 조심성도 많은 데다 다른 사람에 관한 건 마음이 쉽게 흔들려서 절대 양치기 소년에게 본심을 줄 수 없다. 믿음이 깎여가며 의심이 자리를 잡는 것일까.
에로스가 프시케에게 "의심과 사랑은 함께 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럼 의심을 거두어가는 과정이 사랑하는 관계에선 없는 건가. 의심하지 않고, 의심을 누르고 사람을 품어주는 게 사랑이기도 할 텐데. 나는 불안한 존재라 그런 사랑을 할 자신이 없다. 세상엔 너무도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데 내 배우자도 그런 건 아닐지 걱정되잖아! 그래도 어느 부분은 낙천적이라 나는 좋은 사람을 잘 골라낼 수 있다는 배짱이 함께 한다.
무튼 믿음은 시작이 100일까 0일까. 나는 엄마한테 그리고 아빠한테 믿어달라고 애원해야 하는 게, 좋은 모습을 지금까지 못 보였나 봐. 부족한 모습만 보여서 내가 내리는 결정마다 불안해 보이나 싶다. 열심히 살 걸, 은근 후회가 되는데.
혹은 에로스의 말처럼 믿음의 시작인 사랑이 어느 정도인가에 달려있으려나. 사랑이 가득하다면 믿음도 충분한 거겠지. 확실한 건 나도 불안한데 믿어달라고 하는 거다. 스스로도 확신이 없는데 날 믿어달라고 하는 것. 모순적이긴 한데 나에게 부족하니까 남들에게서 자기확신을 채우고 싶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