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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윤달 Sep 11. 2023

명품가방이 쏘아 올린 작은 자학

보통이라서 불효녀가 되는 공식


일하던 중 뜬금없는 엄마의 메시지에 순간 물음표가 잔뜩 생겼다. 올해 하반기에 회사에서 워크숍으로 해외를 간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린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7년 차 직장인이 되는 셈인데, 동시에 6년 만에 해외를 방문하는 기회였다. 마지막 해외여행은 가족 단체여행으로 방문한 일본이었다.


그러면서 초여름 부모님이 모임에서 다녀오는 해외여행 전, 면세점에서 사고 싶은 건 없는지 채근하며 물었던 게 생각났다. 혹해서 온라인 면세점을 둘러도 봤지만 화장품도 생각보다 저렴하다고 느껴지지도 않고, 살짝 빠듯한 생활 중이라 오히려 돈을 더 쓴다는 게 부담스러워서 잘만 다녀오라고 인사하며 보냈었다.



이어지는 엄마의 메시지에 고마움 없이 마음이 덜컥했다. 올해 코로나가 풀리며 늘어났던 결혼식에 하나씩 참석할 때 무심결에 남겼던 말들이 토도독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친구들은 명품가방 하나씩은 있다?"

"나 결혼식 갈 때 그냥 간다니까 가방 빌려준대."

"엄마 명품가방 하나가 한 학기 등록금이야~"




대학생 때 백화점 의류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명품은 의미 없다는 생각이 박혔다. 같은 디자인의 옷이라도 결국 어떤 브랜드에 걸려있느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로 나뉠 뿐이었다. 직장인이 되어 돈을 벌면서는 하이엔드 브랜드는 내 구매력이 미치지 못하니, 오르지도 못할 나무라서 쳐다도 보지 않았다. 명품에 어떤 브랜드들이 있고 계급도는 어떻게 되는지 전혀 알지 못했는데 아차 하며 관심을 갖게 된 건 재작년부터이려나.


'명품'에 무지하다는 게, 사회생활 중 사람을 파악하는 시야가 넓지 못하다는 것이기도 했다. 사람을 그 자체로 봐야 한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대개 자신을 둘러싼 것들로 자신을 보이고 싶어 하는 법이다. 나도 양면적으로 때로는 '나' 그 자체를 혹은 잘 꾸며진 '나'를 봐주길 바라니까. 브랜드 이름은 대충 알았지만 특징적인 로고, 디자인까지 눈으로 익히니 아는 만큼 보인다고 길을 가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가진 명품에 눈이 갔다.


이후 부러움보다는 좌절감이 많이 생기긴 했다. 내가 엄두도 못 내는 금액대의 가방! 지갑! 얼마나 능력이 있으면 아니면 얼마나 집안이 좋아서 저렇게 어린 사람이 잘 들고 다니는 건가... 내 보폭에 맞게 열심히 살자는 스스로의 다짐으로 끝내려 했지만 그러지 않은 경우가 많긴 했다. 혼자서 마음만 오르락내리락했던 거라 생각했는데 툭툭 말로 티가 났나. 잘 포장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능력 없는 '나'는 엄마한테 들켜버렸다.


엄마는 항상 모든 면에서 부족한 점을 찾아내는 사람이라 학창 시절 너무 버거웠다. 사회생활 N연차가 되고 독립을 하면서 어느 정도 그런 굴레를 벗어날 수 있었다. 엄친딸 엄친아 소식을 들어도 엄마도 나도 하나의 이야기로 넘길 만큼. 그런데 내 말들이 엄마에겐 남아서 날 채워주고 싶었나 보다. 속상했다. 잔소리 듣는 건 짜증 났는데 이런 건 울컥하게..





 참 인생의 우연은 겹치는 게 엄마 연락 바로 3일 뒤,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명품가방 구매소식을 듣게 됐다. 찾아보니 눈에 익숙한 디자인의 가방이었다. 예뻐서 좋겠고 부럽다! 싶은 마음이 드는데, 동시에 자꾸 나 자신을 돌이켜 생각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에겐 명품이 참 쉬운데 왜 나에게만 어려울까. 나는 똑같이 한참 살아왔는데 지나온 길이 무언가 잘못되었나. 어떻게 해야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이 되어서 명품가방을 가뿐히 구매할 수 있을까.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진다.


선악과가 생각난다. 먹고 나니 눈이 트여 수치를 알게 되었다는 선악과가 나는 명품 같다. 알게 되니 눈이 트여 내가 나를 상처 내는 중이다. 나 자신이 이제 보이는 '나'에 집중되고 있음이 느껴지는데, 한 번 시작된 이 마음이 멈춰지지 않는다. 거기다 명품가방 없는 딸의 모습 보는 엄마!



명품도 모르는 엄마가 내 영향을 받은 걸까? 주변에 엄친딸들이 많아서 내가 부족해 보이나. 엄마에게 변변찮은 용돈을 드리지도 못하는데 내가 용돈을 받게 될 수준이다. 래저래 올해는 안 되지만 내년에는 명품가방 구매를 목표로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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