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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욱 May 24. 2019

중독의 원리 / 게임중독.

어떤 행동이나 대상에 대한 욕구를 멈출 수 없는 것. 그 추구가 부정적인 결과나 자괴감을 불러와도, 추구하는 것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중독되었다 말한다.


중독의 근본적 메커니즘은, 긍정적인 기분과 그러한 반응을 불러온 행동이 조건화되는 현상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본능은 생존에 이로운 것에 긍정적인 기분을 느낀다.


생존에 이로운 것, 번식에 이로운 것, 미래를 더 흥미롭게 만드는 것. 신경계는 이러한 종과 개인의 생존을 공고히 하는 것을 조건화 = 학습한다. 이로운 것을 반복하기 위해서이다. 이로운 것의 반복은 생존의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이러한 신경계의 기본적인 문법은 모든 유기체에 공통되는 특징이다.


부정적인 결과를 불러오는 과도한 몰입, 멈출수 없는 반복인 중독은, 이러한 조건화의 기본적인 문법에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어떠한 자극과 연관된 행동이 더 이상 이로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 명확함에도, 그 자극을 탐하는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는 멈출 수 없는 상황.



강한 동기감과 중독을 구분할 수 있는가?


일 중독, 공부 중독, 운동 중독.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오는 대상에 대한 강한 조건화가 생긴 경우일 것이다. 긍정적인 것에 대한 몰입이라 할지라도 그 정도가 지나칠 경우 부정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개인의 건강과 사회적 관계에 피해가 생기는 것이 분명해도 추구하는 대상에 대한 몰입을 멈출 수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과도한 몰입이 압도적인 생산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회의 발전을 추동한 사람들 중에는 일이나 공부에 중독되었던 사람들이 적지 않다.


때로는 커다란 생산성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과도한 몰입. 과잉된 동기감과 병리적 중독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까?


프로이트의 이론을 계승해 발전시킨 프랑스의 철학자/심리학자 자크 라캉. 그는 개인이 삶의 의미를 즐기는 방법은, '일반성을 넘어선 과도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라 말한다. 삶의 일반성을 넘어서는 것에 대한 무한한, 과도한 추구. 즐거움은 그러한 추구의 과정에서 부산물처럼 발생한다. 이를 ‘향유(Jouissance)’라 표현한다. 성숙한 사람의 대의에도 과도한 추구가 있고, 인간은 이러한 과도함/잉여물을 즐긴다는 뜻이다. 이러한 넘쳐남의 영역이 결여된 인간은, 열정이 결여된 인간으로 비칠 가능성 또한 있다.


Jacques Lacan


중독의 레시피.


자연스러운 경우. 조건화가 병리적 중독의 수준이 아닌 경우. 해로움이 이로움보다 크다는 판단이 들 때 그 행동을 멈추게 된다. 하지만 해로움을 인식하면서도 그 행동을 반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은 크게 두 가지 원인에 기인할 것이다.


첫 번째는, 그 자극의 원천이 다른 일상적인 것들보다 월등히 큰 쾌락을 주는 경우.


두 번째는, 트라우마에 대한 대응기재로서 중독의 대상을 탐하는 경우.


첫 번째 원인의 가장 극단적인 예는 도파민 시스템에 작용해, 도파민의 양을 인위적으로 늘리는 약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일상적인 수준보다 수십 배에 달하는 도파민 반응을 불러오는 암페타민, 코카인 등의 마약들은 그 중독성으로 악명이 높다. 도파민을 크게 증가시키는 니코틴 또한 중독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파민은 참신한 것, 기대 이상의 것에 대한 반응이다. 이 신호는, ‘앞으로 이 자극의 원천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이롭다’는, 신경의 프로그램 언어이다.

약물이 인위적으로 불러오는 도파민의 증가가 외부환경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의 수준을 훨씬 넘어설 때 문제가 생기게 된다. 약물 자체가 추구해야 할 것으로 조건화되기 십상이다. 이렇게 되면, 다른 모든 동기보다 약물에 대한 동기가 삶의 우선순위가 된다. 유기체에게 이로운 것을 탐하도록 설계된 신경계가, 엉뚱한 것을 탐하게 되는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도박에 대한 중독도 이러한 경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도파민은 보상에 대한 기대감, 예상 이상의 보상에 분비된다. 도박은 이러한 도파민의 작용회로에 정확하게 상응한다. 도박의 결과가 결과적으로 손해일 것을 경험적으로, 이성적으로 알고 있을지라도. 일말의 가능성은 행위를 강하게 추동하는 도파민을 자극한다. 병리적 도박 중독자는 이러한 자극을 거부할 수 없도록 신경계의 조건화가 과도하게 형성된 것이다.


두 번째 원인으로, 실존적 스트레스에 대한 대응기재로서의 중독이 있다. 실존에 가해지는 압력, 트라우마. 주체는 그 지속적인 스트레스의 원인에서 도망치려 한다. 잠깐의 망각, 위안을 주는 행동을 추구한다. 모든 병리적 중독에는 이러한 실존적 원인이 섞여있다.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중독자일지도 모른다. 그는 미혼모인 엄마를 누나라고 부르며 성장했다. 열 살 무렵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어린아이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을 받았다. 그 후로 그의 인생은 모든 종류의 중독을 섭렵하는 일대기가 되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는 본능적인 대응기재의 발현이었다.


그는 그가 겪은 모든 중독과 그 진행의 과정을 담담하고 세세하게 그의 자서전에 회고했다. 유년기에는 최대한 많은 설탕을 단시간에 삼키면 잠깐 동안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 습관에 탐닉했다. 기타 연주에도 중독됐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연습은 그를 최고의 연주자 중 한 명으로 만들었다. 한편으로 이 몰입은 트라우마를 망각하려는 대응기재의 측면 또한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연주자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면서는 마약과 알코올에 심각하게 빠져들었다. 이성관계에서 비롯된 집착 또한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Layla>는 관계에 중독된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에릭 클랩튼의 이야기는 중독이, 중독의 대상이 지닌 중독성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중독의 주체가 무언가에 중독적으로 몰입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실존을 위협하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중독에 취약한 성향을 지닌 개인은 자신이 중독될만한 것을 찾는다. 트라우마의 대응기재가 될, 위안의 수단을 찾는 것이다.


Eric Clapton


디자인된 중독?


위에서 다룬 두 가지 원인으로 추론해 보자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병리적 상황은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누군가가 경제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중독의 코드가 각인된 상품을 시장에 유포할 있다.

무언가에 중독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가 사회 전체에 만연할 수 있다.


청소년의 게임 중독이 심각한 문제라는 말이 흩나린다.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해야 하나'에 대한 찬반으로 뜨거운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논의가 정확한 논점을 얻고 사회적 병리를 해소하는 실용성을 얻기 위해서는, 중독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병리의 원인이 게임인지, 아니면 다른 조건이 게임에 대한 과몰입으로 나타나는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공부에 동기감을 얻지 못하고, 공허함을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게임이 재미있는 이유는 즉각적인 보상이 있기 때문이다. 보상에 대한 감각은 재미의 원천이다. 무엇이든 보상감이 있는 것은 재미있다. 공부에서 보상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앎 자체가 유용하게 느껴지며, 스스로가 성장하는 것이 체감되어야 한다. 만약 이 것이 충족된다면 공부는 그 어떤 것보다도 깊은 만족감을 준다.


공부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공부가 아이들의 성장에 긍정적인 자극을 주고 있지 못하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공부에서 만족감을 얻지 못할수록 게임의 즉각적인 보상감에 이끌릴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몰입하고 있는 게임이, 마치 도박과 같은 말초적인 중독 회로를 자극하기 위해 디자인된 게임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속적인 수련과 노력이 필요하며, 서사가 있고, 협동성이 요구되는 게임은 아이들의 성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그 경험이 생생할수록 더욱 그러할 것이다.


감각적으로 확장된 가상의 세계에서, 목적과 즉각적인 피드백이 발생하며, 위험성 없이 무한한 모험이 가능한 게임이라는 매체는 훌륭한 놀이와 교육의 수단으로 발전해나갈 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경험하는 게임이 슬롯머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말초적이고 즉각적인 자극만을 전달하는 게임이라면 사회화와 성장에 전혀 이롭게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아이들의 신경계를 교묘하게 하이재킹해, 성장과 정서에 치명적인 독소로 작용하는 게임이 있다면. 그리고 이러한 영향이 다른 삶의 영역에 파괴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명확하면. 적절히 규제될 필요성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비만과 중독의 원인인 설탕을 규제하는 것만큼이나, 수많은 질병의 원인이 되는 술과 담배를 규제하는 것만큼이나, 게임 자체를 규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자유로운 인간에게서 즐거움을 앗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모든 금지의 역사가 이를 증언한다.


경험으로서의 게임.


아무리 중독의 대상에 몰입해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은 ’자신이 더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을 따르는 중이다. 어떤 중독이라 할지라도, 내면적인 경험은, 더 생생한 존재 경험을 향한다.


충만한 것. 더 근원적인 만족감을 주는 것이 삶에 존재함은, 말초적이고 얄팍한 중독의 대상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겨지게 만들 수 있다. 어쩌면, 이러한 더 큰 가치를 주는 것의 존재는 중독을 넘어서는 유일한 길일 수도 있다.


자극적인 가공식품에 탐닉하는 사람이, 진정 만족스러운 음식을 늘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가공식품이 제공하는 얄팍한 미각을 어렵지 않게 포기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가 재미를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를 막는 것은 결코 건강하지 못하다. 아이들이 진정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을 우리가 충분히 제공하고 있는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있는지. 만약 이러한,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놀이의 환경이 박탈된 아이는 이를 대체할, 일말의 생생함을 주는 얄팍한 자극에 집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아이들이 지닌 놀이에 대한 본성적 욕구가 만족되고 있는지를 잘 살필 책임이 있다. 놀이는 사회화의 시뮬레이션 과정이다. 놀이에서 격리된 아이는 사회적 능력을 올바르게 습득하지 못한다.


만약, 게임의 말초적 중독성이 놀이의 본래적 작용인 사회화를 비롯한 여러 성장을 방해한다면, 이를 교정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아이를 비자연스러운 자극에 분별없이 노출시키는 것은 부모의 실책일 수 있다. 일례로,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아이들이 스마트 디바이스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훈육했다. 디바이스이 과도한 자극이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신경계 성장에 줄 영향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한편, 게임이 제공하는, 확장된 감각, 즉각적인 보상은 분명 큰 몰입의 요소이다. 이러한 확장된 자극은, 확장된 지능 발달의 자극으로 작용할 가능성 또한 있다. 아이들에게 게임을 통한 최대한의 감각적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어떨까? 아마, 나쁜 생각은 아닐 것이다. 스마트폰의 조그만 스크린에서 말초적이고 즉각적인 자극만을 주는 게임이 아닌, 서사와 협동이 있는. 몰입과 확장된 감각을 경험할 수 있는 게임.


대신, 시간과 빈도에 대한 명확한 규율을 함께 제공하는 것 또한 부모의 책임일 것이다. 깊은 몰입에 필요한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일상의 책임을 방기하지 않도록. 엄격한 훈육이 필요할수도, 발전적인 격려가 필요할수도 있다.


무엇보다, 게임 바깥의 삶의 경험에, 아이가 스스로의 발전에서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분야가 있으면 좋을것이다. 게임보다 훨씬 심원한 재미를 주는 것. 이러한 경험에 폭넓게 노출될수록, 게임이 과도하게 몰입할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은 당연할 귀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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